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우연한 고양이 문지 에크리
이광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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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연은 우연히 맺어진다.
어떻게 만났든 모든 묘연은 필연이자 우연이다.
모든 고양이는 우연하다.

고양이는 우리 곁에서 늘 일상적이지만 매 순간 돌발적인 아름다움을 뽐낸다. 사소하지만 매혹적이고, 나른하지만 우아하다.
 
작가의 시선은 고양이의 매력을 따라가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눈앞의 고양이를 건너가 저 먼 곳을 내다보고 오랜 기억을 끄집어낸다.

되도록 하지 않는 방식으로 유지하는 삶에 대하여,
무례한 아름다움에 관하여,
있으나 없는 것들과 없음이 곧 있음이란 아이러니와
사라질 준비가 된 존재에 관해 이야기한다.

작가의 언어는 다른 감각의 세계로 이끌고 가는 듯한 속삭임이다. 실재와 허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듯한 아득함 사이를 사뿐사뿐 걸어 들어가는 고양이는 자신을 따라가다 기대하지 않은 우연과 마주치고 마는 우리의 당혹감에는 무심하다.
그 눈빛을 보고 있자면 어떤 말이 필요하겠나 싶지만, 그만큼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가야만 할 것만 같다.


우리는 참 묘(猫)한 인연이다.
깊이 들여다보면 세상 어떤 일이 신비롭지 않겠느냐마는
네가 나를, 내가 너를 절대로 해치지 않으리라는 종(種)을 초월한 굳건한 신뢰 관계,
완벽하게 다른 존재들이 서로를 기꺼이 존중하며 한 공간을 공유하는 것,
공통된 소통수단의 부재에도 그 어떤 인간 존재 이상으로 교감한다는 것,
종속이나 위계의 관계가 아닌 각자의 위치를 유지하는 것,
이 많은 것들이 이미 기적인지도 모른다. 작가의 말처럼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해서 같은 세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각자의 시간 속에서, 문득 너의 시간과 우연히 접촉하는 아주 짧은 순간들이 기적처럼 존재하( p.43)' 기에.

이 책은 문학과 지성사에서 새로 출간하는 산문 시리즈 ECRI(에크리)로 처음 만난 작품집이다. 그저 ‘고양이’라는 단어에 언제나처럼 끌려서 읽게 되었는데 일반적인 고양이 에세이와는 완벽히 결이 다르다.

고양이를 매개로 바라본 삶에 대한 깊은 철학과 사색이 가득 담긴 문장들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극대화하고 있다.
출발은 고양이였으나 인간 본연에 대한 탐구에까지 다다르고 있는 담백한 독백은 나긋한 고양이의 발걸음만큼이나 나지막하고 고요해서 귀기울여 들어보아야 한다. 그 울림이 꽤 깊고 길다.
 
감미롭게 어우러지는 글맛에 이토록 즐겁기도 오랜만이다. 담긴 문장과 글들이 너무나 좋아 한참을 아껴 읽었다. 작가가 오래 바라왔다던 ‘고양이 하기’ 또는 ‘고양이 되기’로서의 글쓰기는 멋지게 성공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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