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 옛이야기 속 집 떠난 소년들이 말하는 나 자신으로 살기 아우름 3
신동흔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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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주에 역마살이 있어.’

 

 

   내 나이 11살, 초등학교 4학년 때, 얼굴 가득 백반이 있는 무당할머니는 말했다.

 

 

   당시 풍토 상, 어린 여자아이에게 역마살이 있단 말은 곧 ‘팔자 한번 기가 막히게 세다.’ 정도로 해석됐다. 당연히 이를 들은 친할머니는 팔짝 뛰며 무당할머니에게 욕을 한바가지 퍼부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문득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 가길 원했다. 그래서 나 홀로 아무도 나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중학교로 진학했다. 전에 알지 못하던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지내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나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그래서 또다시 나 홀로 아주 먼 곳에 위치한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다양한 지역에서 떠나 온 많은 이들과 보내는 끔찍한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나 홀로 한 대학교에 진학했다. 솔직히 내 자의로 대학을 티셔츠 고르듯 고른 것은 아니었다. 다만 숫자들이 정해준 곳으로 진학했을 뿐. 어쨌든 나는 매번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움직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지금 친할머니가 무당할머니를 조금 신뢰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물론 나에게도 한 가지 교훈을 주었다. ‘안전제일’, ‘집 나가면 개고생’ 따위가 그것이다.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책 제목을 읽자마자, 안그래도 쭈글쭈글한 뇌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게나 말이야.’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수많은 옛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길 떠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왜 떠나야하는지, 어디로 떠나서, 무엇을 보는지 등을 친근한 옛이야기 속에서 들려주고 있다. 백설공주, 바리데기, 여우누이, 헨젤과 그레텔, 빨간모자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길을 떠난 옛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백설공주가 타의로 길을 떠나서 왕자를 만나 행복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사냥꾼이 그녀를 죽이려 했을 때, 백설공주는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며 눈물콧물을 쏟아내며 애원했을 것이다. 또한 그녀는 거친 숲속을 헤치며 뛰고, 난쟁이들의 집을 발견했다. 난쟁이 집에서 그녀는 침착하게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허기짐을 달래는 것이 그것이다. 헨젤과 그레텔, 빨간모자는 공통적으로 길을 떠나는 중에 유혹에 빠졌다. 헨젤과 그레텔은 과자로 만들어진 환상적인 집에, 빨간모자는 향기로운 꽃에 빠졌다. 이야기 마지막에 헨젤과 그레텔이 마녀를, 빨간모자가 늑대를 죽음에 빠트리는 것은 더 이상 이 주인공들이 길 떠남에 있어서 헛된 유혹에 빠지지 않을 거라는 의미이기도하다.

   이렇게 옛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길을 떠나며 겪는 일들은 생각보다 우리와 가까이 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삶과 헛된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은 꽤나 진실에 가까워서 거부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이는 길을 떠나는 것이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동을 뜻하는 것은 아님을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집에서 약 100km이상 떨어진 곳으로 가야만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예전의 나처럼 전혀 나를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야만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타는 등교 버스에서도 시작될 수 있는 것이 새로운 만남과 여행이다. 전적으로 세상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따라, 아침에 눈을 뜨는 그 순간이 지루한 일상의 시작일 수도 있으며 역동적인 모험의 서막일 수도 있다.

 

 

   아, 이런. 그렇게 당하고도. 나는 또다시 ‘삶에 있어서 모험과 여행이란 비타민과 같은 존재야!’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다.

 

 

   쭈글쭈글한 뇌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이야기했다.

 

 

   ‘그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도? 여전히?’

 

 

   맞다. 나는 새로움을 좋아해서 많은 것을 시도했고 참 많이도 실패했다. 다른 이들이 생각하기에 21살짜리가 실패를 해보면 얼마나 많이 했겠냐마는, 주관적으로는 충분한 실패였다. 세상에 실패를 좋아하는 인간이 어디 있겠냐마는, 더 이상의 젊어서하는 고생과 성공의 어머니로서의 실패는 no thanks란 말이다.

 

 

   이렇게나 곡선은 없고 죄다 직선으로 가득 찬 내게, 이 책은 ‘당신은 당당한 주인공입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두더지 혼인> 이야기를 알고 있나? 두더지부부가 예쁜 딸의 신랑감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해, 해에서 구름, 바람, 은진미륵까지 만났지만 결국 두더지 신랑을 얻는 이야기로, 내 관점에서 볼 땐 온갖 생고생을 하고 집에 돌아온 과보호 두더지부부의 이야기쯤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책에서는 두더지부부의 여행을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보잘 것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존재가, 이 여행을 통해 새롭게 인식되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여행이나 모험을 하고 때때로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 곁에 해적선의 보물이라든가 백마 탄 왕자가 없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 그런데 불평을 하면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우리가 아무리 툴툴거려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고 말해도 분명한 사실이 있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 전의 인간과는 다른 존재이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우리는 분명히 다르다. 사과를 먹어보지 않은 인간과, 사과를 먹어보고 맛이 없었다고 말하는 인간은 다르다.

 

 

   이쯤 되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 실패한 여행은 없다. 다만, 실패의 경험을 얻는 여행이 있을 뿐이다.

 

 

   쭈글쭈글한 뇌는 말했다.

 

 

   ‘아, 난 정말 인정하기 싫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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