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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를 쏴라 -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 자유로워지는 숭산 대선사의 가르침
숭산행원 지음, 현각 엮음, 양언서 옮김 / 김영사 / 2009년 3월
평점 :

- 김영사의 <부처를 쏴라>
나한테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세요.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세요.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간단해요. 벽은 희지요. 이것이 진리입니다.
카펫은 초록색이지요. 이것이 진리입니다.
참된 지혜이다 이 말입니다. 어렵지 않아요. 수행을 해서 본성을 깨닫게 되면 곧 알게 됩니다.
- 김영사의 <부처를 쏴라>의 본문(p 174) 중에서
숭산 스님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 하셨다. 진리는 그렇게 복잡한 것도, 어려운 것도 아니라고 하셨다. 선이 무엇이냐고 묻는 제자에게, 대답으로 "너는 누구냐?"고 물으셨다. 모르겠다는 제자에게 '모른다'라는 마음이 너 자신이고, 자신을 깨닫는 것이 선이라고 말씀하셨다. 둘러 말씀하지 않으시는 거침없는 말씀 속에는 듣는 이의 침묵이 있고 고요가 있고,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쉼이 있고, 그러다 일순간 떠오르는 빛과 같은 깨달음이 있다. 번뇌하고 깨닫고 스스럼없이 손바닥을 내리치는 명쾌함도 있다.
그런데 나는 절 문 앞만 맴도는 아이처럼 어렵다. 숭산 스님의 말씀에는 어려울 것도, 뜻을 모를 일도 없을 것만 같지만, 거침없이 툭툭 던져 주시는 가르침 앞에서 깨달음보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어느새 하지 마시라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품지 말라던 마음이 내 안에서 길을 내고, 독화살과 같다던 지식들 사이를 헤매이고 있다. 무엇일까, 이것이 무엇일까 깨달음에 집착하느라, 오히려 깨달음이 보이지 않는다. 때로는 가슴이 답답해지고, 때로는 스님이 계신다면 되묻고 싶어진다. 머리를 저어 보기도 하고, 혼자 먼 산을 보기도 한다.
숭산 스님은 1949년 예산 수덕사에서 고봉 대선사로부터 전법게(傳법偈)와 숭산(崇山)이라는 당호를 받아 이 법맥의 78대 조사가 되었다. '너의 법'이 세계에 크게 퍼질 것이라던, 고봉 스님의 예견처럼, 1966년 일본에서의 해외 포교를 시작으로 미국을 포함한 32개국에 120 여 개의 선원을 설립하고 운영하였으며, 수많은 외국인 제자들을 길러냈다. 한국 선불교를 세계에 알리며, '한국의 달마'라 불렸던 숭산 스님은 달라이 라마, 틱낫한, 마하 거사난다와 함께 세계 4대 생불로 추앙 받았으며, 2004년 서울 수유리 화계사에서 입적했다.
이 책 속에는 숭산 스님과의 일화와 말씀들로 가득하다. 쉽고 명쾌하지만, 직설적이고 헤아리기 쉽지 않다. 숭산 스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이 책도 펄럭이시며 쓰레기통에 던져 버릴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제자에게 나무라시던 말씀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여기에 집착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 것도 원하지 말고, 아무 것도 만들지 말며 아무 것도 지니지 말고,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시던 가르침이나 숭산 스님의 뜻과는 다른 일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숭산 스님의 말씀과 일화 속에서 깨달음을 얻으려는 집착이, 오히려 본질을 볼 수 없게 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숭산 스님은 평소에도 '깨달음을 원하면 크게 그르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러니 숭산 스님이 살아 계셨다면, 이 책을 흔들며 '크게 그르쳤다'고 나무라셨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숭산 스님의 많은 제자 중의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진리를 찾아온 미국인 현각스님의 석사논문 작성 과정에서 시작된 스님의 일화와 말씀들은 이제, 책이 되어 이 세상에 소개되고 있다.
개는 그냥 짖을 뿐, 자기 소리에 이름을 갖다 붙이지 않아.
인간은 말과 소리와 생각을 만들어 내고 거기에 집착해.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을 있는 대로 볼 수가 없어.
말과 소리 이전의 자리는 무엇인가?
이 말은 생각 이전의 상태는 무엇인가?
생각 이전의 자리, 즉 원점을 찾는 것이 선이야.
이걸 깨닫게 되면 일체를 깨닫게 돼.
- 김영사의 <부처를 쏴라>의 본문(p 255) 중에서.
글을 읽는 동안, 호통소리가 어디선가 들린다. "생각이 좀 복잡해, 그렇지? 모든 생각을 다 놓아 버리고 '모른다'는 마음으로 돌아가." 그것이 얼마나 쉽고도 어려운 일인지를 나는 또 생각한다. 생각하지 말라고 하시는데도 나는 또 생각하고 생각한다. 숭산 스님의 말씀처럼 정말 굉장히 어려운 수행법이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전에, 알고자 하는 의문들이 수없이 생겨난다. 때때로 마음이 산란하다. 날마다 거울 속에서 보는 눈이, 내 눈이 아니라고 하시던 말씀. 내 눈은 내 눈으로 볼 수가 없는 것처럼, 깨달음도 눈이 눈을 보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다 헤아릴 수는 없다. 다 이해할 수도 없다. 그것이 책 한 권을 읽고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은 내 과욕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 안에 작지만 햇살 따뜻한 뜰 하나가 생겼다. 그리고 때때로 맑은 물을 길어 올릴 수 있는 얕은 우물도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