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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어증 환자
계영수 지음 / 미다스북스 / 2025년 11월
평점 :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처음엔 이민 소설인 줄 알았다
『실어증 환자』는 처음엔 미국으로 이민 간 두 집안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각각의 사건들은 따로 흘러가지 않고, 촘촘하게 연결된 하나의 서사로 드러난다.
한국에서 직업 군인이었다가 이민을 선택한 강용환의 가족. 강용환과 그의 아내 서진애는 아이들 재영, 재식, 재아가 부모가 정한 계획과 미래에 맞춰 자라길 바란다.
반면, 한국에서 일하다 장애를 얻은 뒤 이민을 가게 된 강병호는 다르다. 그는 아이들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묵묵히 뒤에서 응원하는 부모다. 같은 이민이라는 조건 속에서도 두 집안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고, 아이들의 미래 역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두 집안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자식을 떠나보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강용환의 아들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죽음을 맞고, 강병호의 아들은 신의 부름을 받아 가정을 떠나 신부 수업을 받게 된다. 결과는 극명하게 갈린다. 부모의 강요 속에서 살아온 강용환의 아이들은 결국 부모 곁을 떠나지만, 강병호의 딸은 오히려 부모를 이해하고 곁으로 다가온다.
이 장면들을 통해 소설은 분명하게 말한다. 아이들은 존재 자체로 인정받아야 하며, 부모의 꿈이 아이의 미래가 되는 순간 그것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힘든 이민 생활 속에서 강용환의 가족은 진희에게 의지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진희에게 숨겨져 있던 진실이 서서히 드러난다.
이 소설의 인상적인 점은, 진실이 폭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감정의 고조 없이 잔잔하게 스며드는 섬뜩함,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소설 속에는 실제로 실어증을 앓고 있는 강병호가 등장한다. 하지만 『실어증 환자』가 말하는 실어증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다. 말해야 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 내고 싶은 올바른 목소리를 억눌러야 하는 사회. 이 소설에서의 실어증은 바로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한 비유처럼 느껴진다. 내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목소리가 외면당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실어증 환자』는 이민 소설이자 가족 소설이며, 동시에 사회를 향한 질문이다. 조용히 읽히지만, 읽고 난 뒤 오래 남는 이야기. 부모와 아이, 침묵과 목소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