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도 휴가가 필요해서
아리(임현경) 지음 / 북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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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남을 꿈꾸는 당신에게

 -프롤로그 중에서

  

 

 

아이가 4살이 되었을 때

나 홀로 일본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여행자금도 1년 전부터 차곡차곡 모아 놨었고

여행기간에는 멀리 진해에서 시어머니가 오셔서 아이를 봐주시기로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면서 혼자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저자가 고백한 것처럼 나 또한 혼자 시간을 보내며 충전하는 타입인데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나 혼자만의 시간은 사치가 되어 버린지 오래였다.

 

벼르고 벼뤘던 여행이었던 만큼

     23일의 그리 길지 않은 시간시간이 모두 다 소중했다.

     누군가를 챙기지 않아도 되는 시간들은

     모두 다 나를 향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한국에서의 삶은 여전했다. 학생이라면 무릇 이래야 한다는 당위는 엄마라면 이래야 한다는 당위로 탈바꿈했다. 세상의 딸들은 때가 되면 엄마라는 옷으로 착착 갈아입고 자신을 쳐다보는 무수한 눈빛에 맞춰 움직여야 했다. '나는 네 삶에 대해 당연히 한마디 할 수 있다'라고 여기는 어른들의, 친구들의, 제도의, 사회 전체의 그 근거 없는 당당함에 진저리가 났다. 떠돌다 돌아왔으니 어서 빨리 뒤처진 만큼 따라잡으라는 그 눈빛들이 피로해지기 시작했다. 그 혼탁한 시선이 끼어든 일상에서 다시 벗어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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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붓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아무도 '여자니까' '엄마니까' '어른이니까'라며 나를 제한하지 않았다. 대신 내 삶을 찾으라 했고, 즐기라 했고, 꿈꾸라 했다. 무엇보다 네 행복이 우선이라 했다. 여자니까 희생해야 한다고, 어른이니까 이제 꿈같은 건 내려놓으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 무언의 응원과 위무가 나를 자극했다. 내 꿈을 건드렸다. '그래! 나도 꿈이 있었잖아. 생각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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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꾸만 망설이는 남편을 뒤로 하고 과감하게 결단을 내린다 

아이와 함께 발리 우붓으로 떠나기로 

그렇게 시작된 해외살이 시간을 통해  

저자는 '현재'에 집중하게 된다.

 

 

      

소풍을 가자고 내 손을 잡아끌던 것은 아이였다. 아이는 늘 내게 웃으라 했다. 존재 자체로 웃음을 주었고 살아 있는 표정과 기발한 생각으로 나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종종 우울했던 내게 행복을 들이밀어주었다. 목표한 바를 향해 바짝 얼굴을 구기며 달리고 있을 적에는 지금 그렇게 웃을 때가 아니라며 아이를 밀어냈지만, 이제는 안다. 더 늦기 전에 그 행복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아이 때문에 나의 달리기 속도가 느려졌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안다. 아이 덕분에 돗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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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우붓에 살면서 언제가 제일 행복한 하루였어?"

     "글쎄, 화이트 샌드 비치 놀러 갔을 때? 예니는?"

     "나는...오늘!"  

갑자기 마음이 뻐근해졌고 동시에 뿌듯했다. 평소보다 조금 더 웃고 조금 더 몸을 움직였을 뿐인데 아이에게 가장 행복한 하루를 만들어주었다!  

사실 너무 많은 날들을 미래를 위해 보냈다. '대학 가면 해야지' 생각하며 10여 년을 무심히 흘려보냈고, '이 책만 끝내면 여행 가야지' 생각하며 하루하루 버텼다. '아이가 조금만 더 크면' 하면서 또 기다렸고, '나중에 우붓에 가면'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의 목록만 적어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오늘은 대충 그리고 우울하게 보냈다. 나만 그랬던 것도 아니고 내 주변의 대다수가 그랬기 때문에 심각성도 잘 못 느꼈다. 우리는 집단적으로 현재를 방기한다. 유치원에 발을 들여놓을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현재는 온통 나중으로, 미래로, 뒤덮여버린다  

이제 그러지 않기로 했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소시지 반찬을 해놓고 맥주 두 병만 사면 된다. 오늘이 가장 행복했다는 아이의 말에 벅찬 감동을 받고 피로와 술기운에 젖은 채 아이 옆에 누웠다. 돌이켜보면 나는 행복하다고 소리 내어 말해본 적이 없었다. 처음 말을 배우듯 아이의 말을 가만히 소리내어 따라 해보았다. 나도 오늘 참 행복했다고. 아이는 이미 드르릉거리며 곱게 코 고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도 나른하게 눈을 감고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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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    

결혼이라는 제도 아래 묵인되었던 개인성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숨어 있었던 것 뿐 

괴롭히던 억압을 풀어주자   

개인과 개인은 더욱 건강해져 서로를 친절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결혼과 휴가  

성숙한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힘은 두 사람이 얼마나 뜨겁게 사랑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그보다는 두 사람 각각이 독립된 개인으로서 얼마나 단단히 중심을 잡고 서 있는지가 중요하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위해 자기다움을 잃으면서까지 희생하는 관계가 되면, 그 결혼생활은 제대로 유지되지 어렵다 

(...) 

엄마와 아내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느라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여자들에게 혼자만의 시간은 너무나 절실하다. 결혼에도 휴가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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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방황 끝에 이제는 항복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결혼도 육아도 내 뜻대로 끌고 가려고만 했을 때, 나 혼자 앞장서서 가려고만 했을 때는 여기저기에서 문제가 툭툭 터졌다. 가끔은 물러나 지켜보기만 해야, 몇 발짝은 상대의 흐름을 따라가기도 해야 부드럽게 풀리는 일들이 있었다. 남편관의 관계도, 아이와의 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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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좋기만, 싫기만 한 관계는 거의 없다  

특히 가족은 애증의 관계라고 해야 할까.  

너무 가깝고 질척대면 피곤하고   

너무 거리가 있어도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다  

그래서 저자는 결혼에도 휴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로의 소중함을 잘 알기 위해 

누구보다 나를 먼저 돌보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 

그렇게 온전한 내가 되어 건강한 우리가 되는 것.

 

  

저자의 용감한 모험과 진정성 있는 사유에 박수를 보낸다  

둘째가 아직 어려 나홀로여행을 당장 꿈 꾸기는 어렵지만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먼저 떠나고 그 길을 기록해준 저자의 글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는다.

 

  

'떠났다가 돌아오는 인간은 늘 성장한다'는 저자의 말을   

가슴에 꼭꼭 품고 살련다.

 

 

 

떠났다가 돌아오는 인간은 늘 성장한다. 변화와 발전을 가져오는 이들은 언제나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긴 것에 의문을 품고 새로운 길을 모색했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물리적인 이동이 어려워진 지금,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어 또 다른 나를 만나고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영원히 사라져버렸을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엄마가 어떻게 그래?' '결혼한 여자가 그래도 되는 거야?'라는 구시대적인 발상에서, 가부장적인 시선에서, 부당한 모성신화에서 심리적으로 멀리 떠나는 것. 그리하여 누구보다 나를 돌보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지고 통쾌한 떠남이자 모험이 아닐까? 그 모험을 감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결혼한 여자들의 모험을 주저하게 만드는 사회의 편견도 점점 옆어지리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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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료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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