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황제
오션 브엉 지음, 김지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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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여름날, 철교 위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던 소년을 막아 자신의 집으로 들인 여인. 베트남 출신 소년 ‘하이’와 치매를 앓는 노년 여성 ‘그라자나’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된다. 다음 날 그라자나는 하이에게 함께 살자고 제안하고, 하이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 순간부터 두 사람의 특별한 동거가 이어지고, 지원금이 끊기자 하이는 사촌 소니가 일하는 음식점 ‘홈마켓’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이후 하이, 그라자나, 그리고 홈마켓 식구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차츰 펼쳐진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레 떠올랐던 질문은 ‘가족이란 무엇인가’였다. 혈연으로 묶인 가족과 선택적 가족 사이에서,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라자나는 늘 아들과 딸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하이는 그 인물들이 그라자나의 기억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들이 실존 인물임을 알게 되고 초대된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그라자나는 아들과 손자들에게서 큰 수치심을 느낀다. 그 순간 곁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보듬어주는 사람은 하이였다. 온기를 나누는 관계, 상처를 껴안아주는 마음… 진정한 가족은 바로 그런 존재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홈마켓의 직원들은 모두 각박한 현실 속에서 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은 고되고 거칠지만, 오션 브엉의 시적인 문장들이 중간중간 깜짝 선물처럼 등장한다. 덕분에 그들이 추구하는 작은 희망과 삶의 목적이 더 또렷하게 다가오고, 삶의 절벽에서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들의 존엄함을 발견하게 된다.

책을 덮고 나면 자연스럽게 제목 속 ‘기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하이와 그라자나처럼 상실과 가난, 외로움, 트라우마 속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 기쁨은 화려한 감정이 아니다. 그저 삶을 버티게 하는 최소한의 힘이다. 문득 정신이 또렷해지는 순간마다 하이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던 그라자나, 고통의 밤을 놓치지 않고 묵묵히 곁을 지키던 하이, 말은 없지만 위기마다 함께하는 사촌 소니…. 이 소설은 바로 이런 작고 사소한 기쁨들이 우리를 살아 있게 한다는 메시지를 조용히 전한다.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게 분명한 것 같다.
우리 삶을 움직이는 힘은 슬픔이나 분노가 아니라, 작지만 꾸준하게 스며드는 기쁨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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