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일기 - 전 세월호 대변인이 들려주는 4월의 이야기
고명석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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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제가 직접 읽어보고 쓴 리뷰입니다 

2014년에 4월 16일

세월호

저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요.

마침 중간고사 벚꽃 시즌이었을 거예요.

공부를 잘해야 한다. 시험을 잘 쳐야 한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

이런 말들을 계속 들어왔고 그런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 상태라서 그때도 세상 일에 등을 돌렸거든요.

들으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니까 최대한 못 듣고 안 듣고 했어요.

근데 여전히 4월 16일이라는 글자에 그날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올해 2025년 벌써 11년이 된 해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이라도 이 일은 꼭 제대로 알아둬야 된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

이런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고 정말 다시 한번 이 책을 읽길 잘했고 다시는 제 또래 친구들이 이런 일을 겪지 않고 세상에 사건 사고가 없었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어려움과 고통을 잊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나무에는 결이 있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도 역시 결이 있습니다.

결을 아는 사람만이 대들보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그때를 다시 들여다보고 분석하고 반성하고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안전 수칙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다'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추천사 2024년 11월 전 국민안전처 장관 해군대장 박인용

추천사를 봤는데요.

안전 수칙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다.

이게 되게 명언이더라고요.

제가 99년 2월에 태어나서 겪었던 것들이나

예상치도 못하게 일어났던 일들

그런 걸 좀 예방하고 막을 순 없었을까?

그러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났을 건데

생각하며 책을 더 주의 깊게 읽었습니다.

명량해전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 12척이 일본 함선 330여 척을 거의 전멸에 가깝게 격퇴했던 해전이다.

더구나 칠천량의 패전으로 조선 수군의 함선이 12척만 남은 상황에서의 승리였다.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올린 장계가 떠올랐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남아 있나이다."

"죽을 힘을 다하여 막아 싸운다면 능히 대적할 수 있사옵니다."

"비록 전선의 수는 적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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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물살을 바라보며 이순신 장군의 심정을 떠올려 보았다.

12척의 배만 남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장군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뿐이었을 것이다.

절박함이 결국 해전사에 빛나는 승리를 이끌어내지 않았을까?

현장의 상황도 그때와 다를 바 없었다

나라를 구하는 정도는 아니어도 수백 명의 꽃다운 목숨이 달린 문제였다.

이 절박함으로 그때처럼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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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선 133척을 맞아 12척이 병선으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빠른 물살이 바뀌는 상황을 정확히 읽고 전투에 활용한 덕분이었다.

조선 최대의 해난 사고였던 '추조 패선' 사건도 이 바다에서였다.

1656년 효종 7년 때였다.

우수영 앞바다에서 한꺼번에 천여 명의 수군이 물에 빠져 죽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바다에서 군사 훈련 도중에 큰 바람이 일어 많은 군사가 몰살당한 사고였다.

이 모두가 그 바다의 빠른 조류 때문에 일어났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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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바다에 그 배가 침몰하였다.

맹골수도 끝자락인 병풍도 인근이었다.

맹골수도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있는 맹골도와 거차도 사이의 좁은 해역을 말한다.

서해를 통과하여 남해안이나 제주도로 가는 선박이 대부분 지나는 항로였다.

하루에도 수백 척의 선박이 그곳을 통과했다.

평균 유속은 5.8노트 (2.0~3.5m/s)로 알려져 있다.

물속 흐름이 초당 2~3m 이동한다는 의미이다.

사람이 빠진다면 순식간에 물살에 쓸려갈 수 있는 속도다

특히 간조와 만조 시에 조류의 흐름이 빨라 이 시간대에 이곳을 지나는 선박은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곳이었다.

항로 오른쪽으로 병풍도가 있었다.

기암절벽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 쳐져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병풍도는 남북으로 좁고 길게 뻗어있었다.

흙이 없고 바위로만 이루어진 절경의 섬이었으며 강태공들 사이에서 꽤 유명세를 타는 섬이다.

