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주는 감정 유산 - 가족심리학자 엄마가 열어준 마음 성장의 힘
이레지나(이남옥)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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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나의 엄마가 이렇게 편안하게 얘기해 주었더라면, 이런 순간들마다 따뜻한 위로를 받았더라면 하며 시시때때로 아이의 시절로 돌아간다. 그리고 사실 읽는 내내 나 너무 잘하고 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나온 대부분의 조언을 이미 해왔고, 하고 있는 것 같다.

저자의 전작, 모녀 관계를 다룬 <나의 다정하고 무례한 엄마>를 흥미롭게 읽었는데 이번 책에서는 딸을 키우면서 느낀 깨달음과 3만 회 이상의 가족 상담을 하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자산이자 소중한 가치에 대해 말한다. 특히 당장의 학업에 치중하느라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을 놓친, 혹은 갖추지 못한 인생들이 결국 어떤 어른이 되는지 주변에서 많이 보지 않았는가 하고 떠올려보게 된다.

자라면서 경험하고 부딪히는 일에 대해 부모가 대신 가르침을 주거나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어차피 거의 없다. 하지말라면 더 하고싶고 아무리 말려도 제 갈 길 가게 되어 있다. 다들 자식 해봐서 알 텐데, 왜 갑자기 부모가 되면 그런 적 없던 척 모르는 척 하는지도 모르겠다.

‘피하고 싶은 것이 인생의 전부가 되는 이유’라든가 ‘아이들 저마다의 생의 의미’ 등은 알면서도 다시 새기게 된다. 그리고 육아 방식이란 내 삶과도 별개일 수 없기에 이 책은 어쩌면 육아서지만 육아서가 아니다. 부모이기 이전의 개인으로서 삶 자체에서 추구해야 할 방향을 멀리 제시한다. 물론 수많은 건강 수칙들처럼 알면서도 지키기는 어렵겠지만

부모를 다그치거나 훈계하는 글이 아니라 가족 상담/치료 전문가답게 마음을 보듬는다. 특히 양육 철학을 만들어가고 있는 영유아 부모에게 좋은 위로와 도움이 될 것 같은 교과서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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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책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앤솔러지
기 드 모파상 외 지음, 최정수 외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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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취향 저격, 단편 하나하나가 주옥같았다.


탐욕과 광기, 허세와 집착, 환멸과 환희, 증오와 연민,

미련과 단념, 고독과 불안…

이런 것들조차 결국 다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인간이 가진 감정 단어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유일한 단어가 ‘사랑’이 아닐까 싶을 만큼

사랑은 불명확하고 불가해하다. 인간의 마음이 닿는 어디에나 깃든다.

읽는 동안 이토록 각양각색의 서사가 ‘사랑’이라는 주제로 묶일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웠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 송이 장미>와 레베카의 원작자 대프니 듀 모리에의 <낯선 당신, 다시 입 맞춰 줘요>의 그로테스크한 긴장감

지적장애가 있는 둘째 아들에 대한 연민과 증오가 뒤범벅된 모성을 담은 캐서린 포터의 <그 애>

풍요 속의 빈곤처럼 쓸쓸했던 <로맨스 무도장>

막장 코믹극 <광란의 40번 대 구역에 꽃핀 로맨스>와 <영구 소유>에 등장하는 두 보살의 인류애적 태도

알퐁스 도데와 오 헨리 특유의 아련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뽐내는 <아를의 여인>과 <목장의 보피프 부인>


사랑이 어쩌다 아름답고 행복한 것이라며 세뇌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의 책>이라는 제목과 표지의 빛깔 때문에 달콤하고 설레는 로맨스를 기대한다면 이 책은 기대를 철저하게 저버릴 테다. 하지만 아마 그 예상을 빗나가는 당혹감마저 즐거우리라 생각한다. 특히 기드 모파상과 에밀 졸라의 시크한 단편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이 소설집은 더욱 취향에 잘 맞을 것 같다. 무엇보다 수록작들의 작품성이 뛰어나다. 무척이나 매혹적이다.

이쯤 되면, 훌륭한 작품 큐레이션에 박수를 보내며 <죽음의 책>을 이어 읽지 않을 수가 없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으나 리뷰는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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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지방문화 - 대서양에서 지중해까지 프랑스 문화 3부작
이상빈 지음 / 아트레이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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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 책은 프랑스로 번역되어 역수출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든다.

