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유람은 힘이 세다.

사물유람은 관념적이되 유물론적이다. 즉물적이고 즉자적이되 찰나의 깊은 상상력을 동반한다.

그래서 힘이 세다.

우리 주변의 사물들, 버려지고, 흔한 값싼 사물들, 값싸서 가치없다고 쳐박히는 사물들에 대해 저자는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아니다. 그 자체로, 그 현상 그대로 우리에게 다가와서 읊조린다.

 

어느 누가 한강 너머 오리배를 오리의 시선으로 본 적이 있는가. 아니 오리배가 돼 뱃속에 담긴 사람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단언컨대, 없다.

어느 누가 눈사람의 찰나가 주는 빛나는 순간에 착목한 적 있던가. 그 순간, 사진기를 들이대고, 그 아름다움을 이야기한 적 있던가.

어렸을 적 내가 눈사람이고 눈사람이 나였을 적의 물아일체를 그 순수함을 우리는 잊고 살지 않았던가.

사물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삶, 일상의 편린들이 깔려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산이다.

함정처럼 정치적이고 급진적이기까지한 행간이 보는 이들의 숨을 막히게 한다.

 

의사봉에서 김범의 망치까지. 우리는 가 닿을 수 없는 정치적 상상력 속에서 사물이 갖고 있는 기생기능을 읽는다. 그래서.

이 책은 힘이 세다,

사물을 유람한다는 것은 힘이 세다.

 

조선조 송강 정철이 그것을 보여주었고, 청나라 사신으로 다녀오다가 만난 열하에 감흥한 박지원이 그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사물유람이 그것을 보여준다.

이제는 과거가 된 마르크스 동상이, 누군가에게는 끝장내고픈 간절함이 담긴 자기소개서가, 양극화와 대책없는 자본주의와 만난다. 철거되는 옥인아파트와 카다피의 초상이 주는 울림은 더 크다. 인간이 주는 잔인함의 끝은 어디일까, 이래도 되는 것일까하는 즉자적인 감정 뒤로 섣부른 개발주의 뒤 남은 인간사를 무시하는 또다른 개발주의, 독재를 용인한 민중들이 독재'자'를 죽이고 기념하는 행위들, 그리고 그 안에 개입된 제국의 논리. 그 안에서 저자는 조용히 공명한다.

 

그래서.

사물유람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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