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럽의 교육(로랭 가리 지음, 책세상)
오직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공쿠르 상을 두 번 받은 유일한 작가, 작가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음에도 또다른 가면 뒤에서 작품 활동을 한 두 얼굴의 작가, 권총 자살로 갑작스레 삶을 마감한 비운의 작가, 로맹 가리의 데뷔작입니다. 내용은 2차세계대전 당시 폴란드를 배경으로, 빨치산들이 항독 투쟁 중인 숲에 들어간 열네 살 소년 야네크가 그들과 함께하면서 진정한 용기와 사랑을 배우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이야기를 그리는 문장의 온도는 뜨거움과는 거리가 멀 수 있습니다. 소년 야네크와 빨치산들, 그리고 나치 독일의 만행 아래 고통 받는 이들의 이야기는 인간 존재에 대한 희망을 거두어 가죠. 그럼에도 로맹 가리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자명합니다. 섣불리 희망을 말할 수는 없더라도 절망에 굴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인데, 사실 인간의 역사는 그렇게 작디작은 발걸음들로 진보해 오지 않았을까요.
2. 1조 달러(안드레아스 레쉬바흐 지음, 페이퍼하우스)
다른 신간평가단 여러분들께서 한국 소설들을 많이 추천해주셔서 되도록이면 미국과 일본을 벗어난 다른 나라들에서 온 신간 도서들을 많이 추천하는 편입니다. 이번에는 독일 소설입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청년 존 살바토레 폰타넬리는 내일의 희망이 없는 가난한 피자 배달부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월세를 내지 못해 허덕이고 그나마 푼돈을 벌 수 있었던 피자 가게에서도 구박만 받다가 해고되어 좌절감에 빠진 바로 그 날, 이탈리아에서 온 네 명의 변호사들이 그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월도프 애스토리아 호텔에 초대해서 가게 됩니다. 최고급 양복을 빼 입은 이 신사들은 살아갈 의욕조차 상실한 피자 배달부 청년에게 먼 옛날의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 온 거액의 '재산'이 상속되었다고 알려준다. 게다가 그에게는 그 존재조차 의심스러운 먼 옛날의 조상이 인류의 미래를 구원하라는 위대한 소명(mission)을 맡겼다는데... 어떻게 될까요?
3. 밀수꾼들(발따사르 뽀르셀 지음, 책으로보는세상)
해양문학의 거장으로 문학계에 잘 알려진 발따사르 뽀르셀은 생애동안 무려 24개의 문학상을 받고 노벨 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었을 만큼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은 세계적인 작가입니다. <밀수꾼들>은 발따사르 뽀르셀이 쓴 최초의 본격 모험소설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에스파냐어와 까딸루냐어로 씌어진 작품으로, 유럽 문학에서 중요하게 써 먹은 지중해에 관한 발따사르 뽀르셀의 소설 미학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이 소설은 발따사르 뽀르셀의 소설 가운데 지중해적인 특성과 특수한 상황에 처한 지중해 인간의 모습이 가장 적나라하게, 현란하게 드러나 있는 작품입니다. 한 무리의 밀수꾼 사내들이 '보따폭' 호에 밀수품을 가득 싣고 에스파냐와 아프리카가 맞닿아 있는 지브롤터 해협을 출발해 지중해 한가운데에 있는 섬 마요르까를 향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되죠. 마요르까 섬이 지닌 거칠음, 서정성, 선정성, 아이러니, 비극, 환상은 <밀수꾼들>에 찐득찐득하고, 단맛 나고, 촉촉하고, 위협적인 문체로 녹아들어 있다고 합니다.
4. 포이즌우드 바이블(바버라 킹솔버 지음, 알에이치코리아)
미국 소설을 추천하는 것은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착이 강한 책이 하나 나와 있길래 추천합니다. 사실 이 소설은 미국에서는 이미 고등학교, 대학교 문학 과정 필독서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998년 출간해 미국 문단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이 작품은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선정, 137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미국서점협회.미국도서관협회 최고의 상 등을 수상하고 퓰리처 상과 오렌지 상 최종후보에 오르며 화제가 되었죠.
바버라 킹솔버 특유의 섬세하고 강렬한 필력과 영리한 통찰 그리고 잠시도 책을 놓을 수 없게 하는 흡입력으로 절찬 받은 이 작품은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콩고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콩고의 실제 역사인 정치적 대변동 시대를 시작으로 30여 년에 걸쳐 벌어지는 한 가족의 비극, 그리고 놀라운 재건의 서스펜스 넘치는 대서사시가 펼쳐집니다.
5. 물처럼 단단하게(옌렌커 지음, 자음과모음)
사실 중국 소설은 그 양과 질에 비해 아직 아시아권에서 충분히 소개되지 못한 장르입니다. 번역 때문인지, 정치 체제의 특성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한국에서도 루쉰과 같은 근대 소설의 몇몇 거장들을 제외하면 알려진 것이 별로 없지요.
그러한 점에서 옌렌커의 이 소설은 저의 눈을 번쩍이게 했습니다. 가뭄에 콩나듯 나오는 중국 소설 번역판의 새로운 책이 나왔으니까요. 중국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루쉰 문학상을 수상한 옌롄커라는 소설가의 대표작인데, 중국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자신들의 욕망과 야망을 불태운 두 남녀가 거침없이 구시대적 사상, 문화, 풍속을 척결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과연 혁명은 욕망의 촉매제일까요? 아니면 욕망이 혁명의 도화선일까요? 문화대혁명이라는 붉은 악몽 속에서 인간의 억압된 원초적 욕망은 순식간에 사회적 야망의 얼굴을 하고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