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의 정치철학 대원불교 학술총서 12
수바쉬 C. 카샵 엮음, 허우성.허주형 옮김 / 운주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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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째 <달라이 라마의 정치철학>(수바쉬 C. 카샵 편/허우성, 허주형 역, 운주사, 2023)을 침대 위에서 읽었다. 자기 전에 읽고 잠에서 깨면 제일 먼저 다시 읽었다. 무려 870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이라 읽는 시간도 적지 않게 걸렸다. 사실 이 정도 분량의 책을 보다 보면 질릴 법도 하지만, 이런 책을 번역한 사람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무엇보다 달라이 라마의 말과 글을 직접 대하는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깨우침이 컸다. 이 책은 수 십년에 걸친 달라이 라마의 연설과 인터뷰 글들을 수바쉬 C. 카샵이 모아서 편찬한 것이다. 

 

내가 2016년 몽골의 울란바타르에 있었을 때 그 해 12월 초 달라이 라마가 몽골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중국이 심하게 반대를 했지만, 라마교 신자들이 국민의 60%가 넘는 몽골을 달라이 라마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기 때문에 중국의 반대는 명분이 없었다. 우여 곡절 끝에 몽골에 도착한 달라이 라마가 내가 살던 아파트에서 반경 500 메타도 떨어져 있지 않은 몽골의 전통 불교 사원인 <간단 사원>에서 강연을 한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듣고 나도 친견을 위해 사원을 방문하려 했다. 

 

그 날은 울란바타르에 폭설이 내렸고, 기온도 영하 20도 이하로 급강하한 날이다. 도로가 꽁꽁 얼어 붙어서 걷기가 무척 힘이 들었지만 달라이 라마의 강연을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간단 사원> 후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막상 도착을 하니까 경찰이 막고 있는 것이다. 보안을 위해 후문 출입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정문 까지는 2.5킬로나 되는 거리를 한 바뀌 돌아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아쉽기는 하지만 그냥 돌아왔다. 

 

그런데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허용한 것을 두고 중국이 외교적으로 항의를 했을 뿐만 아니라 대륙 국가인 몽골의 물류 출입을 한 동안 막아 버린 것이다. 덕분에 몽골은 완전히 물류 대란에 빠져 애를 먹었다. 결국 중국에 다시는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빠져 나왔다. 몽골이 중국의 식민지가 아닌 바에야 어떻게 독립국의 주권에 해당하는 사항을 두고 저렇게 중국이 반 협박과 강박을 한 행위에 대해 외국인인 나조차 화가 났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민주주의의 경험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주변의 약소국들을 오로지 힘으로 무자비하게 제압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몇 년 전 한국도 탄도 방어 미사일 배치할 때 심각한 경제 보복을 당한 경험이 있다. 

 

이런 사정은 중국이 티베트와 달라이 라마를 대하는 폭력적인 방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평생 비폭력(아힘사)과 자비를 온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종교 지도자인데, 중국은 과민하다 할만큼 그가 티베트의 분리 독립을 사주하고 폭력 혁명을 조종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방대한 책의 어디에서도 중국의 비난을 정당화할 수 있는 구절을 찾기가 힘들다. 

 

오히려 달라이 라마는 비폭력과 자비, 인류의 행복 증진과 종교간 대화 등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고, 중국으로부터 티베트의 독립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법 테두리 안에서 티베트의 자치를 주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런 입장을 ‘중도 어프로치’라고 이름 부치면서 그것을 알아달라고 호소하는 편이지만 중국은 그의 말에 대해 완전히 귀를 닫고 있을 뿐이다. 중국은 달라이 라마의 일거수 일투족을 티베트의 분리 독립 운동과 직결시키는 편견에 사로 잡혀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달라이 라마가 할 수 있는 것은 세계인들, 특히 세계의 정세를 이끌어 가고 있는 미국과 유럽을 순회하면서 연설과 인터뷰 등을 통해 티베트 인민들이 받고 있는 참상과 티벳 문제의 해결을 알리고 있다. 

 

중국은 티베트 국민의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할 뿐 아니라 내몽골 처럼 한족의 이주 정책을 통해 인구 6백만 정도 되는 티베트 민족을 소수 민족화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이런 형태의 자치는 티베트의 전통 문화와 종교 등을 노골적으로 파괴하는 행위이다. 실제로 내몽골에서 인구 5백만 정도의 몽골인은 전체 인구의 20% 뿐이 되지 않아서 자치국 내에서 오히려 소수 민족으로 전락해 있다. 

