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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링조르를 찾아서 2
호르헤 볼피 지음, 박규호 옮김 / 들녘 / 2006년 3월
평점 :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은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한다.
성배의 왕 암포르타스와 악의 화신 클링조르 사이에는 지루하고도 치열한 다툼이 있었다.
클링조르의 음모에 의한 사랑에 눈이 먼 암포르타스가 결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을 때,
클링조르를 물리치고 암포르타스를 구원한 사람은 순수한 바보 파르지팔이었다.
선과 악을 구별할 줄 모르면서 두려움도 없는 바보 파르지팔...
파르지팔은 다름아닌 2차 대전 중 양 진영에서 치열한 원자탄 제작 경쟁을 벌인 과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인류의 파멸 위험 같은 것은 도외시한 채 오직 자신들의 과학적 성취에만 매달렸다.
두 과학자, 베이컨과 링스는 파르지팔을 꿈꿨지만 그들은 '사랑'이란 금단의 열매를 따고 말았다.
암포르타스를 파멸로 이끌었던 '사랑'은 진리를 추구하는 자들에게도 배신의 쓴잔을 들게 한다.
더구나 그들의 사랑이 부도덕하고 부적절한 사랑이었으니...
'결국 우리 두 사람은 모두 저주받은 불행한 암포르타스였다.
신에게 버림받은 우리의 상처에서는 영원히 고통스런 피가 흘러내릴 것이다.'
링스의 마지막 독백은 사랑 때문에 배신을 맛보고 파멸에 이른 자들의 절규다.
클링조르는 또다른 의미에서는 '진리' 그 자체인지 모른다.
진리는 선명하나 그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은 사랑에 유혹당하기 쉬운 존재들...
그래서 결국 인간인 과학자들은 진리의 불확실성을 확인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클링조르를 쫓던 또 다른 집단인 소련인들의 성급한 실수는 오늘날 과학자들의 모습일 수 있다.
그들은 제대로 진리를 밝히지도 못하면서 지금 이 시간에도 새로운 실수를 범하고 있지나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