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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흰 토끼 ㅣ 블랙 라벨 클럽 29
명윤 지음 / 디앤씨북스(D&CBooks) / 2017년 1월
평점 :
요즘은 이북으로 읽을 수도 있고 책장에 여유도 없어서 나담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는데, 제 흥미를 자극하는 소설이 나왔어요. 이번 출판으로 처음 알게 된 책이지만 이상한 나라의 흰 토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주인공 소윤은 평범한 대학생이었지만 그녀의 남자친구를 짝사랑한 여자에게 살해당하고, 눈을 뜨니 죽기 전 읽었던 소설 「원더랜드」의 안에 들어와 있는 걸 깨닫습니다. 끔찍한 실험을 당하고 에이전트로 이용되던 그녀는 탈출해 무법지대인 원더랜드로 도망칩니다. 그리고 마침 시작되려던 코커스 레이스에서 흰 토끼의 자리를 얻어내죠. 소윤은 원작대로 흘러가 끝이 나면 다시 지구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미한 희망을 품고 고군분투하게 됩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세계가 차용되는 경우는 종종 봐 왔어요. 보통 아기자기한 분위기로 가거나, 기괴함과 잔혹함 쪽으로 가는 두 가지로 나뉘는데 이 소설은 후자더군요. 그래서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림이나 실사로는 잘 못보지만 글로는 어지간히 잔인한 것도 괜찮거든요!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에요. 특히 로맨스 소설은 사랑이 이루어지고 달달한 부분이 길어질 때 좀 질리는 경향이 있는데…이런 요소가 있으니 지치지 않네요. 게다가 피를 튀기고 뼈를 아작 내는 주체가 대체로 소윤이다 보니(…) 약한 주인공이 아니라 더 좋았습니다. 무덤덤하면서 정이 많은 성격도 정말 마음에 들어요.
그리고 특히 마음에 든 인물은 매드해터. 우선 첫 만남 때부터 존댓말에 다 귀찮은 듯한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소윤과 가장 인간적인 이해를 나눈 대상이라고 생각해요. 연애감정적 교류는 아무래도 하트와 많았지만 과거의 상처에 대한 공감이랄까, 가장 밑바닥에 대한 이해는 말이죠. 물론 사랑하는 대상에게 헌신적인 면도 포함해서 소윤과 이어지길 바랐지만…조금 아쉽게 되었네요.
읽으면서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소윤의 강박이었어요. 원작과 전혀 달라진 이들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앨리스를 좋아할 거라고 굳게 믿다니…. 이해가 안 되었지만, 본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모습을 기억하면 그럭저럭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는 남자 주연들이 소윤을 사랑하게 된 계기라고 할까요. 특별한 이유는 안 나왔던 것 같아요. 그냥 호기심을 갖고, 그 다음엔 호의를 갖고, 서서히 사랑하게 된 걸까요. 뭐, 아무래도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냈으니. 사실 저는 그렇게 사랑에 빠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보통 대부분의 소설은 그러지 않죠. 그 점이 미묘하게 마음에 들면서도 미적지근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700쪽에 달하는 양이지만 빠른 템포로 장면전환이 느리지 않고 여러 흥미로운 설정들이 있어서 즐겁게 읽었어요. 로맨스도 스토리도 놓치고 싶지 않은 분들은 만족스러우실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