병풍도는 전남 진도군 조도면의 여러 섬 중에서도 가장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거길 지나면 곧바로 제주로 향하는 넓은 바다가 펼쳐진다

하지만 그 배는 병풍도를 마저 통과하지 못한 채 멈춰 그 바다 밑으로 침몰하였다.

우리의 기억은 거기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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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소가 어떤 장소이고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고 역사적 지식까지도 담겨 있습니다.

근데 그런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곳인 만큼 물살이 엄청 빠르다는 걸 의미하더라고요.

그래서 그곳을 지나갈 때 어떻게 하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까?

저희는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476명이 탄 배가 침몰한 것은 가장 슬픈 일이었고

304명을 태운 채 가라앉는 모습은 가장 충격적이었으며

사고 소식이 수시로 바뀐 것은 가장 혼란스러운 일이었다.

'블랙스완'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검은 백조를 뜻한다.

1697년 네덜란드 탐험가가 오스트레일리아를 탐험하던 중 존재 자체를 몰랐던 검은 백조를 발견하였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검은 백조가 이 세상에 존재하리라 생각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는 블랙스완이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발생할 수 없다고 믿었던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직후 범정부 사고대책본부가 꾸려졌다

나는 사고대책본부에서 대변인을 맡게 되었다.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갑자기 일상이 깨지고 질서가 흐트러졌다

마음속에 먹구름이 덮쳤다

거대한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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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이라는 단어가 영화 제목도 있고 노래도 있고 되게 많이 쓰이는데 여기서 또 그 단어를 보게 되네요.

가장 비현실적인 건 현실이다. 이런 말을 김경필 선생님께서도 해주셨는데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잘 대처할 수 있는 해결 능력과 예방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세월호는 길이 145m 폭 22m에 무게 6825톤이었으며

5층 구조인 선체는 10층짜리 빌딩 높이였다.

연안 부두에 정박해 있는 연안 여객선 중에서 독보적인 크기였다.

1994년 6월 일본에서 건조되었고 2012년 10월 국내에 도입되었다.

출항 당시 만든 지 20년째를 맞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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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객선은 여객과 화물을 함께 실을 수 있는 배였다.

여객선 중에서 '로로선(RO-RO선)'이라는 배였다.

로로선은 화물을 적재한 트럭이나 일반 차량을 운반하는 화물선이었다.

차량을 싣고 내릴 때 별도의 크레인을 이용하지 않고 차량을 운전하여 직접 배에 드나드는 선박이었다.

일반 화물선과 달리 이런 유형의 배는 선체 구조가 개방된 형태고 전복되기 쉽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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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배가 침몰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자초지종이 하나씩 드러나는 지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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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과 선체가 만나는 선을 흘수선이라 하는데 만재흘수선은 배가 화물과 승객을 가득 싣고 안전하게 항행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을 나타낸다

쉽게 말하면 만재흘수선 이상의 화물을 실으면 배가 위험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배 옆에 표시된 만재흘수선이 수면 아래로 내려갈 정도로 화물을 실으면 출항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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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서 출항을 준비하던 그 배는 적정 무게의 두 배 가까이를 실었다

화물이 만재흘수선을 초과하며 출항 허가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초과한 화물 무게를 상쇄하여 만재흘수선을 맞추기 위해 평형수와 연료율을 그만큼 적게 실었다

이렇게 되면 아래쪽에 있던 무게 중심이 위쪽으로 올라간다

그만큼 배는 복원성을 잃고 불안정해진다.

적재한 차량이나 컨테이너가 항해 중에 움직이지 않도록 묶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다.

화물을 선박에 고정시키는 것을 '고박(Lash-ing)'이라 한다.

화물 고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경우 항해 중 배가 흔들리면 화물의 위치가 움직일 수 있다.

이로 인해 배가 기울어지는 것이 가속화될 수 있다.

이렇게 안전 운항과 관련된 출항 전 점검 사항을 책임지는 사람은 선장이었다.

선장이 전반적인 출항 현황을 점검한 후 안전점검 보고서를 작성해 한국해운조합 운항관리실에 제출해야 했다.

