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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을 앓다가 나를 알았다 - 이 시대를 사는 40대 여성들을 위한 위로 공감 에세이
한혜진 지음 / 체인지업 / 2020년 10월
평점 :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 사실은 가장 사회적인 담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봉태규,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 중에서
<마앓나알>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전에 읽었던 책에서 나왔던 이 구절이 떠올랐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 사실은 가장 사회적인 담론이 될 수 있다'는 것.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일 수 있는 한혜진 작가의 인생 이야기, 육아 이야기, 여자 이야기, 가족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왜 눈물이 나고, 마치 내 삶을 알아주는 것 같은 공감을 느끼게 될까.
<82년생 김지영> 소설을 읽고 이건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그 소설이 현실과 얼마나 닮아있는지, 실제로 겪어보기 전에는 아마 모를 것이다.
성장 과정과 주변의 사람들은 달라도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이를 먹게 되면 겪게 되는 일들은 어쩜 이렇게 비슷할까.
난 아직 마흔이 되진 않았지만 반올림하면 곧 마흔이 된다.
나보다 몇 발자국 앞서 걷고 있는 인생 선배, 육아 선배, 여자 선배의 경험, 깨달음, 생각을 읽으며
나의 삶을 반추해본다.
'불혹' 이라는 마흔에 대하여
불혹不惑은 미혹되지 아니함을 뜻한다.
논어 위정편에서, 공자가 마흔 살부터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았다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18쪽.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마흔은 흔들릴 일투성이고 마흔에 흔들리지 않는 건 대단한 내공이라고. 결국엔 우리 모두 내공 기르이게 열중해야 할 거라고.
불혹이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로 마흔이 되면 흔들리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당장 내 남편만 하더라도 마흔을 앞두고 유독 나이 얘기를 많이 꺼내면서 불안감, 조바심을 많이 내비치곤 한다.
그리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
무언가 시도하기엔 늦었을까 싶은 나이
아이들에게, 부모에게 돈 들어갈 일 많은 나이
도대체 마흔이 뭐길래 이렇게 말들이 많은 걸까.
저자는 이렇게 다 말해도 되나 싶을 만큼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마흔이 되면서 느끼는 몸과 마음의 변화를 서술한다.
그 지극히 내밀한 개인적인 경험들이 곧 위로와 공감이 된다.
첫 아이 출산 후 육아를 하면서 배신감이 든 적이 있다.
아 이렇게 힘든 거 왜 아무도 말을 안 해줬지?
마흔을 준비하면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이 든다는 것, 몸과 마음의 변화에 대해 왜 아무도 말을 안 해줬지?
마흔이 되기 전에 이 책을 읽게 된 것이 참 다행이다.
시중에 마흔에 관련한 많은 책들이 이미 나와 있지만
이렇게 여성, 엄마가 겪는 마흔에 대해서는 제대로 조명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이럴 땐 이렇게 준비하면 되겠구나,
이런 방법도 있구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길 자체는 변하지 않을 지라도
먼저 그 길을 걸어본 자의 위로의 말을 들으며,
친절한 이정표를 보면서 도움을 받기도 하며
함께 걸어갈 수 있으면
느끼는 마음가짐의 간극은 엄청날 것이다.
마흔, 할 수 있는 일
프롤로그 중.
나이가 들면 나는 그대로인데도 나의 가치는 내가 품은 이상과 실천에 의해 달라진다. 내 삶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면 움직여야 한다. 유지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나아지고 싶다면 묻고 따질 필요 없이 더더욱 움직여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가만히만 있어도 근육량이 대폭 감소하는 것처럼
내 삶을 그냥 유지하려고만 해도 가만히 있는 걸로만은 안 된다.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112쪽.
엄마의 일은 내가 눈높이를 낮춘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로또처럼 한방에 인생역전하듯 찾아오는 것도 아니며, 남을 따라서 한다고 그 사람처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나를 제대로 알면 일이 생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계속 성장하고 있을 수도 있다. 엄마로 살면 자신이 고갈되는 것 같지만 엄마의 삶은 배움의 현장이기도 하기 때문에 자신이 모르는 사이 부쩍 성장하기도 한다
마흔, 나를 알고 사랑하기
나를 제대로 알아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보인다는 것.
아이를 키우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가게 된다는 것이 참 공감이 갔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내가 다 기억 못했던 나의 어린시절, 나의 부모님의 모습을 다시 만나는 것 같을 때가 분명 있다.
그렇게 나를 알아가고 어린 시절의 나와 화해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아이를 키우는 일의 큰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가장 커다란 것, 아이에게 받는 사랑이 있다.
151쪽.
세상에 이런 사랑이 있었다니. 아이는 부족한 나라도 사랑했다. 아이는 보잘것없는 나라도 사랑했다. 아이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나에게 사랑받을 자격을 줬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완전한 사랑이었다. 아무 조건 없이 그저 엄마니까 나를 사랑했다. 처음으로 나라는 존재 자체를 확인받고 수용하던 순간이었다. 자기수용은 거대한 내면의 자기를 깨운다. 영원히 뿌리내리지 않고 자유롭게 굴러다니다 사라져버리고 싶었던 나에게 뿌리와 날개를 달아준 아이를 사랑한다.
이 책의 프롤로그 제목은 이렇다.
'엄마가 되고 처음 나이 앞자리가 바뀌었다'
우리나라 평균 초산 연령이 31.6세라고 하니
대부분은 30대에 아이를 낳고
한 숨 돌릴만큼 아이를 키워놓고 보면 40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생각없이 정신없이 지내다가 40대에 허망해지는 내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
마흔앓이를 하기 전 예방접종을 맞고 준비하려면,
특히 여자라면, 아이 엄마라면 이 책을 권한다.
그리고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걱정하는 남편이라면ㅋ
이 책을 아내에게 선물해 주면 어떨까. ^^
-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료로 제공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