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가 무슨 말을 필립 K. 딕의 SF걸작선 2
필립 K. 딕 지음, 유영일 옮김 / 집사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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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창작의 고통 또는 환경의 선물로 얻게된 흥미진진한 경험들 어쩌면 역사가 선택하는 천재성으로 얻게되는 남다른 상상력의 소유자인 '필립 k 딕'은 결말이 궁금해지는 이야기 구조속에 미래 사회에 대한 경고 더나아가서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절묘하게 섞어놓아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레 그러한 문제점들을 각인하도록 만든다.

'비인간화'라는 현대사회의 문제점이 가져올 수 있는 수많은 미래사회의 에피소드들이 이 책에 담겨있는 여러 중,단편들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러한 소재들은 때로는 잔인하게 때로운 무덤덤하게 전해진다. 여기서 무덤덤하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충격적인 사실, 내용의 결정적 클라이막스에 재료로 사용될 만한 내용들을 아무런 사전 준비없이 '툭'하고 던저 놓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그러한 것들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물론 무덤덤하지 않게......)

여러 에피소드들에서 나오는 비극적인 미래의 모습은 어찌보면 현제 진행형일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그 탁월한 적응력은 새로운것에 대해 놀라고 망성이겠지만 곧 익숙해져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로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새로운 것의 발견과 발명의 단기적 편리함은 그것이 가져올 장기적인 위험과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 예로,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기계들은 우리의 생활을 편안하게 만드는 일에 공헌하고 있지만 그만큼의 몇십배에 달하는 환경파괴라는 장기적인 위험도 계속 증가 시키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이러한 점을 새심하게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 늦기 전에......

<아무도 못말리는 M>두번의 반전중 한개를 먼저 가르쳐주는 특이한 형식을 취하면서 진행되는 짧은 스릴러. 살인사건이 있고 범인(?)이 있고, 배신이 있고, 음모가 있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인간 기억의 조작이라는 소재 자체가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이야기이다. 물론 결말부분에 실소를 자아내는 재치있는 내용이 오헨리의 한 단편을 읽은 듯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영화 '토탈리콜'의 원작인 이 소설은 좋은 작품일 수록 영화화 될수록 수준이 떨어져 간다는 것도 알게 해준다^^ 그만큼 이 작품은 재미있다.)

<두번째 변종> 가장 섬뜩한 미래를 이야기 하고 있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적을 없애기 위해 수많은 무기들을 만들어 왔고, 이제는 핵미사일 발사 버튼의 잘못된 조작만으로도 전 인류가 몰살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 그 무기가 드디어 인간을 정복하고 지구의 새로운 주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죽은자가 무슨 말을> 조작된 매스컴으로 인해 전 인류가 통제될수 있는 미래의 한 사건을 통해서 '영상매체세대'들의 위험한 믿음(언론에 대한, 또는 공개적인 것에 대한, 그리고 대중적인것에 대한)의 위험성을 표현하고 있다.

<매혹적인 시장> 자본주의가 가져올 암울한 미래상에 대한 절묘한 변주. 특히나 섬득한건 그러한 암물한 미래를 가져오는 자본주의도 결국 인간이 만들었다는 것이고, 그 스스로도 그러한 섬득함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소설에 나오는 '할머니'처럼......(따라서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오르페우스의 실수> 시간여행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같은 결론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시간여행으로 도착한 과거에서의 '실수' 그리고 그로 인한 현제의 변화,그리고 당연히(?) 변화를 만회하려는 또다른 시간여행 ^^

필립 K 딕의 이야기들은 항상 생략된 묘사와 충분치 않은 상황설명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독자들이 모든것을 파악하는데 시간을 지연시키고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상상력에 의지하도록 만들면서, 작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애를 태우며 기다리는'독자들에게 천천히 풀어 놓는다. 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아마도 자신의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이야기가 좀더 낳은 현재를 위한효과적인 소품이 되도록 하려는 치밀한 창작의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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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환상문학전집 4
마가렛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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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소설들이 참 많아졌다. 아마도 그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라는 생명체는 은근한 기대보다는 불안한 공포감에 더 많은 관심을 나타내기 마련인가 보다.