운항 관리자는 보고서를 확인하고 결함이 있거나 내용이 부실할 경우, 이를 직접 확인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이준석 선장은 실제로 점검하지 않은 채 3등 항해사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3등 항해사가 작성한 안전점검 보고서는 운항 관리자에게 무사히 통과되었고 운항 관리자는 서류만 보고 출항 허가를 했다.

이제 배는 서류상이었지만, 출항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배의 허점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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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법에 따르면 배와 승객의 안전에 관한 한 전적으로 선장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선장의 지시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선내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본인이 탈출할 만큼 침몰이 확실하다고 판단되었다면 선장이 선내 방송으로 탈출을 유도했어야 했다.

하지만 선장은 제 목숨만 구하기 위해 이미 탈출하였다.

그렇다면 남아 있던 선원이라도 탈출 방송을 했어야 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선장이 이미 탈출하였고 침몰이 확실한 상황에서 선내에 머물도록 방송을 하고 그대로 탈출한 것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과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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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적왕이 될 거야." 라는 명대사를 남긴 원피스라는 해적 이야기가 있어요.

물론 애니메이션이긴 하지만 지금 나오는 스토리와는 너무나도 확연히 다른 선장의 모습을 보여줘서 참 안타깝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모든 정황들이 너무나도 안타까웠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살릴 순 없었을까요

그 바다 조류는 사람을 연날리듯 날리고

그 바다 시계는 잠수사가 자기 팔을 뻗었을 때 손을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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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다는 직접 그 바다에 들어가 보지 않은 이상 모르는 거죠.

직접 현장에서 뛰었기 때문에 얼마나 몸을 추스르기 힘들고 바닷속이 뿌옇게 보이지 않고 캄캄하다는 걸 잠수사는 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니까요

그런 바다 현장에서 일해주신 분들께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세월호는 6천 톤이 넘는 여객선이었다.

침몰 상태인 거대한 여객선에 에어포켓이 형성되는 것은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들었다

운 좋게 에어포켓이 형성되었더라도 선박 내에서 생존자가 에어포켓을 찾아가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천운이 있어 생존자가 에어포켓에서 구조를 기다릴 수 있게 되더라도 구조대가 미로를 따라 그곳을 찾을 확률은 희박했다.

더구나 생존자를 구조해서 다시 미로를 빠져나와 수면 위로 올라온다는 것은 기적이 함께 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부터 희망 고문으로 끝날 일이었다.

현실적으로 그 배는 '에어포켓 존재' = '선내 생존자' = '구조'라는 공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이를 예상할 수 있었던 여러 해양 전문가들도 입을 닫았다.

'에어포켓'이라는 마법의 단어가 등장하면서 객관이나 과학은 낄 자리를 잃었다

현실을 말하기에는 희망과 기대가 커져버린 까닭이었다.

그렇게 현실과 무관하게 희망 고문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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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상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이런 사고에 예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이런 위험한 바다에서 일이 이미 일어났을 땐 걷잡을 수가 없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제 또래 친구들이 만약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계속 살아 있었다면 지금쯤 저처럼 청년이 되어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멋지게 살아가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 저한테 주어진 이 삶을 더 그 몫까지 값지게 살아내야 되겠다, 세상을 더 낫게 변화시켜야겠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미안해요

제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책을 읽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뿐이라서.

직접 그 어두운 물에서 구해주는 게 아니라서

가족 품에서, 친구들과 같이 다시 하하호호 웃을 수 있게 하는 게 아니라서

이렇게 그날의 기억을 활자를 통해 더듬어 마음 아파 한 게 전부라서

그것도 자그마치 11년이란 세월이 지나 겨우.

감당하기에는 그당시 나약한 저에게 너무나도 무겁고 큰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게 주어진 이 삶을 몫까지 더 잘 살아내겠습니다.

목숨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해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함께 도와주세요

감사드립니다

-11년이 지나서야 그날을 제대로 마주하고 열어보는 겁쟁이 1명 드림-

P.S 그 깊은 물속에서 살려주지 못해 정말로 미안해. 이게 내 속마음이야.

