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ure - 지우지 않은 사람들
백인희 지음 / 지식과감성#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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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ndure : 지우지 않은 사람들』 | 백인희 |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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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은 이런 상상을 했다.
시험을 망치거나,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실패를 겪고 나면
그냥 타임머신을 타고
그 순간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때만 없었으면’
‘그 장면만 지울 수 있다면’
내 삶은 조금 더 쉬워질 것 같아서.

솔직히 말하면,
나는 지금도
과거의 속상하고 좋지 않은 기억들을
지우고 싶을 때가 있다.

그 기억들이
어떤 날의 기분을 망치고,
어떤 관계를 조심하게 만들고,
어떤 선택 앞에서 나를 작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조금씩 깨달았다.
지우는 것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지우면 편해질 수는 있겠지만
그 편안함이 정말 회복인지,
혹은 책임과 성장을 건너뛰는
‘단축키’는 아닌지.

<Endure : 지우지 않은 사람들>은
바로 그 지점에서
흔들리는 나를 아주 단단히 정신차리게 만들었다.

이 소설이 인상 깊은 이유 중 하나가
‘기억 삭제’라는 설정을
자극적인 장치로 소비하지 않고,

그 설정을 통해 정교하면서도 따스하게
삶의 윤리를 묻는 방식이었기에.
더욱 여러 번 읽고 음미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흔히
상처를 “극복”이라고 부르고,
잊음을 “치유”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질문한다.

지우는 건 정말 치유일까.
아니면 고통의 원인을
나 자신에게서만 떼어내고 싶은
또 다른 형태의 도피일까.

나는 이 소설에서
‘윤리’라는 단어가
어떠한 선택의 무게로 등장하는 순간들이 좋았다.

소설의 페이지들이 말해준다.
지우지 않는다는 건
고집이 아니라 책임일 수 있고,
기억을 끌어안는다는 건
자기연민이 아니라
자기서사를 지키는 일이라고 말이다.

특히 감탄했던 건,
작가님께서 이 모든 질문을
설교처럼 내리꽂지 않고

인물들의 삶과 선택,
그리고 그 선택 이후의 균열과 대가를 통해
조용히 “증명”해 보이신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윤리관은
문장에 붙어 있는 표어가 아니라
서사 안에 스며든 호흡처럼 느껴진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답을 따라오라고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끝내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이 책을 덮고 나서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던 마음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그때로 돌아가서 고치고 싶은건
사실 그 사건이 아니라
나를 지키지 못했던 감각일 수도 있고,

그때로 돌아가서 지우고 싶은건
기억 자체가 아니라
그 기억이 남긴 수치심이나 두려움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것’들은
삭제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시간과 성찰과 관계 속에서
다시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하는 감정이라는 것을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이 좋다.

“지우면 살 것 같았던 사람”에게
“지우지 않고도 살아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감정이 아니라 윤리로 보여주는 이야기라서.

오늘의 나는
타임머신을 꿈꾸는 대신
지우지 않은 나를
조금 더 존중해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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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백인희 작가님 @polarbear85baekgom85 으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소중한 도서 감사드립니다🙏🏻

#Endure #지우지않은사람들 #백인희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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