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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평전 : 시대공감
최열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여러분은 박수근 화백의 작품을 생각할때,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저의 경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까끌까끌한 질감입니다.
그 질감이 선명한 만큼 작품 전체의 윤곽은 흐리마리하달까.
한번 보면 잘 잊혀지지 않을만큼 매우 독특하고 인상적인 박수근의 작품들.
거칠고 입체적인 질감, 이유가 뭘까 늘 궁금했는데
이번에 평전을 보면서 무릎을 탁 쳤답니다.
마치 돌 위에 그린 그림처럼, 대단한 그 질감의 근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거든요.
(어린시절을 보낸 양구에 바위가 참 많았다고 해요.)
그러자, 이제 그의 작품을 두눈으로 보고, 그 질감을 느끼고, 단색조의 풍성함을 느껴보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학벌도 없이 어린시절부터 혼자 수련해서 그 자리에 선 만큼 미술계의 권력 쟁투에 늘 밀려나 인정받지 못한 채 가난에 늘 허덕였죠.
결국 그는 작품을 완성하는 족족 내다팔기 바빴고, 결국 그의 작품들은 그의 재능을 알아본 외국인들에게 주로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보니 너무너무 아쉽게도 우리가 박수근의 작품을 접하기가 쉽지 않은 듯 합니다.
(현재 박수근 미술관에 있는 그의 작품들은 유화 세점에 작은 소묘 몇점이 고작이라니,
언제쯤 그의 작품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가장 한국적인 소재(주변의 일상과 사람들을 많이 그렸지요)를 가장 현대적으로 그려낸 박수근 화백.
그의 작품은 질감외에도 회백색류의 단색조 사용,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풍부하게 느껴지는 깊이!
기하학적 화면 배분과 대상 비율로 매우 세련된 추상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흰 물감을 많이 썼는데요. 이 흰 물감들이 그만의 독특한 질감을 이루는데 일조를 했지요.
근데 전 그가 작품 전반에 백분이나 흰 물감같은 것을 고집한 이유가 어쩌면 그만의 ‘한’을 담은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 벌거벗은 나무로 서서,
천국같은(그는 기독교였어요) 풍요로운 시대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그들의 일상을 그리면서,
그리고 그 자신 또한 그러한 나목으로 선 채 언젠가 열매맺기를 기다리면서,
자식과도 같은 작품들을 외국인들에게 내다팔면서,
백의 민족으로 불리는 민족성과 그 한을 흰 물감으로 상징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구요.
당대에 인정받지 못한 그림에 대한 애착과 열정을 바위 위에 새겨 길이길이 남기려는 열망 때문에 화폭을 바위 삼아 그렸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그의 작품들을 가만 보면 분명히 정지해있는데도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아마 그 안에 담긴 ‘기다림’이라는 정조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가 마흔일곱의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뜨면서 마지막으로 한말이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였던 것은 아닐지,
평생 기다리기만 했던 그의 마지막 말이 그래서 더욱 먹먹하게 와닿습니다.
끝으로
평전을 읽으면서 작품과 텍스트가 어쩔 수 없는 사정(!)에 의해 나란히 실리지 못했다는 점
이 참 아프면서도 아쉬웠고,
앞으론 서양미술 뿐 아니라 한국미술, 의 아름다움도 더욱 높이 평가되고,
이러한 작가들의 삶과 작품 세계 조명이 더욱 활발히 이루어졌음 좋겠다는 소망이 생겼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