<시녀이야기>는 아주 가까운 미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느날 '쿠테타'로 보이는 사건에 의해서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질서가 모두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아가고 있던 사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물론 모든게 상상이고 허구의 세계이다. 하지만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미래사회가 출현하게 되는 원인은 허구나 상상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제에서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생명경시풍토''정복대상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관점으로 인한 환경오염''여성에대한 잘못된 관점들'이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사회 출현이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처음부터 우리에게 모든것을 설명해 주지 않는다.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서 아주 천천히 소설속의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속도감이 없는것은 아니다. 발단,전개,복선,클라이막스,결론이라는 소설의 원칙을 절묘하게 변주해 놓았기에 미래사회가 가져올지도 모르는 불행이 독자들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그리고 극적으로 전달된다.

<시녀이야기>가 그리고 있는 미래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디스토피아다. 남성들이 자신들을 위해(인류를 위한다는 거짓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여성들을 인간이 아닌 '아이를 낳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뒤에 그들에게는 인간으로서의 여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자명한 진리는 언제나 같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이 소설은 환상문학전집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다분히 페미니스트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정치적인 메세지가 충분히 담겨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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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아민 말루프 지음, 김미선 옮김 / 아침이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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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십자군전쟁'에대한 보다 객관적인 관점을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아주 의미있는 책이 될 것이다.

혹 '우리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저 먼곳에서의 그리고 아주 오래전에 일어났던 전쟁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 라고 물어보신다면......이 책에서 우리가 의미있게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은 '전쟁자체' 즉 '언제 어디서 누구와 누가 싸웠느냐'가 아니고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누가 피해자 이고 누가 전쟁을 일으켰으며, 어떠한 것들이 이러한 잔혹한 전쟁을 일으키게 되는 정당한 혹은 정당하지 못한 명분이었느냐' 하는 것이다.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아키라 감독의 '라쇼몽' 이라는 영화가 있다. 헐리우드에서 니콜라스 게이지 주연의 '스네이크 아이' 라는 영화로 리메이크 했고 그 이외에도 수많은 영화에서 차용되는 이 영화의 매력은 바로 '관점의 차이'가 가져오는 선과 악의 구분이다. 이 책도 '라쇼몽' 처럼 '십자군전쟁' 전쟁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가져오는 -선과악의 문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식의 전환 문제를 말하고 있다.

우리 고등학생들이 보는 '세계사' 교과서에는 성지인 예루살렘을 유럽인들로부터 다시 되찾은 아랍인'살라딘' 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반면에 십자군 원정을 호소했던 유럽인 교황 ' 우르반2세'의 이름은 나온다. 또한 1차 십자군 원정의 결과를 '성지회복'이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마호메트'가 승천한 예루살렘은 이슬람교도들에게도 성지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성지를 침략 당했다는 말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가 없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십자군전쟁'의 진실 파악이라는 역사적인 지식의 축적보다 '관점의 다양함'에 대해 인정하는 자세와 더 나아가서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할수 있는 시작점을 발견할수 있어야 할 것이다.

1983년에 발간된 책을 이제라도 번역하여 출간할 생각을 하신 분들께 개인적으로 이러한 책을 접하게 해 줄 기회를 준것에 대해 감사드리고 싶다. 다만 이 책에 대해 몇가지 아쉬운 점을 언젠가 또 재 출간이 된다면 더 좋은 책을 만들어 주십사 하는 바램에서 적어본다.

이 책은 분명히 2 권 이상의 분량으로 나왔어야 하는 책이다. 용어 정리와 상세한 지도를 넣는다면 그리고 각 전투의 상황상황을 좀더 자세하게 전하려 했다면...... 이건 원작자에게 바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나 그동안의 일방적인 문화 인식 과정을 통해서 유럽의 지명은 잘 알고 있으나, 중동지방의 지명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책을 보면서 그 수많은 도시의 이름들이 나올때마다 책 맨 뒤에 있는 지도를 찾아봐야 한다는 것은 상당한 고역이었다. (특히 그 지도는 중간부분이 책 사이에 끼어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ㅡ_ㅡ;;)

또한 우리에게는 생소한 아랍사람들의 이름을 어떨때는 중간이름으로 어떠한 경우에는 마지막 이름으로 또 어떨때는 그가 가지고 있는 지위의 명칭으로 나와 있어 사람구분하는 일도 만만치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불만들은 원작자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출판하시는 분들에게 그 책임을 돌려야 할 것이다. 번역도, 그리고 책에 대한 형식과 편집 과정도 하나의 창조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창조과정에서 가장 중요시 되어야 할것은 독자들의 읽을 권리에 대한 확실한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ㅎㅎ 잘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고,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을 읽고 나서 불만만 잔뜩 늘어 놓은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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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동화집
헤르만 헤세 지음, 정서웅 외 옮김 / 민음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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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를 안심시켜주는 점은 헤세의 글들이라는 점이다. 헤세는 이 책에 담겨있는 단편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일종의 경고 메세지를 전하고 있으며 그러한 의도는 여러 이야기들을 통해서 은유적으로 때로는 직설적으로 반복되어 전해진다.

