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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납치사건
재스퍼 포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북하우스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평생 나는 운명이 내 소매를 붙잡는다고 여겼다.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언제 우리가 그것을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우리 중에 거의 없다. 모든 작은 행위들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그것들에 영향을 미치는 도미노 연쇄를 일으킨다. 목적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나는 행운이었다
-서즈데이 넥스트, 「특작망에서의 생활」
제인 에어는 아마도 초등학교 때쯤 읽었던 것 같다. 그 시절의 나는 닥치는대로 아무거나 읽어대곤 했으니까. 어떠한 책은 어느 나이대쯤에 읽어야 한다는 게 참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뭐 엄마 젖을 먹어야 할 아이에게 밥을 줄 수는 없으니까. 여하튼 나는 언제나 제인 에어가 싫었다. 오만과 편견만큼이나. 초등학교 때 읽어서 싫었던 책이 지금 내 나이에 읽는다고 감동적으로 다가올 것 같지도 않다.
여하튼 그토록 싫어하는 제인에어가 납치되었다니, 왠지 호기심이 발동해서, 참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소감은,
작가가 영화 일을 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재미있는 sf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다.
영웅적인 주인공에 카리스마적인 악당의 대결 구도, 속도감 있는 전개 방식, 위기의 순간마다 별의별 방식으로 동원되는 주인공을 돕는 우연들, 그리고 해피 엔딩 마무리까지.ㅋ 뭐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만큼 작가는 이야기꾼이다. 인물들의 캐릭터만 더욱 보강된다면 아주 재미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 ㅋㅋ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풍부한 이야기성에 있다. 대중문학이란 장르에 고전문학의 대가들을 끌어들여 이야기들을 공들여 풀어나갔다. 재기발랄한 작가다. 한때 유행처럼 궁금증을 자아내며 흘러갔던 셰익스피어의 그 명작들을 과연 누가 썼는가에 관한 미스테리(정말로 나는 늘 궁금했다는)는 적시에 잘 찾아들어가 쉬어갈 타이밍도 만들어 주고, 메시지도 과하지 않게 적당히 넣어주고. 간만에 순문학에서 벗어나 재미있는 장르 소설 한 편을 읽은 기분.
책추천 서평 중에, 브론테의 ‘고전’을 싫어했던 독자들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거라고 한 내용이 있었는데, 정말 그렇더라. 머리 식히기에 딱 그만.
소설의 몸은 역시나 이야기성에 있으니까 몇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주제의 가벼움이나 무거움은 이야기성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어려운 얘기를 하고자 할수록 더욱 재밌어져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읽히지 않을 거라면, 누구를 위해 쓰고자 하는가.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었다.
“동의하오. 여기서 나는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소. 나는 서른 여덟에 존재하게 되어 난생 처음으로 사랑에 빠지고 내 사모의 대상을 잃은 후에, 곧 다시 꺼지게 되오. 내 존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