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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관계적 교회 - 제도권 교회의 벽을 허문다, 개정판
프랭크 비올라 지음, 박영은 옮김 / 미션월드라이브러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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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관계적 교회 (Rethinking the wineskin)

<제1장>
교회집회

제도권교회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집회의 목적
공동체적 예배, 복음제시, 설교청취, 교제

초대교회집회의 목적
단지 신자들의 모임임. 나눔이 주제이긴 했지만 설교를 듣는 것이 주목적이 아님.
교회집회에서 성도들은 집회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나누는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누구도 집회의 중심이 될 수 없었음, 가르침의 사역이 매주 같은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음.
교제도 그냥 묵상의 결과로 생기는 성장의 결과일 뿐임.

초대 교회에 있어서 예배란?
우리의 삶 자체,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사랑, 헌신, 겸손, 순종
예배는 그냥 모임이 아니며, 합창, 찬송은 – (찬양과 경배가) 중요한 표현양식이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목적은 아님.
초대교회의 집회의 목적은 상호권면(Mutual Edification) => 상호 격려가 모임의 중요한 특징.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참여.
찬송의 경우도 전문가 그룹의 인도가 아닌 그냔 일반신도들의 자유로운 참여(자작곡)가 이루어짐.
어느 누구도 소외 당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집회에 참여함. 신선함, 개방성, 자발성이 집회의 특징.

그리스도가 교회집회의 지휘자. (그리스도의 머리되심)
그리스도가 임재하고 늘 인도하심, 성령께서 주제를 정함, 정하신 사람을 통해 자유롭게 말씀하심.
성도들의 수동적 참여, 직업적 목사(전문목회자)들의 사역은 초대교회에서는 낯선 것임.
초대교회의 집회에서는 자연적으로 성령으로 받은 영적 통찰력과 상호교류가 발생함.
인간이 주도하고 주장하며, 조정하는 근거가 없음.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 강단 중심의 집회는 없음. 예수그리스도가 성도의 공동체를 통해 성령의 중재로 집회를 직접 인도.
서로 함께함, 상호성이 특징. 초대교회의 회중 개개인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공동체를 위해 기여해야 한다는 특권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집회에 참여함. 열린 분위기의 자유와 비정형이 특징.
초대교회는 만인 제사장 교리를 실제적으로 적용하는 장. 모든 신자들은 주님께, ”영적 제사”를 드리도록 부름 받은 영적 제사장임, 특별히 받은 은사를 통해 그리스도를 표현하도록 고안됨.
제도권 교회는 신자들을 수동적 수혜자로 전락시키고 영적 유아기에 머물게 함.
종교개혁은 만인 제사장의 진리를 회복시켰지만 가르침을 구현하는 구조의 회복에는 실패함.
참여지향적 열린 집회가 바로 하나님이 고안하신 초대교회의 모습. 그리스도를 모임 안에서 형상화하고 충만으로 이끔. 상호사역과 권면은 불신과 알고 짓는 죄를 막는 일종의 보호장치임.
또, 교회집회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임. 각자가 받은 주님의 은혜를 자유롭게 나누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가 바르게 표현되는 길임.
하나님의 열정은 에클레시아(교회)의 모든 회중이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할 때 실현됨. 보이지 않은 주님의 실체를 집회를 통해 보여주는 것, 그리스도를 지상에 구현하는 것이 바로 초대교회의 가장 큰 목적임. 집회는 그리스도 중심이였음. 전문 목회자로부터 무엇을 얻으려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역하면서 형제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모였음. 초대교회의 집회를 유지하는 힘은 잘짜여진 프로그램이나 인위적 요소, 제도화된 조직이 아니라 성령의 생명력임.
초대교회는 열려있고, 참여지향적이고 자발적임.
누구도 제사장직을 수행하는 성도들에게 성령이 부여된 은사를 행할 것을 허하거나 금하는 권리가 없음, 목회의 통제력이 제거되면 혼란할 것이라는 생각은 성령을 신뢰하지 않는 불신앙임. 자발적인 상호사역을 배제하면 안됨.
머리되심은 신자들이 공동체적 삶에서 구현되는 주되심임.
상호사역과 나눔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얻고, 상호복종과 섬김을 통해 성령에 순종하며, 상호나눔과 공동체적 증거를 통해 주님을 증거 등이 바로 주님의 머리 되심에 복종하는 것임.
현대의 제도적 교회 안에 만들어 놓은 모든 구조가 주님의 머리되심의 표현인가? 인간의 머리됨의 표현인가? 현대 교회는 최초의 원형에서 너무나 이탈해 있음.

<느낀 점>
1. 잘 짜여진 프로그램이나 교회 조직이 교회의 모든 것은 아니다.
2. 전문적 목회자들의 지나친 매너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3. 평신도들의 자발적, 참여지향적 사역참가 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4. 목회자로부터 무엇을 얻으려는 것보다 형제를 위한 사역과 봉사가 중요하다.
5. 초대 교회 모임의 특징인 상호사역과 상호권면을 제도적 교회에서 강화하자.

<우리교회에 적용할 점>
1. 찬양과 경배도 중요하지만 상호권면하자.
2. 하나님의 열정을 갖고 각자 사역을 열심히 하자.
3. 주님께 받은 은사들을 형제들과 같이 나누며, 자발적인 상호사역을 강화하자.