이 책에 담겨있는 여러 단편들의 공통점은 '세상에 대한 걱정'이다. 문명에 대한 걱정, 이기심에 대한 걱정, 사랑결핍에 대한 걱정...... 헤세다운 '세상에 대한 연민'들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비극을 통해서 희망을 바랄수 있는 존재들이기에 수 많은 단편들에서 보여지는 비극적인 결말과 허무한 공허함은 우리에게 희망을 제시해 준다.

하지만...... '헤르만헤세의 환상동화집' 이라는 제목을 헤세가 듣는다면 아마 헤세의 그 날카로운 팬 끝으로 '자본주의의 책팔기'에 대한 동화 한편을 이 책에서처럼 우울한 문체와 비극적인 결말로 끝을 맺으며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원작의 제목에도 없는 말들을 책제목에 집어 넣은 이유를 '상업적'이라는 말 말고 달리 표현할수 있는 방법이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헤세의 아름다운 글들을 읽던 청소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한가로이 잠자리에서 동화책을 읽으며 꿈나라로 떠나고자 했던 나의 바램은 첫번 이야기가 지나가고 두번째가 되고..그리고.. 산산히 부서졌다. 이 책에서 헤세가 우리에게 경고하는 그 수많은 메세지들이 이런 것이 었는데......

p.s 마지막에 아주 짤막한 동화 한편이 있는데('두 형제'라는)......결말도 너무 쉽게 예상되고, 이야기도 쉽게 들어 봤을 법한 이야기 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소름이 끼칠정도로 아름다운 느낌을 나에게 선물해주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것 같은 가슴 뭉클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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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돌리노 - 상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현경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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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푸코의 추'에서 우리의 지적인 자부심을 자극했던 에코가 이제 '바우돌리노'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마지막에 우리의 뒤통수를 '상상력과 놀라움의 망치'로 때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기에 우리는 책장을 덮고 나서도 오래도록 그의 이야기에 취해서 여운을 음미 할수 있다.

이 소설에서 바우돌리노가 말하는 이야기의 진실과 거짓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그져 에코가 자신의 분신같은 - 무한한 상상력의 소유자라는 면에서, 바우돌리노를 통해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즐기고, 함께 동참하면 된다.

'장미의 이름' 에서처럼 머리를 쥐어짜며 에코가 우리에게 범인을 알려주기 전에 자신의 힘으로 찾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그런 의무감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면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루는 '프리드리히 황제의 죽음'에 너무 집착해서 책을 읽지 않아야 한다고 다른 독자님들에게 권해본다. 몰론 마지막에 밝혀지는 비밀은 우리를 충분히 '와우' 하고 소리치게 만들지만...... ( 더 궁금해지셨을지도 모르겠다. ^^ )

또한 모든 중세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겠다는 욕심도 버려야 한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중세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우돌리노의 모험이니까 ^^ 중세는 다만 바우돌리노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배경일뿐이다.( 물론 다 이해하면 더 좋겠지만 ㅡ_ㅡ;; )

그리고 번역이 다소 매끄럽지 못하거나 중간에 나오는 지도에 대한 번역을 하지 않은것 등은 다소 흠으로 지적할수 있겠지만, 번역자가 붙여놓은 주석들은 그러한 흠을 매우고도 남음이며, 바우돌리노와 같이 떠나는 모험에 동참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불편함으로 작용할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보다는 에코 자신이 말했듯이 '대중을 위한 소설' 이기에 우리는 즐기면 되는 것이다.

'바우돌리노'에는 다른 에코의 소설에는 없는 것이 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를 웃음짓게 했던 재치넘치는 문장들이 곳곳에서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중세의 이상한 문자들로 가득찬 책 속에서 고지식하게 파묻혀 살것 같았던 에코에 대한 고정관념을... 오 맙소사 그 털복숭이 아저씨가 이렇게 천진난만한 유머스러움으로 가득찬 사람이라니....!!! ^0^

내가 어렸을때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신밧드의 모험' '보물섬' '코난' '오즈의 마법사' 가 이제 나이 30 을 바라보는 나에게 성숙한 모습으로 다가 왔다. '움베르토 에코'라는 상표를 단 '바우돌리노'라는 이야기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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