다른 생이 존재한다면 부디 편안한 곳에서 아픔 없이 즐거운 시간만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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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바다 물속은 시야가 좋지 않았다.

세월호가 침몰되어 있는 맹골수도 물속은 더욱 그랬다.

조류가 흐르는 시간은 물론 조류가 바뀌면서 흐름이 멈추는 정조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 오직 공깃줄에 의지해 들어가야 하는 선체 수색은 지난한 일이었다. (지난하다 = 지극히 어렵다 (네이버 국어사전))

장애물로 가득 찬 통로를 따라 손으로 더듬으며 나아갔다

수중에서 들려오는 잠수사의 숨소리는 거칠고 고통스러웠다

바지선 위에서 통신줄을 통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통신줄을 이용해 물속의 잠수사와 수시로 정보를 주고받았다.

잠수사의 증언에 의하면 시신을 찾아내는 것은 주로 손끝의 감각에 의해서였다.

잠수사는 장갑을 끼고 작업했다.

하지만 어둡고 차디찬 물속에서 본능적으로 오감이 깨어나는 것일까?

머리카락 한 줄이라도 손끝에 닿으면 마치 맨손처럼 감각이 느껴진다고 했다.

눈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더듬는 손끝의 감각에 의존해 시신을 찾아냈다

빨간색 구명조끼가 보이는 듯하면 주위를 손으로 휘저어 찾기도 했다.

시신을 발견하면 통신을 통해 물 위 바지선에 알렸다

연락받은 바지선에는 즉시 3번 잠수사를 입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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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잠수사는 최대한 신속하게 들어가 중간 지점이나 2번 잠수사가 있는 선체 입구에 대기했다.

그리고 수면 위에 보트를 대기시켰다

시신이 수면 위로 부상하면 시신을 거두기 위해서였다.

선체 안에서 시신을 발견한 1번 잠수사는 유실되지 않도록 양팔로 희생자 시신을 껴안았다.

온전히 희생자와 하나가 된 채 들어갔던 통로를 천천히 되돌아 나왔다.

그동안 2번 잠수사는 공깃줄을 잡아당겨 1번 잠수사가 되돌아 나오는 것을 도왔다

이제 희생자를 3번 잠수사가 인계받아 껴안고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수면 위까지 부상하면 대기하고 있던 보트 위로 시신을 조심스럽게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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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물속에서 홀로 어린 학생의 주검을 마주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물속에서의 단순한 잠수 작업 이상이었다.

물속의 물리적 환경을 극복하는 것도 있지만, 가슴을 후벼파는 연민과 고통을 함께 견뎌야 하는 일이었다.

시신을 인계하는 잠수사 마스크 너머로 언제나 쏟아졌던 건 눈물이었다.

그 아이는 영원히 잠수사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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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사 선생님들께

이리도 어려운 과정을 거쳐 해주심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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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시야와 거센 조류로 인해 잠수 작업은 그야말로 사투였다.

그 바다는 흙탕물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바다였다.

정조 시간에도 1m 이상의 시계를 허용하지 않는 바다였다.

그야말로 눈을 감고 팔을 휘저으며 물속을 나아가는 상황이었다.

거친 소리를 내는 조류는 잠수사를 쉽게 날려버렸다

물에 뛰어드는 순간 초속 수 미터 속도로 물살에 쓸려가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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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극한 상황에서 수심 40m 가까이 물속으로 들어가야 선체 수색이 가능했다.

바지선에서 선 채로 이어지는 공깃줄은 조류에 밀려 나선형으로 꺾였다.

침몰한 선체에 진입하려면 잠수사는 우현(배 오른쪽) 객실로 통하는 창문을 깨고 진입해야 했다.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들어가서 몸을 거꾸로 한 채 수평 방향으로 수색했다.

중력을 거꾸로 받으며 암흑 속 미로를 더듬어야 하는 잠수사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미로처럼 꺾인 통로에 공깃줄을 끌고 들어가다가 날카로운 물체나 유리 조각에 공깃줄이 끊기는 경우 목숨을 보장할 수 없었다

통로나 벽에 매달린 물체에 걸려 납벨트가 풀어지는 경우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였다.

