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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뒤흔든 열 명의 상인 ㅣ 초등부터 새롭게 보는 열 명의 위인 5
김현주 글, 서선미 그림 / 한림출판사 / 2008년 7월
평점 :
한국사를 뒤흔든 열명의 왕, 과학자, 장군의 뒤를 이어 발간된 상인. 상인을 흔히 ‘사농공상’이라 하여 ‘장사치’로 깔봤으나, 이런 상인들이 없었다면 우리 생활도 편치는 않았으리라.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은 부를 지키고 확대하는 과정에서 국가와 신분제가 생겨났고 세계 여러나라들이 상업과 무역을 기반으로 부강해지기도 하였다. 영국이 대영제국을 이루고 산업혁명과 무역이라는 혁신을 이루었고, 근대국가로 발전해야 할 시기에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로 가슴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조선후기에는 상업과 수공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상인중 왕이나 장군 통역관등 신분과 직업이 다르지만 상업으로 큰 부자가 되어 이웃을 돕기도 나라를 구하기도 하였다. 단지 부자가 되기 위해서 돈을 목적으로가 아니라 우리 보통사람보다 열정과 도전, 그리고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삶을 개척하고 부를 일으키게 되었으리라 본다.
백제의 13대 근초고왕은 작은 금(金)이라 불리는 소금을 철과 맞바꾸게 하고, 무역로를 확보하여 조선술과 항해술을 이용하여 해외무역에 앞장섰으며, 무역항 뿐 아니라 넓은 곡창지대에도 손안에 넣게 하였다. 이처럼 어떠한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경제와 무역의 중요성을 일찍 깨닫고 나라간의 공무역을 잘 활용하였다.
궁복이라 불리는 해상왕 장보고는 자신의 나라 신라인들이 사람답게 살려면 먼저 부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신라소 대사가 되어 우리 민족이 주도하는 해상 질서를 확립하였고, 조공무역 위주의 관무역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무역으로 발달시킨다. 이처럼 신분의 제약에 굴하지 않고 앞날을 개척하는 진취적인 자세로 임한다.
외교사절단 신분으로 명나라에 가게 된 홍순언은 부모님의 장사지낼 돈이 없다는 여인에게 300금을 선뜻 내주게 되었고, 위기에 처한 홍순언은 그 여인으로부터 보답을 받게 되고, 외교적 능력을 발휘해 훗날 후배 역관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한다.
역관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변승업은 조선중기 이후 농업생산력이 높아지고 수공업이 발달할 때 사업자금 없이 모여드는 상인들에게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고리대와 은행역할을 하게 되지만 무조건 이익만을 좇지는 않고 상업과 상인층이 발달하는데 매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18세기 개성상인의 활약으로 금난전권이 폐지되어 일반 상인들이 자유롭게 상업활동을 할수 있게 되었고, 부를 쌓은 거상들이 탄생하여 조선은 봉건제에서 벗어나 근대적 자본주의로 나아갈 희망을 갖게 된다.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뼈아픈 대가를 치르게 되지만 외국의 상업자본과 경쟁하며 민족 자본을 지켜내려 국산품을 고집하며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들려고 일본에 맞서기도 한다.
천애고아 김만덕은 기생에서 양민이 되어 객주를 차리고 상인들에게 숙박을 제공하고 자금도 빌려주고 전국 방방곡곡의 상황을 알아내어 여러방법으로 이익을 거둘수 있게 된다. 제주에는 흉년과 태풍으로 모든 논과 밭이 쑥대밭이 되고 굶어죽어 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는데, 자신의 재산을 풀어 쌀을 사고 사람들에게 베풀게 된다. 돈보다 소중한 것,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 을 의미하면서...
인삼더미에 불을 붙이고 ‘천하의 명약을 몰라보는 자들에게 인삼이 무슨 소용이요. 차라리 태워 버리겠소’ 통쾌한 임상옥의 이 한마디. 언젠가 드라마로 방영되었던 것이 머리에 스친다. 남은 것은 물론 다 타버린 인삼 값까지 열배는 넘는 값에 인삼을 팔수 있었던 임상옥은 엄청난 갑부가 되었지만,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라는 물과 같은 재물에 욕심을 부리면 결국 그 재물로 인해 비극을 겪게 된다는 사람의 마음이 저울처럼 올바르지 못하면 언젠가는 파멸하고 만다는 뜻으로 여겨진다.
러시아에 소를 수출하던 최봉준은 더 큰 배가 필요했던 터라, 재산을 털어 1000톤급 기선인 준창호를 사들이게 된다. 이 준창호로 국제항로를 정기적으로 운행하며 사업을 확장하였고 교통과 유통 분야에 까지 성공하게 된다. 장사꾼이기에 앞서 조선인인 최봉준은 [해조신문]을 창간하고 본격적인 항일 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동포들의 교육과 계몽에 앞장서게 되고 나라 안팎의 의병활동을 소개하면서 일제의 만행을 비판하며 민족의 독립정신을 드높이기도 하였다.
어려울때 다시 일어나는 용기 온갖 고난 속에서도 가치있는 것을 찾고자 하는 자세. 그리고 목표를 정하고 스스로 실천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독립운동을 위해 전 재산을 바치고 독립운동을 하였던 남강 이승훈.
20원으로 일본으로 넘어가 공장의 배달원으로 일하면서 멸시와 냉대를 당하지만 이를 악물고 도쿄 정치학교에 들어가나 굶주림 때문에 학업을 접을 수밖에 없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와 낮에는 은행원으로 밤에는 넝마주이로 더 짭짤한 벌이를 하게 되어 은행을 그만두고 덕원상회를 차리게 되고 동아백화점을 세우게 된다. 지치지 않는 아이디어와 어떠한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 내는 부지런함으로 우리가 많은 배움을 준다.
열명의 상인중 태어나면서 부자는 없었다. 자신의 능력으로 노력으로 최고로 존경받는 부자가 되고 성공도 하게 되었다. 또, 장사치라하여 돈에만 욕심을 부린 것이 아니고 나라를 위해 사람을 위해 쓰여지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