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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흐르는 곳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8월
평점 :
<피가 흐르는 곳에>
뉴스 업계의 오랜 정설 ‘피가 흐르는 곳에 특종이 있다.’
12월의 어느 날, 트럭 한 대가 펜실베이니아주 파인버로의 중학교 안으로 진입하고 배달 기사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이는 작은 소포 상자를 배달한다.
폭발,
사망 31명, 부상 73명, 중상 9명. 사상자 대부분이 어린 학생들.
버려진 채로 발견된 트럭은 도난차량, 방범 카메라에 찍힌 가짜 배달 기사의 제법 선명한 인상착의. 대담한 놈인지, 정신없는 놈인지?
사설 탐정사무소 <파인더스 키퍼스>의 소장 홀리 기브니(여)는 이 끔찍한 대참사를 몹시 슬퍼하며 TV 뉴스 속 현장 보도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정말 아주 미묘하게 이상한 느낌이 든다.
현장 특파원으로 나간 기자 ‘체트 온도스키(남)’
자꾸 마음에 걸린다. 묘한 기시감이 든다.
피곤해 보였던 얼굴, 양손에 남은 긁힌 자국과 벽돌 가루, 찢어진 주머니???
정말 고작 그런 것 때문에?
앞서 체트가 나온 보도 자료를 무작위로 찾는다. 불이 난 아파트 앞에서의 체트, 연쇄 충돌 사고를 보도하는 체트…여기저기 대형 참사 사건마다 가장 먼저 나타나 사건을 중계하던 체트.
어쩐지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이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바보 같은 상상이라고 되뇌지만……….정말??
아주 오래전부터
‘그것’의 정체를 밝히고 있던 또 하나의 축이 있다. 포틀랜드에 사는 91세의 댄 벨, 산소탱크를 매단 휠체어에 앉아 껍데기만 남은 듯한 남자.
그가 일생 의문을 가지고 쫓아왔던 어떤 존재의 미스터리가 점차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지고, 거대한 악의 정체를 함께 추적해 간다.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공포를 담은 스티브 킹의 방대한 세계관을 담고 있는 오컬트 스릴러. 전작 <아웃사이더>와 이어지는 이야기라고 하니 이전 작품들을 재미있게 보았다면 더욱 스릴 넘칠 이야기.
혹 또 다음 속편이 나온다면 홀리의 어머니 샬럿은 제발 어떤 이유로든 이미 돌아가신 이후였으면 좋겠다. 만악의 근원이지 가장 현실적인 악. 지긋지긋해 죽겠다.
<해리건 씨의 전화기>
죽은 자에게 전화를 걸다.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이야기는 2004년, 화자 크레이그가 9살이던 시절부터 시작한다.
크레이그는 한적한 마을에서 여생을 보내는 성공한 사업가인 해리건 씨의 말벗이자 책을 읽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점차 그와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쌓는다.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디지털 시대로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성장해가는 그와 달리,
인생 말년을 맞은 80대의 해리건 씨에게는 이것은 천지가 개벽하는 수준, 천동설이 아니라 지동설이라니? 와 같은 쇼크.
마침 해리건 씨에게 선물 받은 복권이 당첨되어 적지않은 돈이 생긴 크레이그는 그에게 아이폰을 선물한다.
이 작은 스마트폰 속에 담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믿을 수 없고, 그럴 리 없다고 밀어내지만, 호기심과 새로움에 그도 매료되어 간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 우정의 상징이 된다.
아날로그를 경험했고, 디지털과 꾸준히 함께 자란 나조차도 이 급작스러운 흐름의 변화를 글로 읽다 보니 다소 당혹스럽고 무서울 정도이니, 이제껏 쌓아온 모든 지식과 경험이 쌓이기는 커녕? 무쓸모 하다며 송두리째 뽑혀 내던져진 느낌이 해리건씨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아득한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를 일. 세상의 패러다임 변화 그 자체를 심층적인 공포로 묘사한 점이 신선했던 작품.
47년생인 작가가 바라봤던, 발맞춰 따라왔던 세상도 해리건씨의 세계와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죽은 자의 무덤에서 울리는 전화기라는 고전적 호러요소와, 현대 기술의 끝판왕인 스마트폰이 가져다주는 무한 영역이라는 공포를 잘 버무려 엮은 데쓰노트!
이외 <척의 일생>, <쥐>. 4편의 중편소설이 실려있는 이야기의 제왕, 스티븐 킹의 매혹적인 이야기들과 함께 늦여름의 으스스한 재미를 느껴보시길, 어쨌든 장르소설은 곳곳이 지뢰밭이라 인물 소개 하나 하기도 쉽지 않고, 사건은 더더욱 어디까지 써야 할 지 역시나 너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