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틸리와 벽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62
레오 리오니 지음, 김난령 옮김 / 시공주니어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태어나기 전부터 ‘원래’ 거기에 벽이 있었다.
아무도 그 벽이 왜 거기에 있는지, 벽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전혀 궁금해하지 않을 때, 아니 애초에 그 벽이 그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갈 때 어린 생쥐 틸리는 벽을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저 벽은 언제부터? 왜? 있는 것인지, 벽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벽 저쪽에는 신기한 동식물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이 있을 것만 같다며 틸리는 알록달록 파스텔 색감의 꿈결 같은 장면들을 떠올리고 상상한다.
벽 반대쪽을 보기 위해 애쓰던 틸리는 많은 실패 가운데 의외의 큰 깨달음을 우연히 얻는다.
"여태 왜 생각을 못 했지? 어째서 지금까지 저런 생각을 한 생쥐가 한 마리도 없었을까?"
벌레 한 마리가 흙을 뚫고 아래로 굴을 파는 것을 보고 벽 아래로 뚫고 내려가는 그동안 생각치 못한 전혀 다른 방식을 떠올린다. 컴컴한 땅 속을 신나게 파고 또 파면서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틸리의 동그란 눈 속에는 작은 개척자의 용기와 신념, 그리고 설렘과 두려움까지도 꾹꾹 담겨있었다.
마침내 다다른 벽 반대편!
그러나 죽음과 사투하며 대항해를 마치고 도착한 미지의 신대륙에도 똑같은 인간들이 살고 있었듯 틸리의 눈 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상에도 그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생쥐들이 살고 있었다.
벽 반대쪽의 생쥐들도 난데없이 나타난 ‘다른 세계’ 에서 온 ‘같은 생쥐’를 보고 새삼 저쪽은 어떤 곳인지 궁금해졌다. 그날부터 생쥐들은 벽 이쪽저쪽을 자유로이 오가며 살게 되었다.
틸리 앞에 존재하던 벽이 상징하는 것은 읽는 이에 따라 저마다 다르겠지만
결국 세상의 모든 ‘원래부터 그랬던 것들’일 것이다. 지금은 당연한 거의 모든 것들이 한때는 감히 생각조차 못 하던 개념이거나 시대가 비웃었던 상상이었고 먼 미래의 가능성 없는 현실이었다.
여성의 참정권도, 유색인종의 인권도, 종교와 이념의 자유도, 전화기나 비행기, 우주여행 같은 것들도 말이다.
그 아득한 여정을 계속해서 꿈꾸고 개척한 누군가의 기약 없는 노력 끝에 가랑비에 옷이 젖듯 세상은 조금씩 변화해 왔다.
그 변화는 인류의 역사 그 자체다
별달리 변한 것이 없어 보이는 생쥐들의 세계이지만 분명 진일보하였다. 똑같아 보이는 0일지라도 더하기와 빼기를 무수히 반복하여 0으로 돌아온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머물러 있던 0이 어찌 같을 수 있을까
틸리의 상상 속에서 등장하던 화려한 색감을 띈 돌멩이는 벽 반대쪽 세계에서는 틸리를 환영해주는 특별한 선물이 되었고. 막연했던 그 꿈은 지금은 두 발 딛고 있는 진짜 현실이 되지 않았는가
사실 직업상(?) 일상에서는 그 어떤 책보다도 그림책을 가장 많이 접하고 있는데 좋은 그림책은 대개 두 종류로 나뉘는 것 같다.
기발한 상상과 개성있는 그림체로 아이의 눈높이에서 한없이 즐거워하게 만드는 책이거나
그림책이라는 쉬운 형식을 가지고는 있지만 되려 어른이 새겨 읽어야 할 만큼 깊은 울림과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함축된 비유를 듬뿍 담은 책, 그렇기에 막상 실제 독자인 유아들에게는 그 의미를 깊이 이해시키기는 조금은 어려운 책.
이 책은 후자다. 단순하게 글과 그림을 읽어주며 표면적인 이야기만을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상징적인 의미와 교훈을 아이들에게 완전히 설명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아직은 한정적인 이야기밖에 할 수 없는게 약간 아쉽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던져줄 만한 생각거리와 질문은 풍성하다. 두고두고 함께 읽으며 아이가 크는 만큼 생각은 어떻게 자라는지, 점점 어떤 이야기를 얹어서 들려줄 수 있을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6개월 전에 출간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오랜 노력 끝에 물리적인 장벽을 허물고 양쪽의 생쥐들이 자유로이 오가며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 속 ‘벽’의 상징성은 역사의 순간과 함께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자란 아이들이,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당연한 것들을 궁금하게 여기고
새삼스럽게 생각해보고, 반대의 시선에서 유연하게 뒤집어서 바라보고,
늘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듯 지금도 그런 사람들의 노력으로 더 좋은 세상으로 조금씩 천천히 바뀌고 있는 중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