혹은 어둠 속에서 눈앞의 물건을 보지 못하고 머리를 부딪히는 경우도 있었다.

수색 기간이 길어지면서 여러 문제도 속출했다.

세월호 선체가 오랜 시간 물속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체 벽면이 무너져 내려 통로를 막거나 수색 도중 쏟아져 내려 안전에 위협이 되었다.

천장이 벽면이 되고 벽면이 없어지기도 했다.

일부 격실은 무너져 내린 물건과 벽체로 인해 통로가 막혀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시간이 갈수록 희생자 시신도 점점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변해갔다

잠수사가 직접 끌어안고 부상하던 방식으로는 수습이 불가능했다.

결국 시신을 담는 자루를 물속으로 가지고 들어가 수습했다.

물속의 상황은 점점 극복하기 어렵게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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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사가 입수하면 지원하는 팀원은 바짝 긴장했다.

물속 잠수사 움직임에 맞추어 공깃줄을 늘려주고 수심과 수압을 체크하고 조류를 체크하고 이를 잠수사에게 전달했다.

1번 잠수사가 선체를 수색하는 동안 팀원들은 최고의 긴장 상태로 지원 태세를 유지했다.

물속에서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잠수 작업이 끝나고 일 이번 잠수사가 수면 위로 부상해도 긴장을 놓지 못했다. 장비를 풀고 감압하고 다음 잠수를 위해 장비를 정비해야 했다. 현장인 맹골수도는 녹록치 않았다. 수색 작업이 길어지면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잠수를 끝내고 감압 과정에서 실신하고 나 급상승 과정에서 잠수병으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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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에서 호흡이 막혀 죽을 고비를 넘겼고 선실에 진입한 상태에서 객실이 무너져 다친 경우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극한 상황에서 잠수 작업은 잠수사를 극심한 트라우마에 빠트리기도 했다.

시신 수습에 나섰던 잠수사는 물속에서 충격적 장면 때문에 자살 충동을 느꼈다

초기에 잠수 작업 후 휴식을 충분히 갖지 못했었다.

잠수는 1회 작업 후 12시간 이상을 휴식해야 한다.

또 1회 장시간 잠수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숙련되고 경험 많은 심해 잠수사가 부족한 상태에서 잘 지켜지지 않았다.

잠수병을 방지하려면 감압 과정이 필수적이었다.

정해진 감압 시간에 맞춰 상승하려면 중간에 수중에서 대기한 후 상승해야 한다.

그러다 다음 입수자 시간을 확보할 수 없어 급상승하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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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나 휴식 공간도 부족했다.

식사는 해경정을 이용해 도시락을 팽목항에서 실어 날랐다

한 시간을 배로 운반하면 따뜻하게 식사하기는 어려웠다

취침 공간도 여유가 없었다

좁은 컨테이너 안에서 여럿이 쉬어야 했다.

컨테이너 바닥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잠수 바지선 여건이 나아졌다

첫 투입됐던 금호 바지선은 여건이 나은 언딘 리베로 바지선으로 교체되었다.

잠수사 건강을 위해 휴식 시간도 보장되었다.

잠수병 방지를 위해 군의관이 상주하며 의료 지원에 나섰다

음식이나 휴식 여건도 점차 개선되었다.

여기에는 가족들이 교대로 바지선에 상주하며 잠수사 작업 여건을 일일이 챙긴 덕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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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 바지선에 걸린 플래카드 [당신은 우리 아이들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잠수사분들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어요.

얼마나 힘드셨을지요

엄청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신 그 과정과 노고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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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타는 염원에도 불구하고, 5명의 미수습자는 끝내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다섯 가족은 수색이 끝나갈수록 초조함도 깊어졌다.

자주 멍하니 바다 쪽을 바라보거나 무표정하게 눈물을 흘리는 일이 많아졌다

말이 없어지고 눈동자의 초점이 없어져 갔다

옆에 있어도 뭐라 위로할 수 없었다.