<제2장>
성 만찬 (Lord’s Supper)

초대교회에서는 떡을 나누어주는 행위는 예수님의 인성을 나타내 준다고 믿었다. 떡을 나눔은 주님의 몸이 찢겨진 십자가를 생각나게 하며,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로서 죽음을 상징한다.
떡을 나눔은 주님의 죽음뿐만 아니라 부활도 상징한다. 하나의 밀알이 땅에 떨어지면, 많은 밀알들을 생산해 낸다. 주님의 몸과 먹고 피를 마시면 그의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데, 이것은 곧 부활을 의미한다. 부활하신 주님의 계시나 주님의 몸의 하나됨의 증거도 떡을 나눔으로 나타남.
하나의 떡을 조금씩 떼어 나누어 먹음으로 서로 하나가 됨.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각자가 떡을 떼어먹으면 큰 죄악임.
주님이 제정하신 성만찬은 전통적인 유월절 만찬의 일부였으며, 그냥 일반적인 식사, 연회였음. 초대교회의 성만찬은 교제의 장, 즉 성도들의 식탁 교제임. 초대교회는 만찬을 아가페 또는 사랑의 축제로 묘사함.
하지만 완전한 식사 형태였던 만찬은 수세기가 지나면서 교회의 전통인 만찬이 불완전한 형태의 성만찬으로 됨. 떡을 나누는 상호 교통의 의미가 심하게 퇴색됨.
현대의 성만찬은 만찬이 아니라 구제주의 시식용 떡처럼 되어 버림. 작은 빵 부스러기와 작은 잔에 담긴 포도쥬스는 결코 성도들이 함께 나누는 공동체 식사가 될 수 없음.
초기의 성 만찬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함께 먹고 마심으로 교인들의 하나됨을 보여주는 외형적 표현으로 아주 중요한 행사 였음. 식사를 통하여 회중들에게 그리스도의 관계와 신자들간의 관계를 각인 시켜주었음. 평상시 가족, 단체에서 함께 식사함으로 긴밀한 유대감이 강화되듯이 교회의 성도 상호간의 관계를 더욱 심화시키는 방법이었음.
어떤 정형도 추구하지 않은 단순한 성만찬을 통하여 가정집은 정화되고 성화되며, 거룩해졌음.
떡을 떼는 행위는 예수님의 재림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종말론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음.
주님의 만찬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기시켜주거나 그를 통해 우리의 죄를 자복해 주는 것이 아님.
성만찬은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 누구인지를 즐겁게 묵상하는 시간이며, 그의 승리와 재림을 생각나게 함. 성만찬은 하나의 축제이며, 즐거운 분위기와 대화가 풍성한 식사자리임. 나눔과 감사로 특정 지워지는 기쁨의 잔치임.
떡을 떼는 행위
과거 – 주님의 희생적 죽음을 상기시킴.
현재 –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그분의 현존을 보여줌.
미래 – 미래에 다시 오실 소망에 대한 선포임.
 주님의 죽음(과거)을 재림(미래)할 때까지 선포(현재)하는 행사.
성만찬은 믿음, 소망, 사랑을 증거함. 믿음으로 소유되는 영광된 구원의 기초를 다시 확립하게 됨, 한 몸으로 생각하는 형제들에 대한 사랑을 다시 표현하게 됨,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소망에 기뻐하게 됨.
로마 가톨릭은 성만찬을 문자화하고 희생제사처럼 만들어버림. => 주님이 성찬예식을 통해 늘 사람들을 대속하여 다시 희생한다고 생각.
개신교인들에게는 성만찬을 십자가를 기억하게 하는 기념물이 됨.
하지만, 성찬식은 희생제사도 아니고 기념 의식도 아니고 영적인 실체임. 성령이 거하시며, 성찬식을 통해 성도들의 마음속을 조명하심, 우리는 성찬식에서 그분과 같이 먹고 마심(영적 교제를 함).
성만찬의 목적
1. 공동체 안의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 => 음식 나누기
2. 평준화 신학의 구현 => 계층을 없앰.
3. 종말론적 의미 => 다시 오실 구세주에 대한 간구
주님의 식탁: 신자들과 함께한 제한 없는 교제의 자리 (수평적 관계- 나눔과 식사 교제의자리)
성만찬: 주님의 기념과 선포,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희생적 죽음을 선포하는 자리 (수직적 관계- 식사가 의미하는 본질적인 의미 추구) 둘은 동전의 양면임.
떡을 뗌으로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의 중심성을 기억하게 됨.
하나님의 백성들을 주님에게로 성령의 인도하심이 바로 성만찬에서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일임.

<느낀 점>
1. 성만찬의 참다운 의미를 다시 되새기자.
2. 주님의 몸처럼 떡을 나누는 교인들도 하나가 되어야겠다.
3. 성찬식의 형식이나 절차 등 보여지는 것보다는 성령에 의한 주님께로의 인도가 중요함.
4. 초기 교회처럼 성만찬을 나눔과 감사로 특정 지워지는 기쁨의 잔치로 지내는 것도 괜찮음
5. 성만찬도 여러 교인들이 영적 교제를 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됨.

<우리교회에 적용할 점>
1. 성만찬을 가난한 자에 대한 나눔의 장으로 만들자.
2. 성만찬을 여러 신도들이 수평적으로 어울리는 행사로 만들자
3. 성만찬을 그냥 형식적으로 하지 말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념하고 간구하는 시간으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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