프랑스 사람들이 이 책을 펼쳐 들고 바캉스 시즌 국내 여행을 계획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나는 합천이 경남인지 경북인지, 광주보다 나주가 더 위인지 아래인지 솔직히 잘 모른다. 지역도시에서 무슨 행사가 열리고 방방곡곡 어떤 전설이 깃들었으며 동네마다 가장 유명하고 맛있는 음식이 무엇인지 사실 잘 모른다. 한국에서 평생 살았고 수도권에서 학교와 직장을 다녔지만 내 나라도 이토록 다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읽으면서 생각했다. 단언컨대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대부분의 프랑스 국민보다도 이 책의 저자가 프랑스를 더 오래, 꼼꼼히 구석구석 들여다보았으리라. 대한민국 땅보다 여섯 배는 더 넓은 나라를 지역별로 이렇게 하나하나 짚어 나가면서도 프랑스라는 나라의 총체적인 정체성을 놓치지 않는다. 국내에 그간 없었던 방대한 연구 작업의 결과물이 반갑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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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 개정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이혜승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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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마도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대여섯 명의 위대한 작가들이 쓴 대하 장편소설을 주로 ‘러시아 문학’ 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수 세기에 걸쳐 발전해 온 프랑스나 영국 문학에 비해
러시아 문학은 특정한 시기에 국한된 비교적 최근의 문학이며
소비에트 정부가 통치한 40여 년 동안에는 더더욱 사적인 취향, 새롭고 독창적인, 어렵거나 이상한 것들이 허용되지 않던 일률적으로 제한된 영역이었다.

모든 프롤레타리아 소설은 반드시 소비에트의 승리로 해피엔딩이 되어야 했으며
작가의 상상력과 자유의지, 표현에 분명한 제약을 두었으므로 사실상 주제와 결말이 법에 의해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그럴수록 독자의 영역은 더 중요해진다.
작품의 디테일, 메시지, 작가의 의도와 즐거움, 말할 수 없던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들을 읽어내는 힘.


나보코프는 훌륭한 독자이자 비평가로서 러시아 문학 거장들의 작품세계를 탐구한다.
194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간 나보코프가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주제로 진행한 강의를 모은 이 책은 무시무시한 제목과 분량에 비해 매우 생생하고 재미나게 읽힌다.
(그리고 책 자체가 정말 고급스럽다. 소장용 강추!)

실제로 강의를 들었으면 어땠을까 아쉬울 정도로 비평이라는 장르를 호평과 혹평을 넘나들며 맛깔나게 이끌어 간다.

인물 별로 다르게 흘러가는 타임라인 (안나 카레리나) 등 소설 속에 배치된 디테일한 장치 분석이 흥미로움은 물론이고, 라스콜니코프 정신병자썰 (죄와 벌)과 함께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다소 냉정한 평가도 새로웠으며,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가장 예술적이고, 완벽하게 정교하다고 평가한 개인적 취향도 만나볼 수 있다.

책에서 다룬 작품들을
읽었다면 아는 작품을 되짚어가며 새롭게 다가오는 재미로
아직 읽지 못했다면 언젠가 만날 대작들에 대한 사전지식을 쌓는 즐거움으로
이 거침없고 날카로운 나보코프 교수님의 명불허전 강의에 알람과 광클이 필요 없는 수강 신청을 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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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몰랐던 K - ‘진짜 선진국’ 대한민국을 위한 박노자의 불편한 제안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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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역 말고, BTS 이야기 빼고
우리가 몰랐던 진짜 K


2001년 귀화해 한국 국적을 가졌지만 소련의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본명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대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가르치는 저자 박노자가
경계인으로서의 복합적인 정체성이 만들어 낸 특유의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오래 지켜보고 늘 고민해 온 한국 사회에 관해 이야기한다.


대한민국의 미래세대가 보고 배워야 하는 남성성의 적합한 아이콘이 여전히 군사주의적 선악 이분법의 상징인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이냐며 묻기도 하며 권위주의적 위계 질서와 계급 차별에 대한 일침을 사정없이 날리기도 한다.

반여성, 반중국, 반난민을 내세우는 혐오 정치에 더해져
대선을 앞두고 더욱 절정에 다다른 듯 보이는 K-팬덤 정치의 병리적 현실. 한류라는 빛나는 이름 뒤 대중 문화계에 만연한 착취 관행 같은 어두운 이면들, 나아가 더 묵직하게는 미,중,일과 엮인 한국의 외교적 처세에 대해 다소 과격하고 날카롭게 이야기한다.

특히 6장에서 다룬 <미래-사라져야 할 것들, 와야 할 것들>에 많이 공감했으며 그 중, ‘코로나가 무너뜨린 신화들(선진국의 민낯, 불완전한 시장경제)’과 ‘취소된 겨울의 한가운데서(기후변화)’ 는 매우 시의적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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