다섯 미수습자의 가족들은 결국 목포신항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2017년 11월 18일 목포신항에서 미수습자 영결식이 열렸다

사고가 발생한 지 3년 7개월, 세월호가 육상에 올라온 지 7개월 만이었다.

이들 미수습자는 단원고 학생 남현철 박영인 군, 교사 양승진 씨, 일반인 권혁규, 권재근 부자였다.

영결식에서 미수습자 가족 현철 아빠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남현철 학생, 박영인 학생, 양승진 선생님, 권재근 님, 권혁규 님.

이 다섯 사람을 여건히 잊지 말아 주십시오.

기억해 주십시오."

- 현철 아빠 인터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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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고, 또 스스럼없이 대해 줘서 감사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더욱 미안함과 송구함으로 고개를 숙였다.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꼭 감싸 주고 발길을 옮겼다.

부두 울타리에 촘촘히 매달려 있는 노란 리본들이 거센 바람에 나풀거리기 시작했다.

237페이지, 239페이지

마음이 너무 아리어서

함께 눈물이 나는 페이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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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제도 기반을 튼튼히 할 필요가 있었다.

해양경찰법과 해상교통관제법 장비관리법 등의 기초가 그때 마련되었다.

또 세월호 사고에 대한 반성과 복기를 했다.

이를 통해 미래 대형 사고를 대비하고 필요한 인력과 장비를 갖추도록 준비했다.

세월호 사고로 바닥까지 떨어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도 중요했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았다.

세월호 유가족과의 관계도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했다.

안산에 있는 단원고 4.16 기억 교실을 방문하기도 하고 유가족과 상의해 세종 청사에서 북콘서트 행사를 열기도 했다.

241페이지

시스템 개선을 위해 노력해 주시고

직접 발로 뛰며 애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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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난 보도 시각의 변화 필요

재난 보도가 가지는 본래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재난 보도는 시청률을 고려한 상업성보다 국민 전체를 고려한 공공성을 추구해야 한다. 특히 대규모 재난에 있어 당해 보도가 국가적으로 이익이 되는지 국민에게 유익한 보도가 되는지가 먼저 고려돼야 한다.

재난 보도만큼은 언론사 내부적인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시각을 지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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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근본적인 원인과 대책에 대해 장기적으로 파헤쳐 알리고 사후 개선 과정도 지속적으로 추적하는 중장기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나아가 사안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혼란스러운 재난 초기에는 수습, 복구에 도움을 주는 역할도 중요하다

예컨대, 구조 전문가나 구조 장비를 기획 취재하여 구조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재난을 수습하는 정부나 구조 주체를 무조건 비판하여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기보다는 피해자, 정부, 일반 국민 간의 사회 통합을 지향해야 한다.

2) 사기를 올리는 언론의 역할 정립

재난이 닥치면 사기를 올리는 언론의 역할 정립 재난이 닥치면 많은 국민들이 슬픔에 빠지고 사회적으로 분위기가 침체된다.

이 시기에 사고 현장과 피해 상황만을 반복적으로 보도하기보다는 전체 국민들의 사기를 올릴 수 있는 역할이 필요하다

비극적인 상황에서 자기 희생을 보여준 공무원이나 시민을 적극 발굴, 보도해야 한다.

평시에도 재난과 관련하여 사기를 올릴 수 있는 기획 취재나 외국의 사례 등을 보도하여 일반 국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재난 프로그램의 기획 편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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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교육 및 매뉴얼 정비

재난 보도는 일반 보도와는 다르기 때문에 재난 현장 취재를 위한 기본 교육이 필요하다

어디까지 접근할 수 있는지?

피해자 인터뷰 등 피해야 될 것들은 무엇인지?

무엇을 중점적으로 취재할 것인지?

구조에 방해를 주지 않는 취재 방법은 어떤 것인지?

현장에 투입되는 기자가 알아야 할 것들은 많다

매뉴얼은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현장에서 피해야 할 것들과 실천해야 할 것들은 신입 기자가 봐도 알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

다만, 매뉴얼은 현장에서 실행에 옮겨지지 않으면 소용없다.

