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움과 너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
최현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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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습격한 전염병과 올해 막 시작한 일 때문에 한 해 내내 제대로 쉬질 못했다. 벼르고 별러서 호캉스(라고 하기엔, 방 안에서 보낸 게 전부다)를 떠나는 길에는 다 읽을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책을 두 권이나 챙겼다. 내 집에는 들어올 수 없는 크고 편안한 소파에 앉아, 반쯤 읽은 다른 책을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 내 옆에서 책을 뒤적거리던 친구가 말했다. 마음이 눅눅해지는 글이라고. 궁금해져서 조금 있다가 나도 바로 펼쳐보았다. 첫 꼭지를 읽고 바로 공감하고 말았다.


끝내 전부 감추지도 못하고 / 마음의 절반만 말랐습니다. ('들어서며', 11p)


꼭 젖은 적이 있는 것처럼 '말랐습니다' 했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어쩐지 슬픔이 절반만 괜찮아졌다는 것 같다.


슬픔은 장마 같다. 눈물까진 흘리지 않을 정도의 얕은 슬픔이라도, 마음에는 눅눅하게 습기가 찬다. 그러고 나면 꼭 안갯속을 걷는 것처럼 온몸이 젖고… 그런 상태에서 '절반만' 말랐다는 건 슬픔도 딱 절반 만큼 덜어냈다는 말 아닐까.


슬픔이 없는 사람은 없을 터다. 책을 읽는 내내, 제목을 이렇게 생각했다.


<나의 슬픔과 너의 슬픔이 다를지언정>


우리의 슬픔이 다르나, 우리는 함께 걸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늘어난다면, 세상의 다툼이 약간은 줄어들 것 같다.


 /


예전에는 즐기지 않던 산문집을 요즈음 꽤 많이 읽게 되었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는 말이 어느 정도는 진실이었는지, 읽다 보면 사건이든 감정이든 나와 같은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그 때 그런 마음이었구나, 그걸 말로 표현하면 이런 기분이었던 거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에는 그때의 속상함이 스르르 풀어지는 듯하다. 몇 권의 에세이를 읽으며 계속해서 그런 경험을 하고 있다. 책을 읽기보다는 이불 속으로 숨어들기를 택했던 날들보다는 낫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 그 중간에 있을 수는 없을까. 자의식 과잉과 자의식 결핍의 어느 부분에서 우리는 늘 흔들리며 사는 것 같다. (중략) 끝내 자꾸 흔들리느라, 어떤 감정은 구토처럼 쏟아진다. ('가만히, 중간', 22p)


이런 대목을 읽을 때 특히 그렇다. '구토처럼 쏟아지'는 어떤 감정을 안다. 아마 나는 십대와 이십대 초중반 내내 그런 상태로 지냈던 것 같다. 지금이라고 흔들리지 않는 상태란 건 아닌데(정확히는 그냥 흔들릴 여유조차 없다), 어느 시기를 지나고 나니 그냥 중간 가까운 어딘가에서 슬슬 돌아다니게 되었고, 때때로 어느 한쪽에서 힘겨워하던 시기를 떠올리곤 한다. 다 부질없다 싶기도 하고, 그런 시기가 있었으니까 이렇게 나름 안정된 건가 싶기도 하다.


최현우 시인도 이십대의 전부를 통과하며 자주 불안했고 쉽게 무서웠으나 아주 가끔 완전했다('조금씩, 아주 조금씩', 155p)고 하니까 이 나이 먹고 갑자기 태풍이라도 만난 듯이 덜커덩거려도 정상이겠지.


책을 읽는 내내 함께 슬펐다. 불행해서 슬펐던 건 아니다. 구절구절 마음에 닿았고, 어느 대목은 읽다가 너무 슬프고 마음이 힘들어져서 책을 덮고 쉬기도 했다. 특별히 마음 가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언제든 다시 펼쳐볼 수 있도록 표시하면서 슬프지만 행복했다. 내내 슬픔이 있지만 그래도 견뎌내어 손에 쥐어보는 행복이 있고, 책 소개에 써 있었듯이 '혼자'에서 시작해 '타인', 그리고 '우리'로 끝났기 때문에.


아무리 가려서 감춘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상처받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가끔, 삶에 시간을 덧발라서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기도 하겠지만, 나와 당신의 행복은 이미 세상에 없는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중략) 서로가 서로에게 형벌 대신에 사랑을 말하는 순간들이 있다면, 어둠을 갱신해가며 살아갈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잠시나마 도달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노동이라는 형벌', 179p)


이름을 알지 못했던 감정을 어디선가 읽으면, 나중에 그 마음을 떠올릴 때 그 구절이 함께 따라오곤 한다. 사물의 이름을 학습하는 것과 비슷하다. 책을 읽기 전,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 중에 하나가 우리로 끝난다는 저 소개글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제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설명하려고 보니 저 말을 뺄 수가 없다. 시인의 어떤 슬픔들은 나에게 너무 버겁게 느껴질 정도로 컸는데, 책의 마지막을 읽고는 그 슬픔이 그래도 반쯤은 말랐구나 싶어 안도했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부터 가능하면 오래도록, 사랑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21년 5월 31일', 222p)



내가 뭘 안다고 함부로 안도하겠느냐만은… 그래도 나는 항상 모두가 괜찮기를 바란다. 작가님이 슬픔을 문장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괜찮아진 거라고 믿고 싶다. 회사에서 기듯이 돌아와 잠들기 전 조금씩 읽으면서, 나는 '죽고 싶음'에서 '그래도 괜찮음'으로 나아지곤 했으니까. 이 책이 모든 괴로움을 퇴치해주는 마법의 책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작가님의 글이 좋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으면 한다.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의아름다움과너의아름다움이다를지언정 #하니포터 #도서리뷰


끝내 전부 감추지도 못하고 / 마음의 절반만 말랐습니다. - P11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 그 중간에 있을 수는 없을까. 자의식 과잉과 자의식 결핍의 어느 부분에서 우리는 늘 흔들리며 사는 것 같다. (중략) 끝내 자꾸 흔들리느라, 어떤 감정은 구토처럼 쏟아진다. - P22

아무리 가려서 감춘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상처받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가끔, 삶에 시간을 덧발라서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기도 하겠지만, 나와 당신의 행복은 이미 세상에 없는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중략) 서로가 서로에게 형벌 대신에 사랑을 말하는 순간들이 있다면, 어둠을 갱신해가며 살아갈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잠시나마 도달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 P179

그러니까 나는 이제부터 가능하면 오래도록, 사랑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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