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의 시대
전상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음모론은 오히려 합리주의의 과잉에 시달린다. 
이른바‘극단적 합리주의’, 즉 어떤 우연도 허용치 않으면서 모든 중요한 사건의 배후에 누군가의 의도와 개입을 가정하는 것이 문제다.

음모론자를 정신병자, 구체적으로는 편집증자로 보는 관점은 주류 사회의 견해다. 
음모론에 사회과학적으로 접근한 최초의 인물인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음모론자를 “증오에 휩싸인 편집증자”라고 부른다. 
편집증자는 ‘극단적 의심’ ‘박해 망상’ ‘자기 맹신’의 성향을 보인다. 
여기에 더하여 음모론자는 증오에 차 있다. 
일단 모든 것을 극단적으로 의심한다. 
자신의 망상적 세계를 뒤엎는 ‘합리적’ 증거가 밝혀져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증거 자체가 ‘오염’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25쪽)

개인적으로 음모론자들을 병적으로 질색하는 편이다.
대항담론으로서 음모론이 가치가 있다고는 하지만 병폐가 너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핵심적 모순은 무한정 커지는 기대(권리)와 그래서 더 초라하고 비극적인 현실(능력)의 간극인데, 이를 채울 방도는 여럿이다. 
과거에는 신정론이 이를 담당했고, 오늘날에는 자기계발과 음모론이 거든다. 외관은 달라도 쓸모는 같다.(89쪽)

저자는 음모론을 현대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문화적 ‘쓸모’를 지닌 
사회학 연구 대상으로 파악한다.

책에서 사회학 연구 대상으로서 음모론은 권력을 지닌 둘 이상의 사람들(음모집단)이 어떤 뚜렷한 목적을 위해 비밀스러운 계획을 짜서 중요한 결과를 불러올 사건을 일으키는 것 정도로 규정하고 음모를 정치적인 것으로 제한 할 것을 제안한다.

정치 전략으로 쓰이는 음모론은 ······ 비판에 면역이 되게 만들고, 희생자되기의 전략적 특권을 제공하고, 악마 만들기를 통해 희생양을 만들어 르상티망을 정치적으로 착취하도록 한다.(194쪽)

정치영역에서 음모론은 두가지 방식으로 작동한다.

기득권자가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회저항세력을 사회질서 파괴자로 몰아세워 음모집단으로 규정하고 대중적 지지를 얻는 방식의 ‘통치의 음모론’이 그 하나이고

아웃사이더나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과 분노, 자신들의 추락한 도덕성을 복원하기 위해 기득권자를 겨냥한 대항지식으로서의 ‘저항의 음모론’이 또다른 하나이다.

음모론은 현대 정치의 중요한 전략이자 자원이 되었다. 
지지자 동원에 효과적이고 정적 공격에 유용하며 자신에 대한 비판을 무력화하는 데 쓸모를 지니기 때문이다. 
음모론의 정치적 쓸모는 특정 정파나 권력의 위치에 제한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음모론은 ‘민주적’이다. 
좌우를 막론하고 또 지배하는 자나 지배당하는 자 모두에게 쓸모가 있다. 
권력 유지에쓰일 수 있는 것처럼, 저항을 위해서도 활용된다. 
나중에 자세히 다룰 것이지만 먼저 말해두자면, 음모론은 강자의 지배를 위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권력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약자의 무기a weapon of the weak”이기도 하다.(31쪽)

하지만 저자는 저항의 음모론이 내러티브 만들기, 패러디와 조롱 같은 음모놀이에 머물 뿐 정작 현실을 바꾸는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결국 저자가 제시하는 음모론의 치유책은 공공 영역의 신뢰 회복과 다른 하나는 개개인의 책임윤리이다.

(음모론자들이 만들어 내는)악마적 관점을 좇아 ‘그들’을 단죄함으로써‘우리’를 정화하는 것은 비교적 단순하며 쉬운 해결책이다. 
진정으로 어려운 것은‘그들’과‘우리’의 공모 관계를 인정하여 우리의‘정치적 책임’을 따지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구태의연해 보이는 책임윤리가 빛을 발한다. 
책임윤리의 세 요소 중 하나인 균형감각은 가물, 다른 사람(타자)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 및‘우리’와 거리를 두는것이다. 
객관적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것이 확보되어야‘그들’과 공모자인 나 자신과 우리 자신에게 죄와 책임을 물을 수 있다.(23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