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린 다시 만나야 한다 - 가슴으로 써 내려간 아름다운 통일 이야기
이성원 지음 / 꿈결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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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책 속에 몇 차례 등장(?)하는 P양입니다.
사무실에서, 출장길에, 술자리에서, 남한에서, 북한에서, 이성원 과장님과 함께 했던 일들, 귀 쫑긋 세우고 들었던 이야기들, 보고서나 에세이로 접했던 글들이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오니 새삼 새롭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이 책을 쓰신 이성원 과장님은 신입사원 P양에게 말그대로 'A부터 Z까지' 가르쳐 주신 분입니다. 공문을 만들고 보고서를 쓰는 방법, 민원 응대 요령, 북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방법, 이 일을 하면서 가져야 할 마음과 자세 등 그 때 배우고 경험했던 것들은 P양의 직장 생활에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이런 좀 간지러운 이야기를 굳이 하는 것은 과장님이 책 속에서 P양을 과대포장해 주셨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더불어, 이러한 이유로 이 글도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일 수밖에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본문 중 <아름다운 하모니>의 2005년 5월 개성 방문은 8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히 기억납니다. 깐깐하게 온몸과 짐을 뒤지던 차가운 인상의 북측 세관원이 당시 아직 컨테이너 박스였던 남북출입사무소 뒤란에서 콤팩트를 들여다보며 정성스레 화장을 고치던 모습에 ‘아, 나랑 똑같구나. 똑같은 사람이구나.’ 기존의 세계가 깨져 나가던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민족작가대회 방북기인 <백두에서 한라로>를 읽으면서는 작가대회에서 5박6일을 함께 지냈던 철근장이 시인이 생각났습니다. 순안공항에서 평양 들어가는 고속도로에서는 차창 밖에 흔들리는 여름 코스모스 사진을 찍었고, 생가에서도 쑥섬에서도 꽃 사진 찍기에 열중했습니다. 심지어는 모두들 극적인 해돋이에 몰두한 백두산에서도 거친 바람에 낮게 누워 잘 보이지도 않는 야생화들을 찍고 있었습니다. 어찌 그리 꽃 사진만 찍느냐 했더니 남이나 북이나 꽃들은 다 같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셨지요. 냉방기에서 하얀 김(?)만 나오던 고려항공 비행기 안에서 서로 부채질해주기 바빴던 아름다운 기억도 덤으로 떠오릅니다.
 
<겨레말큰사전> 편을 읽으니 몽금포모임은 언제 다시 개최될지 궁금해지네요. 2006년 3월 북경에서 열린 겨레말큰사전 편찬회의를 하루종일 참관하면서는 머리가 참 아팠습니다. 우리말 공부하다 머리에 흰 서리 내린 남북 학자들이 두음법칙을 가지고 한나절을 씨름하는데, 어문규범이란 것이 어찌나 복잡하고 또 다르던지... 그러던 남북 학자들이 만나지 못한 지도 벌써 몇 년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분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1966년 런던월드컵 북한대표팀의 문지기였던 리찬명 선수가 2007년 3월 북한 청소년축구팀 단장으로 남한에 온 적이 있습니다. 영화 <천리마축구단>을 얼마 전에 보았는데 단장님을 이렇게 직접 만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했더니 어린애처럼 좋아하시더군요. 그 때 함께 찍었던 사진, 서로 간직하자며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러나 2007년 6월 함흥에 비료 배달을 가서 만난 아이들 사진만은 전해줄 길이 없네요. 동흥산공원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 하자 하나 둘 슬그머니 다가와 구경하더니 같이 찍자 손짓해 부르니 우르르 몰려오던 그 아이들, 남쪽에서 온 우리가 낯설지도 두렵지도 않았나 봅니다. 이제 모두 성인이 되었을 그 아이들은 우리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을까요.
 
잊은 적 없지만, 이 책을 읽으니 더 많이 생각납니다.
이제는 마치 실존하지 않는 것 같은, 이런저런 뉴스의 행간으로나 안부를 짐작해보는 사람들. 한 마디 나누지 못했어도 차창을 사이에 두고 눈을 맞추며 서로 손을 흔들어 주었던 사람들. 북한의 유명한 노래 가사처럼 심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 깊이 남아 있는 사람들.
그리고 요즘 P양이 일터에서 부대끼며 지내는 또다른 그 사람들.
 
얼마 전에는 경기 남부권에서 유명하다는 평양식 냉면집에 어르신들을 모시고 갔습니다. 입에 맞는지 여쭙자 할머니는 고향에서 어려울 때 없어 못 먹던 강냉이국수가 더 낫다고 하시더군요. 어떤 맛인지 궁금해지면서, 8년 전 평양에서 보았던 고려호텔 뒤 강냉이국수집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그 강냉이국수집에 가 볼 수 없었던 것이 아쉬우면서도, 지금 여기 이 분들과 함께 있는 것이 참 좋다 생각했습니다.
 
이런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민간에서, 정부에서, 남에서, 북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왜 그다지도 서로 만나려 했는지 자기의 이야기를 써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첫 만남의 감격 이후, 지금은 우리가 당연스레 여기는 작은 일 하나 이루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마음이 앞서거나 서로를 잘 알지 못해 어떤 실수와 잘못들이 있었는지도 배우고 싶습니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여러 사람의 서로 다른 시각과 경험을 통해 이제까지의 남북관계를 복기해 보면서 달라야 할 남북의 내일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그냥 개인적으로는, 글들을 통해서라도 그리운 그 사람들 다시 만나보고 싶습니다.
 
주말에 남북 여자축구를 보러 갔습니다. 모처럼 어머니를 모시고 갔는데 그만 어머니 마음이 상했습니다. 뒷자리 단체 관람객들이 북한 골에도 남한 골에도 환호를 올리자 "저 사람들 북한 응원단이야? 북한에서 왔어?" 물으시며 탐탁찮아 하십니다. 후반전을 보며 "남한이 2골 북한이 1골 더 넣어 동점으로 끝나면 좋겠어. 엄마는?" 하고 묻자 얼토당토않다는 표정으로 "우리가 이겨야지!" 하십니다. 저 뒤에서는 '우리는 하나'라고 하는데, 어머니는 '우리'가 이겨야 한다고 하십니다.
 
바깥세상은 말할 것 없고 관람석에서, 심지어 엄마와 딸 사이에서 생각이 부딪쳤지만, 저 경기장 안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도 넘어진 상대 선수 손 잡아 일으켜 주던 그 순간만큼은 훈훈한 분위기 조금은 감돌지 않았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만남이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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