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직구에 용기는 웃고 말았다. 여자친구는 변하고를 던지는 적이 없었다. 당돌하게, 온당하게 사랑해달라고요구해왔다. 처음에는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이내 쉽고 직선적이어야 진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순리인 양 잘 굴러가야 맞는 거라고 말이다. 꼭 연애만 그런 게 아 니라 모든 일이 다 그렇지 않은가. 패기 없는 젊은이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역경을 이기고 성취해낸다든가 하는 거,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될 일은 쉽게 된다. 이뤄질 사랑은 쉽게 이뤄진다. 약간 어려워지는가 싶어도 고비조차 순하게넘어간다.

"한 사람을, 모두는 무리지만, 한 사람만은 행복하게 해줄 능력이 있는데 그 능력을 쓰지 못하는 건 슈퍼 파워가 있는데 쓰지 못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에요. 내 슈퍼 파워를 선이씨를 위해 쓰게 해줘요."

회사도 멀쩡하게 다니고 있고,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괜찮지만 혼자 집에 있는 주말엔 상대적으로 힘겨워지는 편이었다. 가늘고 징그러운 회충처럼 혈관 사이를 뚫고 돌아다니는 불안, 조용한 자기 점검은 주말의 일과였다.
매일매일 누구나 겪는 모멸감과 비참함이 언젠가는 수위를 넘어설지 모르고, 그렇게 되면 정말 상태가 나빠질지도모른다는 두려움이 늘 있었다.

"아, 짜장이다. 쓰다 남은 짜장 가루가 있어."
"양도 딱 맞게 남아 있네."
선이의 특제 카레는 아니었지만, 짜장도 꽤 맛있었다. 때때로 인생이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가질 수 없고, 엉뚱한 것이 주어지는데 심지어 후자가 더 매력적일 때도 있다. 그렇게 난감한 행운의 패턴이 삶을 장식하는 것이다. 물론 매력적인 후자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최초의 마음, 그 간절한 마음은 쉽게 지워지지 않아 사람을 괴롭히기도 하고,
"다음에는 꼭 카레 해줘."
"알았어. 딱 준비해둘게."

마음을 얘기하고 사랑을 얘기할 때는 역시 진지해야 해,
재화는 먼 곳의 용기에게 중얼거렸다. 어디서 누구를 사랑하 고 있든 간에 신중히 사랑을 말하길, 휘발성 없는 말들을 잘 고르고 골라서, 서늘한 곳에서 숙성을 시킨 그 다음에, 늑골과 연구개와 온갖 내밀한 부분들을 다 거쳐 말해야 한다고. 그게 아니면, 그냥 하지 말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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