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매점 지하 대피자들
전예진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1월
평점 :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매점 지하 대피자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과 기준에 지친 사람들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은둔을 자처하지만, 그곳에서 외로움이 아닌 결국 타인과의 관계를 이어 나가게 되는 이야기다.
부모가 원하는 아들로 살아야 했고, 사회에서 맡은 역할에 지쳐 있던 선우는 우연히 만난 주호를 통해 적강산 자연휴양림에 위치한 고라니 매점의 ‘굴 호텔’에 들어가게 된다.
굴 호텔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 그리고 자신이 지낼 굴은 스스로 팔 것. 누구도 타인의 삶에 함부로 개입하지 않지만, 라운지에서는 서로 얼굴을 트고 안면을 틀 수 있다.
알코올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들어온 영수, 코인이 오르기 전에 팔아버릴까 봐 불안해 숨어든 재경,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혜원까지. 각자의 이유는 다르지만, 사회에 지쳐 이곳에 모였다는 점에서는 모두 닮아 있다. 오히려 누구보다 외로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있고 싶어 들어온 공간이지만, 이들은 그곳에서 자신들만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간다. 서로에게 인정받는 순간의 기쁨을 느끼고, 관계 속에서 다시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어쩌면 더 잘하고 싶었지만 타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 같아 도피를 선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소설을 읽으며 나 역시 한 번쯤은 그런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 실패했다는 감정보다는, 그저 쉬고 싶다는 마음에 가까웠다. 주인공 선우 또한 성공을 원하기보다는 잠시 멈추고, 자고, 숨을 고르고 싶었을 뿐이다.
선우의 일을 도와주던 수산나가 고라니 매점에 들이닥쳐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장면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수산나가 말하는 기준은 과연 누가 정한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이 정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이라 말할 수 있을까. 부모의 연락을 기다리는 선우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지 묻게 된다.
『매점 지하 대피자들』은 사회적 성공의 기준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남들이 정한 기준이 아닌, 내가 정한 행복이 진정한 성공이 될 수 있는 사회라면 어떨까. 서로를 인정할 수 있다면 은둔자나 도피자가 필요 없는, 조금 더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이 작품은 그 질문을 조용하지만 오래 남도록 독자에게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