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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서서히 죽이는 방법
키에스 레이먼 지음, 이은주 옮김 / 교유서가 / 2025년 9월
평점 :
" 대통령이 '흑인 사랑'이나 '백인 우월주의'나 '가부장제' 같은 단어를 언급할 의지조차 없다면 그는 흑인 남자아이 지킴이는 될 수 있어도 흑인 남자아이들을 솔직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될 수 없어요. 저들은 백인 우월주의는 고려하지 않은 채 싼값으로 흑인 남자아이들을 고치려 하고 있어요. 고치는 건 '사물'이죠. '사람이 고치는 대상이 될 순 없어요. 정말로 고쳐야 하는 게 뭔가요?"(p. 134-135)
"지난달 할머니는 당신의 형제인 러디를 묻었다. 그런 뒤 무릎을 꿇고서 당신의 아들, 자매들, 어머니, 할머니, 아버지, 그리고 절친한 친구 네 명 모두를 묻은 현실을 받아들였다. 할머니는 더는 자식이나 손주를 묻어야 하는 책임을 피하게 해달라고 신에게 빌었다. 몇 주 뒤, 이 나라의 리더가 되기를 열망하고 최악의 백인들로부터 다수의 표를 얻은 어느 무책임한 미국인은 할머니를 의료 서비스와 식료품, 주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피해자'로 명명했다." (p.296)
저자 키에스 레이먼은 백인 구세주 콤플렉스와 결합된 백인 우월주의, 그리고 자신의 몸과 영혼, 관계의 상처와 상실을 내밀하게 고백한다. 열 세 편의 에세이는 마치 타임 슬립 하듯 갑작스럽게 과거의 시간과 장소를 넘나든다. 코로나 팬데믹, 남부연합기, 힙합과 블루스, 공장식 축산, 미식 축구와 농구, 교실과 성당, 찻길과 주차장 등과 같은 누구나 알 것만 같은 평범한 일상에서 조차 인종과 성별을 이유로 부당한 공권력의 폭력, 조롱, 희생을 겪을 수밖에 없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들려주고 있다. 저자의 친구 '카이'의 이어달리기 같은 편지가 말해주듯, 돌림 노래, 메아리 같은 슬픔을 세밀하게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우리, 또는 개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 흉터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나는 과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데(간병 휴직 중이라 일을 쉬고는 있지만...TMI),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마치면 학생들과 영화 '히든 피겨스'를 볼 때가 종종 있었다. 냉전 시절, 미국과 러시아가 우주과학 기술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흑인 여성들은 인종 차별과 분리 정책과 온몸으로 싸우면서도, 백인들이 허락하고 시혜하는 딱 그만큼의 선 안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의심했어야 했다. 역사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나는, 미국 역사와 문화에 대해 찾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주 깃발 속에 남부 연합의 상징이 아주 오래도록 남아 있었는지, 현재까지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이 남부 연합의 상징을 보란듯이 세상에 내 보이며, 비겁하고 무책임하고 어리석게 안위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이 착취해왔던 이등 시민들과 소수 인종들을 배제하고 희생하는 것을 합리화한 것을 직면하게 되었다.
또한, 8-9년 전에 봤었던 영화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를 봤었던 게 기억났다.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촬영해서 불안한 몸의 움직임이 영화보는 내내 긴장감을 가져다 주었다. 평범한 흑인 청소년, 청년이 무고하게 공권력의 폭력으로 희생당해온 사실이, 현재 불법 이민을 단속한다며 파견된 한국인을 불법으로 감금하고 또, 무고한 미국 시민을 총살했던 현실(공권력의 군사화)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저자의 글쓰기에서 느껴지는 힘과 스타일이 너무 좋았다. 나 또한 자기 서사를 쓰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최근에 글쓰기를 해오고 있었는데 자기 검열과 우울, 자괴감으로 이어지는 글쓰기 패턴이 반복되어 괴로워하고 있었던 찰나였다. 내가 느낀 저자의 글은 리듬과 라임이 꽤 살아있는데, 맛나게, 참 기깔나게 사람을 진득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나는 에세이 한 부씩 읽을 때마다 그 진득하고 꾸덕한 여운을 소화하느라 한참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그리고 글의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않도록 자기 검열과 싸워가며 진실을 천천히 쌓아 올려가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친구 카이가 말한 것처럼 "걱정과 살아가기, 존재하기를 맞바꾸는 게 자유"임을 글쓰기를 통한 고백과 성찰, 꾸준한 이해와 수용, 즉 사랑이 아닐까 싶다. 유령같은, 존재를 얽매는 사슬 같은 슬픔의 돌림 노래의 변주를 비틀어내는 저자의 힘. 과거의 속박과 폭력같은 사랑과 돌봄이 현재, 다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함께 책임과 존엄할 권리를 나누자는 '훅(한방)'처럼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