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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평점 :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교수님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https://jacesky1.wordpress.com/2021/05/16/어떻게-민주주의는-무너지는가/) 는 트럼프 정부의 등장을 전후로 한 미국 민주주의의 쇠퇴를 여러 국가들의 유사한 사례들과 비교하면서, 포퓰리스트 정치가의 등장이미치는 영향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포퓰리스트를 분간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는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세계 각국의 정치적 상황은 한층 더 후퇴한 듯합니다. 미국도 다르지 않습니다. 2021년 1월 6일, 폭도들은부정 선거를 주장하며 국회의사당을 폭력으로 점거했습니다. 두 교수님은 전작에서의 현실 분석이 충분하지 않음을 느끼셨는지, 두번째 저서인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로 돌아오셨습니다.
폭동을 부추긴 트럼프 대통령은 사법 조치를 받기는 커녕, 세력을 키워가면서 당 내 인사들이 자신에게 충성하도록 했습니다. 급기야다시 한 번 대선 후보로 선출되고,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첫 저서에서 요구한 것처럼 타협과 이해, 대화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상황인 것 같습니다. 미국이 무너진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민주주의는 무너진 것 같습니다.
다수와 소수
어릴 적부터 수도 없이 다수결 원리를 배우고 실천해 왔습니다. 존중 받아야 할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지 않아야 한다고 배워 왔습니다. 그런데 정치의 영역에서 엉뚱하게도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소수가 법과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다수의 결정을 막고, 심지어 권력까지 장악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정치적 다수가 권력을 차지하지 못하고, 또한 선거에서 이기고도 통치하지 못한다. 오늘날 미국 사회가 직면한 급박한 위협은 소수의지배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21페이지
수명이 길지 않은 시절, 대법관들은 종신제로 신분을 보장받았습니다. 이제는 긴 수명으로 인해 재직 기간이 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낙태에 관한 대법원의 결정은 소수의 판결이 국민 다수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소수의 지배로 볼 수 있습니다.
게리맨더링 역시 임의적인 선거구 획정을 통해 소수로도 당선할 수 있는 소수의 힘입니다. 다수의 힘이 소수 앞에서 무릎 꿇어야 하는 제도로 악용될 소지가 있습니다.
선거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입니다. 정치 세력들은 공정하게 선거에서 경쟁하고, 승리와 패배를 각각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부족한 점을 보완해 다음 선거를 기약합니다. 패자도 다음 선거에서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정권 교체에 걸림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극단주의자들이 득세하는 사회에서 패배는 곧 몰락으로 인식됩니다. 부정 선거를 내세우며 승리를 인정하지 않고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바바라 월터의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에서도 유사한 맥락으로, 어떻게든 정권을 움켜쥐고 있으려는 야욕이 내전의 원인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잘 져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페론당이 쓰라린 패배를 뒤로 하고, 자체 쇄신, 지지 기반 확장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로 두 번의 대선 압승을 거뒀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올라프 숄츠의 평화적인 정권 이양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민주주의는 정당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시스템이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29페이지
마땅한 대선 후보가 없을 때 외부 수혈을 통해서라도 승리를 거머쥐려는 야욕은 위험합니다. 당 내에서 충분히 훈련한 정치가들 중에 대선 주자를 선발하는 것이 극단주의를 예방하는 길입니다.
포퓰리스트에서 극우주의자로
전작에서 정당들이 게이트키퍼로서의 역할을 망각한 채 집권을 위해 포퓰리스트들을 거르지 못했다고 지적했는데, 이번 책에서는 정당들이 극우주의자들을 거르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만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입니다. 그들 역시 표피적으로 절차와 헌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법과 제도를 무기로 악용합니다.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닌, ‘법을 위한’ 통치입니다. 극우 언론을통해 여론을 조작하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습니다.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은 극단주의자들과 손을 잡지 않습니다. 폭력을 절대 용인하지 않습니다. 비록 정권을 획득하지 못할지라도, 승리를 위해 극단주의자들을 영입하는 우를 범하지 않습니다. 선거의 과정과 결과를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도
영원히 유효한 제도는 없습니다. 미국의 헌법 체계를 받아들인 노르웨이는 200년 간 엄청난 수정 사항을 반영했고, 민주주의를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올려 놓았습니다.
건국의 아버지들 역시 미국 최초 헌법이 완벽하지 않으며, 후세들이 더 좋은 헌법이 되도록 수정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당시에는 여러 세력의 통합이 너무나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양극화된 미국 정치에서 주 의회 4분의 3의 비준이 필요한 개헌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입었던 코트를 이제는 벗어야 합니다. 다수가 지지하는 대통령이 선출될 수 있도록 Winner-takes-all의 선거인단 제도 (Electoral College) 를 직접 선거로 변경하도록 개헌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수에게 힘을 실어 줘야 합니다.
배제와 봉쇄
극단주의 세력을 배제하고 봉쇄하는 것이 대응의 핵심입니다. 특히 정당들이 연합해 국회에서 극단주의자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대화와 타협으로 횡포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은 나이브합니다.
우리나라는?
책을 읽으며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야당과 대화를 닫고, 거부권을 남용하고, 급기야 쿠데타를 일으키는 모습이 미국과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극단적 세력은 서부 지법을 침입했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회복될 수 있을까요? 저자들의 가이드를 참고해 극단적 세력들을 봉쇄하고 배제하는 노력을 정치권에서 기울여 주기를 기대합니다.
민주주의 수호는 이타적인 영웅의 과제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일어선다는 말은 우리 자신을 위해 일어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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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대의 미국인들이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리고 동시에 더 나은 민주주의, 즉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 비전을 보여줬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369, 370페이지
저자들의 의견처럼 정당의 역할과 헌법을 비롯한 절차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시민들의 참여입니다. 계엄과 탄핵을 이겨낸 우리 시민들의 진심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다시금 발전시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