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 2 : 살은 돈이다 - 허영만의 관상만화 시리즈
허영만 지음, 신기원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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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만의 상업만화는 그래도 기존의 작품으로서의 예술성을 가지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세일즈맨>, <타짜 시리즈>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식객을 정점으로 그의 만화는 '작품'에서 '상품'이 되어버렸다. 상품화되어가는 그의 만화에 대해 별다른 비난을 하고싶지는 않다. 그것 역시 그의 선택이므로, 이 부분은 그의 독자로서 내가 존중해줄 부분인 것이다.

 만화 틈틈히 엿보이는 자식 자랑이나 성공한 작가로서의 우쭐함은 그와 오랫동안 해온 독자로서 웃어넘길 수 있는 일 -예전에 비트나 세일즈맨에서 말해왔던 그의 정신은 어디로 갔는가? 라는 의문이 남지만- 이다. 그 역시 작가이기 전에 한 사람이므로...  

 그래, 다 좋다. 그가 팔리는 책을 그려야 출판사도 먹고살고, 여기 알라딘 직원들도 먹고 살 것 아닌가?  이해해 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말이다, 최신작 '꼴'은 기존의 독자로서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운 '상품'이다. 여러번 반복해서 읽어보았지만, 도대체 그가 이 만화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오랜 독자이자 한 사람의 팬으로서 배신감마저 느껴지는 만화다.

 먼저, 만화로서 일단 인물(내지는 캐릭터)들의 개성이 전혀 없다.  얼굴에 선캡하나 단 친구하고 그냥 평범한 여자 캐릭터, 그리고 관상을 설명해주는 싸부 비스무리한 캐릭터 셋이 등장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건가? 만화 속의 인물들은 모두 죽어있다. 사람으로서의 생동감이 없다. 이것만으로도 일단 실패작이라 불림에 부족함이 없다.

 이해를 돕기 위해 기존의 허영만 작품을 돌이켜보기로 하자. 항상 얼굴은 붕어빵에 캐릭터들의 성격도 비슷비슷하다. 심지어는 가끔 이름도 비슷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캐릭터들은 살아있다. 이 점이 바로 허영만 만화의 위대한 점이었다.

 그러나 김세영이라는 탁월한 스토리 작가가 빠지자 허영만의 만화는 3류도 못되는 그저 격이 낮은 낙서가 되어 버렸다(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래서 한 일본의 만화가가 그랬던가? 만화를 그리기는 쉽지만, 좋은 스토리를 써내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만화가는 그래서 어렵다. 단순히 그리는 기법만 연구할 것이 아니라, 만화가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늘 끊임없이 생각하고 탐구해야한다. 이것이 되지 않고 그냥 그림만 가지고는 성공하기 어렵다. 죽어라고 연습해봐야 좀 그림체 좋은 그저 그런 만화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사고의 내공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기껏해야 성인만화 내지는 외설물이나 그리며 밥줄이나 이어갈 수 밖에... 국내 작가 중 임달영이라는 작가가 딱 이 중간즈음에 있을 것이다.

 아마도 허영만 자신 스스로 관상에 대해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본디 관상학 자체가 근거없는 해설에 불과하다. 도대체 길거리에서 타로점 치는 것과 관상봐달라고 복채내는 행동에 어떤 차이가 있단 말인가?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상을 통해 알 수 있다는 믿음이 흥미로운 소잿거리가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이상은 될 수 없다. 

 허영만 자신도 이 모순된 구조에 빠져서 허우적대며 '대체적으로 그렇다' 내지는 '전체적으로 봐야한다'라는 애매모호한 정치인같은 표현을 써가며 비켜가려고 하고 있는데, 만화로서 재미도 없고, 학술서로서 감동도 없다. 특히 1권에서 애매하게 워렌 버핏(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을 연결시킨 사례, 그리고 이창호와 이세돌의 차이를 관상으로 풀어내는 내용은 정말 저질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허영만이 이들에 대해 연구해 봤다면 절대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경솔한 행동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작인 '부자사전'을 읽는 도중에 일부 깊이없는 설명을 보며 무척 실망스러웠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 '꼴'이라는 만화를 보면 '부자사전'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기본이 안된 자세'가 더욱 더 커져서 결국 터져버린 느낌이다. 그리고 이 '기본이 안된 자세'는 그가 점점 상업화되어가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영화화도 되고, 드라마화 되어서 TV출연하는 것도 좋지만, 본래 만화가로서의 그 본인 자신을 잃는다면 돈은 많이 벌지 몰라도 그 스스로나 한국 만화계에 있어서나 무척이나 불행한 일 아닐까.

추신1. 그리고 알라딘은 조금이라도 고객에 대한 생각이 있다면 이런 저질 만화 광고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추신2. 서두에 그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만화책 역시 하나의 상품이고, 작가는 자신의 책이 잘 팔리도록 작품의 상업성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비록 타짜가 도박과 섹스, 그리고 폭력으로 얼룩진 작품이었지만, 그래도 이 역시 현실이고 하나의 작품이다.(이중적인 발언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타짜는 내가 봤던 최고의 만화 중 하나였다.) 그러나, 현재 만화가로서 최소한의 기본-주제, 인물, 스토리, 구성과 같은 것들-조차 잊어버렸다고 보여지는 작품을 내놓는 순간 허영만은 더 이상 허영만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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