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허락하는 한 주말마다 서점으로 향한다. 온라인을 통해 신간이나 주목할 만한 책들을 찾아보는 것이 일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손끝으로서가에 꽂힌 책들을 쓸어내리며 질감을 느낀다.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책의두께를 가늠한다. 두 눈으로 표지와 본문 활자를 천천히 살펴본다. 시간 가는줄 모르고 책에 흠뻑 빠져 있다가 동료들의 작업물을 만나면 괜히 반갑다. 무의식적으로 흐트러져 있는 책을 바루고, 각을 잡아 띠지를 정렬한다. 책을 만드는 이에게는 무척이나 편안하면서도 즐거운 시간이다. 이미지로만 접하다가 실물로 책을 마주하는 순간, 종종 기대에 못 미칠 때도 있지만, 훨씬 뛰어난경우도 있다. 바로 이때 그 기대는 구매를 위한 확신으로 이어진다.
출판업계에서 나오고 있는 자조 섞인 위기론은 이제 너무나 오래된 일상이 되었다. 10~20년 전에는 베스트셀러가 될 책은 별다른 홍보 없이도 몇 만, 몇 십만 권이 수월하게 팔려 나갔다. 그야말로 예전 이야기다. 요즘은 상황이 많이바뀌었다. 베스트셀러를 낸다는 말은 ‘출판이라는 행위에 사전 연재, 서평단모집, 출간 예고, 전통적인 채널을 통한 광고와 기사, 트위터, 페이스북 그리고인스타그램을 통한 홍보, 카페와 고객 패널을 통한 바이럴 마케팅을 실시한다라는 아득한 상황을 온전하게 내포하고 있다.
디자인에 국한해봐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신입사원 시절만 해도 한 달에 담당하는 책은 한 권 혹은 두 권 정도였다. 중요한 책의 경우에는 서점에 배포할 홍보물과 매체 광고를 위한 디자인 정도가 더해졌다. 최근, 디자이너 한 명이 담당하는 책의 권수와 홍보 채널이 몇 배로 늘어난 현상은 당연한 일이다. 책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사랑은 줄어들었고 수명은 그만큼 단축되었다.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데 드는 공력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하지만 짧아진 수명만큼 계속해서 신간을 찍어내야 매출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환경이 바뀐다는 말은 단순히 업무량의 증가뿐만 아니라 정체성의 변화도 함께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젠가,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하는 날이 오면 북 디자이너라는 직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공격적인 질문을 받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