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성씨와 족보 이야기 - 족보를 통해 본 한국인의 정체성
박홍갑 지음 / 산처럼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족보를 굳이 살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족보를 살피는 일은 구태의연한 것이라고만 치부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이 족보에 관심을 주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한국인들의 성씨와 족보의 여러 가지 양상을 추적한다. 중요한 것은 족보를 둘러싼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는 일이다.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은 보학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 족보를 중요시 했기에, 족보를 추적하는 일은 당시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각을 엿보는 일이기도 하다.

 

족보가 처음 등장하던 모습을 살펴보면 이렇다. 15~17세기 중반에는 친손이나 외손을 구분하여 족보에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15세기 후반에 기록된 족보를 보면 외손이 오히려 90%가 넘기도 했다는 것이다. 고려말기과 조선초기에 부계와 모계의 구분에 크게 무게를 실지 않았던 사회 분위기가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아들과 딸이 차별 받지 않고 상속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17세기 말에는 족보가 남성 중심 계보의 양상을 보이게 된다. 특히 사회변동이 급격해지면서 자기 조상의 위상을 높여서 이것으로 사회적 위신을 세우려는 풍조가 나타나게 된다. 재밌는 것은 통계적으로 조선 전기에 나타난 본관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 수가 1000여 개 정도 감소했다는 점이다. 남들이 보기에 초라한 본관을 가진 이들은 자기 본관을 버리고 남들의 본관으로 위조했다는 얘기가 된다.

 

사실 우리 가문의 족보에는 위대하다고 말할 만한 인물이 실려 있지 않다. 중학생 때 이 사실을 알고 얼마나 실망했는지. 아무리 족보를 뒤져보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훑어봐도 대단한 조상님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당시 내 좌절감이 조선시대 평민들이 족보를 위조하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족보를 보며 위대한 조상을 자랑스러워 하는 것은 어쩌면 헛된 자기위안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적지 않은 우리 조상들이 족보를 통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이 책을 통해 알아 보는 일은 결코 의미가 없지 않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지치고 고단했던 삶에서 자기 조상을 높임으로써 자신을 위로해보려 했던 우리 조상들의 욕망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