 

이런 중국의 억압적 통치에 항의하면서 불교 승려들이 백명 이상 자신들의 몸을 불로 태우는 소신 저항을 했어도 중국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티베트의 천연 자원과 환경을 수탈하고 파괴하고 핵폐기물 설치 장소를 만드는 행위도 서슴지 않고 있다. 티베트는 지구의 지붕이라 할만큼 중요한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는 나라인데, 중국은 이런 사정을 외면하고 개발을 명분으로 자연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도 한족의 이주 정책과 자연 파괴식 개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보였다.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달라이 라마는 5항목 평화 플랜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티베트 전 지역을 평화지대로 바꾼다. 티베트 민족의 존속을 위협하는 중국인 대량이주 정책을 폐지한다.  티베트인의 기본적 인권과 민주적 자유를 존중한다.  티베트의 자연환경을 복원하고 보호하며, 중국이 티베트를 행무기 제조 및 핵폐기물 처리용으로 이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미래의 티베트 지이 및 티베트인과 중국인 간의 관계에 대해 진지한 협상을 제시한다.

 

달라이 라마가 ‘중도 어프로치’라는 표현을 쓸만큼 온건한 제안이지만 중국은 2006년 이래 달라이 라마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외면하고 있다. 

 

이 책은 달라이 라마의 육성을 정리한 글이기 때문에 그의 사상과 성품, 종교관과 지더십 등이 글의 행간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수행승이지만 동시에 대중과 끊임없이 접촉을 하고, 티베트의 현실을 외부 세계에 알리기 위해 외교와 정치 활동을 쉬지 않고 있지만 그것은 철저히 그의 영성과 종교적 자세에 기초해 있다. 달라이 라마를 보면 말과 행동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우리 시대의 드문 성자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합리주의자이고, 마르크스주의자임을 자처하고 있지만 공산당 일당 독재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현실 경제와 관련해서는 자본주의 현실에서 보이는 극단의 불평등과 사회주의의 통제 정책이 시장을 억압하고 비효율적인 측면을 고려해서 일종의 혼합형 경제를 선호한다고 말한다. 그는 철저히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답답할 만큼 비폭력(아힘사)을 강조하고 있는 데, 이런 행동은 인도의 간디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그는 비폭력 운동이 단순히 비폭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억압적 상대의 입장과 마음까지 용서하는 자비가 수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사실 이런 정도의 배려는 종교적인 영성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호소가 상대를 감동시켜 행동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하는데, 중국은 일관되게 달라이 라마를 분리 자치주의자이자 폭력주의자라는 혐의를 거두지 않는다. 

 

현실 운동에서는 이런 비대칭 방식이 도저히 통할 수 없음을 고려한다면 과연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의 자치 독립 운동에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달라이 라마를 반대하는 다른 티베트 내의 운동 노선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평가는 쉽지가 않다.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 노선은 최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나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에서 짧은 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현실과 비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비폭력과 자비는 비록 당장의 효과가 나타나기는 힘들더라도 장기적으로 상대를 변화시키는 운동이다. 

 

실제로 이런 현실을 알고 있는 적지 않은 중국의 학자들이 달라이 라마를 지지하고 있고, 지금도 끊임없이 중국의 양심적인 사람들이 달라이 라마를 방문해서 그의 연설을 청해 듣고 있다고 한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의 문제가 아시아의 두 거대한 국가인 중국과 인도 간의 균형과 화해를 이룩하는 데도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꾸준히 달라이 라마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바가 나한테도 크다. 무엇보다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 달리 민주주의와 자유를 신봉하고 인권과 평등과 같은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는 그의 합리적 사고에 공감하는 바가 크고,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매일 매일의 수행을 통해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는 그의 태도에도 감명하는 바가 크다. 그의 이런 행동은 인간과 세계의 고통을 줄이고자 하는 지바의 사상의 표현이다. 그의 기도에 이런 말이 있다. “허공계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중생계가 존재하는 한 나 역시 그곳에 머물 겁니다. 세계의 고통을 물리칠 때까지.”(달라이 라마) 

 

▲필자/ 이종철 철학박사.  ©브레이크뉴스

끝으로 번역과 관련해 한 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이 책은 870쪽이나 될만큼 분량이 방대하다. 이만한 분량의 책을 번역할 때 들어가는 공력은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이 책은 한국의 대표적 불교학자인 허우경희대 명예 교수가 심리학을 전공하는 그의 따님과 함께 공동 번역을 했지만, 흔히 공동 번역 상에서 나타나는 문체나 표현 개념 상의 차이를 거의 찾아보지 못할 만큼 잘 처리했다. 물론 강연이나 연설 그리고 인터뷰 등의 글이기 때문에 그만큼 번역하기가 쉽기는 해도 이 책의 가독성은 충분히 칭찬할만하다. 다음으로 달라이 라마는 세계의 종교지도자로 잘 알려져 있으면서도 한국에서 한국의 독자들이나 불교 신자들을 만난 적이 없다. 과거 여러 차례 초청 강연을 시도했지만 번번히 중국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앞서 몽골의 경우에서도 보았듯, 중국은 주권국가의 주권 행위에 조차 경제를 무기로 노골적으로 침해하고 있다. 아무리 중국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크다 하더라도 이런 행위를 묵과한다는 것은 스스로 주권의 독립을 포기하는 행위임을 한국의 정치인들이 알아야 할 것이다. 

허공계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중생계가 존재하는 한 나 역시 그곳에 머물 겁니다. 세계의 고통을 물리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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