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묻다 시와서 산문선
나쓰메 소세키 외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한마디 : 추억, 인생, 그리움을 주제로 일본 근대 작가들의 30편의 이야기를 묶은 산문집.
▷ 두마디 : 인생의 추억을 그리워하다.
▷ 추천대상 : 일본작품 좋아하시는 분.
▷ 이미지 : 계절.
▷ 깔때기 :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그리운 것은?
▷ 색깔 : 수필/산문/인생/글/예술/가족/죽음/사랑/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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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기회를 주신 #아직독립못한책방 @a_dok_bang 과 @siwaseo 시와서 관계자분께 머리 숙여 감사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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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묻다. 의 제목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생각했다. 꽃. 무수한 상징을 가진 '꽃'에 대해 묻고 싶은 게 무엇이 있을까? 그러나 이건 ask가 아닌, bury다.
오해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아예 맥락에서 벗어난 것도 아니다. 김애란 작가의 '비행운'의 제목을 오해했을 때처럼, 어차피 책을 읽고 내 안에서 재구성된 의미는 온전히 나의 것이므로.
작가는 꽃과 묻혀진 다른 어떤 것을 찾아내고 싶어했다. 그리고 끝끝내 찾지 못한다. 당연하다. 애당초 묻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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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의무'를 읽고 나니 이전에 읽은 그의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 을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무감으로 삶과 글쓰기를 하였다면 그가 택한 죽음은 본능이었을 터, 본능이 의무를 이겨낸 것일까? 이러한걸 생각하다보면 또 불현듯 치솟는 생각들. 사람은 회귀 본능이 있어. 편리를 찾아 헤매이는 과정에서 점점 사람의 손이 필요없어지는 과학의 발달. 과학의 진화이자 인간의 퇴화같다는 생각. 단세포를 거쳐 결국에는 죽음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본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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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이며수필가인 데라다 도라히코는 나쓰메 소세키의 제자이다. 스승의 권유로 쓴 첫번째 수필인 '도토리'. 열아홉 나이에 죽은 아내와의 추억이 다섯장 분량에 짧지만 그리움 넘치는 문장으로 그려진다. 도토리를 주으며 어린애처럼 기뻐하는 아내의 모습을 묘사한 다음 문장. 이제 없다, 는 갑작스러운 전개에 마음이 쿵 떨어진다. 그립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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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오카 시키의 '사후'를 읽다가 불현듯 온 몸을 덮친 무시무시한 공포. 내 육신의 죽음과 동시에 영혼도 소멸되는 것을 간절히 바라는 나는, 혹시 모든 영혼이 관이나 단지 같은 곳에서 그야말로'영원히' 두 눈을 부릅뜬채 존재하게 된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될까를 생각한다. 몸에 와닿는 육체의 고통보다 더한 심적 고통이 일순 파도처럼 밀려와 나는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대로 잠이 든다. 빌고 또 빌며. 죽은 후에는 제발 영혼같은거 남지 않게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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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작가들의 삶 중 아주 작은 귀퉁이에 고요히 머무른 추억들을 앨범 보는 양 슥슥 구경했다. 여기저기 깔린 '죽음'과 그 안에 분명히 깃든 '삶'의 흔적들. 내가 사랑하는 류노스케와 그를 중심으로 위로 아래로 옆으로 퍼진 동료 작가들과 선후배 작가들의 이야기. 공기중에 밀도 높게 뭉친 그 삶들이 어쩐지 눈앞에 펼쳐진것만 같은 느낌이다. 한번도 해본 적 없지만, 먹을 갈고 한지 위에 한참을 망설이다 마침내 검은 점 하나를 툭, 떨어뜨린 기분으로 읽기를 마쳤다.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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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가 너무도 마음에 들어서, 나는 여러번 자세히 관찰했다. 지나치면 꽃처럼 보이는 산딸기의 붉은 색채가 마음을 빼앗았다. 볼수록 탐이 나. 꽃처럼 보이는 예쁜 산딸기를 따내어 혀끝에 그 시고 달큼한 향을 오래도록 맛보고 싶다. 혀끝에서 손끝 발끝까지 그 향이 오래오래 퍼지도록, 내 몸에 묻고 싶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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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자꾸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그게 뭐가 되었든. 어딘가 묻어둔 비슷한 추억이건, 감정이건. 한 문장 한문장을 읽고 깊이 사유하기에 좋은 작품이었다.

우리의 흥미를 끈 것은 오직 흙 속에 숨겨진 꽃 한 줌의 아름다움이었다. - P12

병은 그렇게 욕심을 줄여주고 인간을 에피쿠로스적인 쾌락주의자로 변하게 한다. 사치에 대한 욕망도 없다. 보통의 건강과 자유만 있으면 길에서 햇볕을 쬐는 거지마저도 부러운 것이다. - P144


지루함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느긋한 것이 아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끊임없이 화나고 초조하고 자포자기하는 우울한 기분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말처럼 프랑스혁명은 지루함에서 일어난 것이니, 이것이 사회의 안녕에 가장 위험을 초래한다 - P145

그러니까 나는 써야 한다. 나는 지금 의무 때문에 살아 있다. 의무가 내 목숨을 지탱해주고 있다. 나 한사람 개인의 본능으로는 죽어도 좋다. 죽든, 살든, 병들든, 그리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무는 나를 죽지 못하게 한다. - P176

당신 소설, 친구한테 잡지를 빌려서 읽었는데요, 그게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무슨 말입니까? 하고 따지고 묻기를 여러 번. 그때마다 슬퍼서, 한마디로 말할 수 있다면 한마디로 말할 겁니다, 그냥 그뿐인 것, 달리 말할 방법이 없습니다. - P179

하지만 결국 그들의 이상이란 그저 그들 종족이 경험한 그림자이고, 유기적 기억의 환상이다. 살아 있는 현재는 그것과는 거의 아무 관계가 없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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