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어디에도 안식의 땅은 없다

검은 빛 ㅣ 매드 픽션 클럽
미우라 시온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8월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충격으로 헤어 나오는데 한참 걸렸다. 그만큼 읽는 내내 폭력으로 얼룩진 스토리와 심리묘사에 압도되고 말았다. 쓰나미 라는 자연의 폭력으로부터 살아남았지만 살인이라는 굴레로부터 평생 자유롭지 못한 세 명의 인물들의 갈등과 삶을 각자의 시각에서 흡인력 있게 잘 묘사한 작품이다. 어느 날 밤, 미하마 섬에 불어 닥친 쓰나미는 섬 전체를 초토화 시키고, 그 곳에서 세 명의 아이들과 세 명의 어른만 살아남는다. 그 중 주인공 노부유키는 여자친구 미카를 위해 한명의 어른을 살해하게 되고, 다스쿠는 그것을 목격한다. 섬에서 나와 어른이 된 세 아이는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가지만 그 삶은 불행의 연장일 뿐이다. 비밀을 밝히려는자와 묻어두려는 자의 얽히고설킨 실타래는 또 다른 쓰나미가 되어 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고 만다. 

 이 책에는 다양한 폭력이 등장한다. 섬에 불어 닥친 쓰나미처럼 자연재해의 폭력부터 소년에서 성인까지 이어진 아동학대, 중학생 소녀를 강간하는 남자의 폭력, 분노에 의한 살인까지 우리 삶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폭력의 잔해는 인간의 검은 내면을 채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폭력보다 더욱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은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시퍼렇게 멍든 아동폭력을 보고도 못 본 척 하는 사람들, 가식적으로 가족들에게 성실한척 사랑하는 척 하며 사는 남자, 자신의 미모를 팔아 야망을 이뤄가는 여자, 등등 그 종류 또한 다양하다. 

노부유키, 평생 미카만을 사랑했고, 미카를 위해 하게 된 두 번의 살인을 그는 폭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죄책감이 없으니 그에게 그것은 이미 폭력이 아닌 것이다. 성인이 된 후 가족들에게 헌신적이지만 미카가 없는 그의 인생은 이미 죽어버린 것이나 같다. 그의 아내 또한 노부유키의 비밀을 알게 되지만 가정을 위해 평온함을 가장한 채 살아가고 만다. 세 사람 만큼이나 운명의 폭력성에 희생당하고 만다.
미카, 타고난 미모 때문에 불행을 겪고, 성인이 된 후 과거를 모두 끊어내고, 톱스타가 된다. 그러나 그 미모를 조금씩 팔아가며 남자들을 이용하는 그녀의 삶은 오래 전 폭력으로부터의 도피일 뿐이다. 폭력으로 점철된 그들이 쉴 수 있는 안전한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다스쿠, 어릴적부터 시달려온 아버지의 폭력으로 그의 정신과 육체는 망가질대로 망가졌다. 그런 자신에게 노부유키가 관심 가져 주기를, 아껴주기를 원하지만 노부유키의 경멸과 무관심만 돌아올 뿐이다. 노부유키에게 어떤것이라도 의미가 되고 싶어 그를 협박하지만 끝내 그는 누구에게도 어떤 의미도 되지 못한다. 끊임없이 폭력에 노출된 사람이 어떻게 될 수 있는 보여준다. 

 운명은 그들에게 특히 잔혹했다. 비극적이면서도 잔인한 그 운명의 폭력성은 인간의 본능적인 방어본능과 야수성을 끄집어내고야 만다. 엄청난 스토리 덕분에 다음 장을 넘기기 겁이 나는 대단한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냉소적이고, 우울한 분위기의 소설이지만 문장 하나하나는 시처럼 아름답다. 일본소설을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나의 편견을 시원하게 깨뜨려준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