위반 시 내부 제재 등 실천을 위한 언론사의 의지가 필요하다

4) 재난 관련 전문성, 책임성 강화

전문성과 관련하여 우선 취재의 전문성 확보가 시급하다

재난 전문 기자나 취재팀을 상시 운영하면서 재난 보도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일회성 발표나 보도에 초점을 두지 말고 기획 취재나 다큐멘터리 등 깊이 있는 보도가 필요하다

또한, 재난 관련 전문가 그룹 확보가 필요하다

재난 발생 시마다 아마추어를 패널로 급히 출연시켜 시청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평소에 재난 관련 전문가 그룹을 확보하여 재난 관련 기자 교육은 물론 필요시 패널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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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현장에서 보완 상황

재난 현장에서 취재 시스템 마련이 절실하다

구조에 방해를 주지 않으면서 효율적으로 취재 활동을 하려면 합동 취재단 구성이나 협의회를 만들어야 한다.

현장은 혼란스럽다

인명 피해가 속출하는 현장 접근은 취재 기자 수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재난 시를 대비하여 평소 언론 관련 협회를 통해 취재단 구성이나 기자협의회를 구성해 놓고 교육까지 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마무리하며

지금까지 재난 보도에 관한 기본적 이해와 필자의 개인적 경험을 위주로 우리나라 재난 보도 문제점과 대책을 제시해 보았다.

앞서 보았듯이 재난 보도에 있어 많은 문제점이 있다.

상업성을 우선시하는 언론사 사주와 간부, 경직된 데스크 취재 경쟁에 몰입된 현장 기자들...

그렇다면 이런 언론 환경에서 바람직한 재난 보도에 대한 희망은 아예 없는 것인가?

재난 피해를 최소화하고 복구를 지원하고 국민들에게 사기를 주며 국가적 이익에 도움을 주는 재난보도는 요원한 것인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언론을 운영하고 보도를 만들어가는 것은 결국은 결국 언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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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서 필자가 겪어본 기자들, 그들에게서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재난을 내 일처럼 생각하고 그 속에서 피해자의 아픔을 가슴으로 함께 느끼는 기자들이 있는 한 미래가 보인다.

이들이 언론의 내일이며 희망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열하는 가족들과 아픔을 같이하며 취재와 숙식을 같이 하던 그 기자들...

장기간 취재로 가슴에서 털어내지 못한 아픔을 씻으러 심리 치료를 떠나던 그 기자들...

재난 현장인 진도를 떠나는 것이 못내 미안해 다시 취재하러 돌아온다고 약속하며 손을 잡던 그 기자들...

치열한 취재 활동 중에는 여러 날을 필자와 언쟁했지만, 격려와 에너지를 가득 담아주고 떠나던 그 기자들...

부록

맞아요

현장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걸 미처 알지 못했어요

책 덕분에 더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곳에 왔다가며 겉으로 또 속으로 아픔과 슬픔을 같이 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고명석 저자님이 대변인을 맡으셨기 때문에 이런 취재나 언론 관련으로도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일을 하면서 이런 통찰도 얻으셨고 우리나라가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지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해주신 덕분에 미처 생각지 못한 시각으로 이 사건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언론계가 지금보다 더 낫게 바뀔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대변인 일을 하셨던 저자님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11년이 흘러 마주한 그날의 아픔_그곳엔 많은 이들이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고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방식을

저희가 평상시에 잘 생각해 놨으면 좋겠습니다.

11년간 등을 돌렸던 이 사건을 조금이나마 제가 더 알고 조금이나마 더 도움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제 리뷰가 누군가에게 또 도움이 되고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대변할 수 있는 노래를 한 곡 공유드리며 마무리하겠습니다

https://youtu.be/1Ea39j2XVHA?t=19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가을엔 곡식들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 될게요

겨울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될게요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줄게요

밤에는 어둠 속에 별 되어

당신을 지켜 줄게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천 개의 바람이 되어] 가사

감사합니다.

글쓰는 리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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