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 反하다
하승우 지음 / 낮은산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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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 반하다>는 너무나 익숙한 주제를 다룬다. 일제강점기 하의 3.1운동부터 평택 대추리 투쟁, 부안핵폐기장 반대운동, 양심적 병역거부, 하남 시장 주민소환운동,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그리고 희망버스와 현재의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투쟁까지. 주제만 보면 그리 새로울 것도, 구매욕구도 생기지 않는 책이건만, 새로운 관점에서 사건이 재해석된다는 점에서 책은 한 장 한 장 꼼꼼히 들여다볼 가치를 만들어 낸다. 저자의 논리는 간단하지만 심오하다. 그동안 우리가 직접행동이라 때로는 찬양하고 경이로워했던 그 많은 사건들을 우리는 이겼다, 혹은 패배했다로 평가하진 않았는지를 묻는다. 그리곤 다시 묻는다. 이 사건들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의, 혹은 나의 삶의 ‘존엄’과 ‘희망’을 발견하고 체현하는데 있어야하는 게 아니냐고.

 

많은 사건들을 다시 재구성하며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무력한 것은 우리가 힘을 가질 수없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지 결코 우리의 힘이 약해서는 아니다. 강력하게 중앙집권화된 국가에서 공동체가 파괴도어 서로 적대적으로 경쟁하며 살아야하는 고립된 사회에서 매일매일 자존심을 짓밟히는 노동을 하며 살아야하는 노동 사회에서 살고 있기에 우리의 힘이 약한 것이다.” 하지만 “자존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그것은 사건이 되고 역사가 된다”고 힘주어 강조한다. 무능력하다 비웃었던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이 그러했고, 자기 밥벌이에 바빠 다른 사람의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없을 거라는 인식을 비웃든 희망버스를 탔던 시민들에서 우리는 이미 그 싹을 보았다. 그들은 사회를 변화시켰지만, 또한 동시에 그 사건에 함께 했던 사람, 그 사건을 지켜보았던 사람들 안의 자리잡고 있던 좌절과 냉소를 희망으로 바꾸어놓았다. 스스로 ‘존엄’하다는 믿음과 그 믿음들이 서로 손잡았을 때 세상은 더디지만 조금씩 변화할 수 있을거란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이런 희망들을 더 많이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일상을 바꾸는 사건들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국가와 재벌에 맞서는 구조적인 투쟁도 필요하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나를 변화시키고, 가족을 변화시키고, 이웃을 변화시키는 삶도 필요하다. 그동안 “운동의 명분이나 전문성은 강해졌지만 그것을 일상에서 실현할 구체적인 방법은 부차적인 것으로 미루어졌다.” 그러다보니 직접행동이나 사건은 삶의 공간에서 벌어지고 만들어지기 보단 집회나 시위라는 공간에서 주로 열렸다. 다녀와야 했고, 돌아오면 그 공간과는 다른 일상이 있었다.

해서 저자는 일상의 사건들을 만드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대형할인마트 이용을 한번 줄이거나 여유가 된다면 생활협동조합을 이용하고, 운동과 정당의 실험을 하고 있는 녹색당에 가입해 탈발전과 탈핵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일상을 변화시키는 방법들이다.

 

이 책이 그냥 ‘좋은 책’들과 또 다른 이유는 저자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다. 저자는 비정규직이긴 했으나 소위 잘나가는 대학의 잘나가는 교수의 반열에 있었지만, 이 좋은 직장을 때려쳤다. 왜냐? 아는 것과 삶이 일치해야하는데, 대학은 그런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시민교육이라는 과목을 강의하면서 학생들에게 어떤 알바를 하든 반드시 고용계약서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연한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나는 한 번도 고용계약서를 써본 적이 없다. 여기서 어떤 교육이 가능한가? 누가 누구에게 시민됨을 가르칠 수 있는가?” 그래서 필자는 대학을 그만뒀다. 지금의 대학은 “조용한 노동자, 무기력한 학생, 영악한 교수, 오만한 사학재단, 부모들의 욕망이 교육을 빙자”해 야만의 대학을 공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필자는 가난하지만 “품위를 지키기 위해” 철밥통을 걷어찼다.(시사인 칼럼/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2174)

 

그래서 그의 글이 더 마음을 끄는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그가 내뱉은 이 말들은 소위 지인들의 ‘잘난 체’나 자기만족이 아닌 지행합일의 말들이라 믿기에, 아직 다 보지 못한 책장을 다시금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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