심야 이동도서관
오드리 니페네거 글.그림, 권예리 옮김 / 이숲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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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자의 아내' 작가 오드리 니페네거의 그래픽 노블이다.

작가는 그림을 전공하고 소설을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북& 페이퍼 센터 북 아트 교수로 재직했다. 보통 작가의 경력을 보고 이렇게 부러워하지는 않는데 그 어떤 부자보다 부럽다.

 

작가의 홈페이지 : http://www.audreyniffenegger.com/

이 책을 동네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빌리자마자 다음날 구입한 '이토록 어여쁜 그림책'이라는 그림책을 소개하는 책에 수록되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내가 월척을 낚았구나 싶었다.

 

 

책표지에는 단발머리 여자가 파란 티셔츠를 입고 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손으로 초록색 책을 안고 있다. 아크릴과 펜으로 그린 것이 아닐까 싶다. 불투명 기법인데 그라데이션이 거칠지만 상당히 꼼꼼하게 그린 그림이다. 금방 따라 그릴 수 있을 것 처럼 투박하지만 막상 그려보면 섬세한 그림인 것을 알게될 것 같은 그런 작품이다. 컴퓨터로 그린 그림과 다른 따뜻한 손그림의 맛이 있다. 인물을 그릴 때 입술 선을 검정 선으로 둘러버리는 것을 싫어하지만 이 그림은 이러한 표현이 전체적인 분위기에 잘 어울렸다. 제목의 글씨체도 캘리그래피인지 표지와 어울린다. 밤을 연상하는 검정색 배경에 여자의 파란티와 초록색 책을 섞은 듯한 터키색 글씨가 있다.

 

내용은 어떤 여자가 그동안 본 모든 책들이 캠핑카 속에 모여있는 심야 이동도서관을 만난다는 이야기다. 책을 좋아한다면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어떻게 이런 멋진 생각을 했는지 작가의 재능에 또 한 번 부러울 뿐이다. 잔잔한 스토리 같지만 주인공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목숨을 희생한다. 작가가 맺음말에서 아끼는 책을 영원히 읽을 수 있다면 무엇을 희생할 수 있겠는지 질문이 이어져서 오싹하기도 했다. 가끔 프리랜서라는 직업의 특성상 노후가 걱정되기도 하지만 도서관이 있으니 나는 늙어도 무료하지는 않겠구나 위안을 얻었다. 작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무슨 소리람.

 

내가 읽을 책이 모두 모여있는 방을 생각하니 부끄럽다. 그림작가 되겠다고 다니던 회사를 나와 제일 먼저 한 일은 책장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내면의 삶과 외면의 삶 사이의 불균형이 한눈에 보이는 책장이었다. 내가 사놓은 책들이 부끄러워 상자에 차곡차곡 넣어서 중고책방에 팔아버리고 몇만 원을 통장에 넣어둘 수 있었다. 어찌나 속이 후련한지 인생을 리셋하는 기분이었다. 매달 월급 받을 때는 몰랐는데 몇 푼 안되는 돈인데도 통장에 넣어두니 뿌듯했다. 그 후로 나의 꽃길이자 고생길이 열렸다. 지금은 웬만하면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정말 엄선해서 책을 구입하고 있다. 그리고 책상에 앉으면 손이 제일 잘 닿을 곳에 그림책과 그림에 관한 책을 꽂아두었다. 설 연휴가 끝나면 한 상자의 그림책이 도착하고 책장을 다시 정리해야 한다. 책을 사서 읽으며 오는 것도 큰 즐거움이지만 책이 오길 기다리는 즐거움도 꽤 크다.

 

주인공이 맡은 첫 번째 이용자의 첫 책인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의 '잘 자요, 달님'이 작가의 첫 책이거나 작가가 자녀에게 읽어준 첫 책이 아닐까 상상해봤다. "모두 잘 자요, 잘 자요."라고 끝맺음을 하다니 첫 책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사랑스러운 인사를 할 수 있을까?

내면의 삶과 외면의 삶 사이의 불균형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몇 시간씩, 몇 주씩, 평생토록 책을 읽으며 갈망하는 것은 무엇일까? 오후의 완연한 햇살 아래 아늑한 의자에 앉아 아끼는 책을 영원히 읽을 수 있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희생할 수 있겠는가?

오늘 혼자 힘으로 이 책을 읽었어요.
서가에 들어갈 첫 책이죠.

모두 잘 자요, 잘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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