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소설 다시 읽기 - 어제의 소설로 오늘을 치열하게 읽어내고 싶은 당신에게
김형준 지음 / 도서출판 해오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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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소설이 무엇인가를 말하는 소설론이면서 우리 소설을 새로운 관점으로 풀어 쓴 작품론이다. 그런데 이 책은 독자에게 혼란스럽고 위태로운 이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알려주는 에세이이기도 하다.

 

21편의 소설을 이야기하는 각각의 글에는 크게 세 줄기의 흐름이 서로 단단하고 촘촘하게 엮여 있다. 먼저 그 소설의 큰 특징을 잡아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허생의 처>에서는 패러디 소설에 대해서, <사랑 손님과 어머니>에서는 시점의 의미에 대해서, <밤길>에서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소설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 다음에는 소설을 새로운 관점으로 풀어 보여 준다. 그 부분에서는 이 소설을 이런 관점으로도 볼 수 있구나, 감탄을 하게 된다. 그런 다음에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과거의 다른 시간을 통해 현재를 살펴보면서 지금우리가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가짐,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 말한다. 과거에 쓰인 소설을 통해 지금 우리시대의 문제인 능력주의(꺼삐딴 리), 반지성주의(치숙), 공감의 문제(B사감과 러브레터), 역사적인 잘못을 인정하기(씬짜오 씬짜오) 등을 두루 살펴본다. 세 줄기의 이야기가 어찌나 매끄럽게 흘러가는지 첫 문장을 읽기 시작해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문장에 닿아 있다.  

 

이 책의 장점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글의 짜임새가 완벽하다는 점, 각 소설을 보는 관점이 새롭다는 점, 그러면서 글 전체에 일관되고 건강한 세계관이 있다는 점, 수첩에 적어 놓고 싶은 문장을 자꾸 발견하게 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장점은 큰 위로를 준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머릿속에서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정확한 언어로 확인받으면 마음이 놓인다.

또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따뜻하고 단단한 말들도 있다. 그런 말들은 내가 땅 위에 발을 딛고 잘 서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준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이 글의 흐름 속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한없이 외로운 마음이었다가 친구가 만 명은 생긴 듯 든든해지기도 하고 

 

우리에게는 타자가 필요합니다. ~ 우리는 타자의 눈과 만남으로써 우리의 감옥 바깥을 상상할 수 있게 됩니다. 타자의 눈이 없다면 우리는 자신의 눈이 만드는 감옥 바깥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됩니다. ~ 우리가 모르는 고통을, 우리가 보지 못했던 기쁨을 타인의 눈을 통해 상상하면서 우리의 삶은 조금씩 넓어져 갑니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손님과 어머니)

 

도무지 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제대로 알게 되면서 좀 더 편안하고 단단해지기도 하고

 

강자가 되려는 사람은 강자와 약자의 간극이 더 벌어지는 것을 원합니다. 비록 지금 자신이 약자의 처지일지라도 말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그 간극을 자발적으로 정당화합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사회적 약자의 약점을 들춰내고 과장합니다. 그래야 강자와 약자의 간극이 정당화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비록 지금 자신이 약자의 처지일지라도 말입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한없이 위축되어 있다가도 담담하지만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말에 금세 어깨를 쭉 펴게 되기도 하고

 

우리는 결혼정보회사의 점수 몇 개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명랑한 밤길)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나부터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구나 생각이 드는 나를 붙드는 말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 닥친 불행만을 고민해서는 안 됩니다. ~ 내가 겪고 있지 않지만 언젠가는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불행의 개연성에 대해 생각할 때에 우리 모두는 비로소 오발탄의 신세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오발탄)

 

책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와서 좋은 책을 골라 보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그런 때에 이 책은 우리의 가슴과 머리를 채우고, 나아가 내가 살고 있는 이 혼란스러운 사회를 이해하고 삶을 변화시킬 힘을 내게 해 주는 책이다. 하루에 한 편씩 아껴 읽었는데 생각날 때마다, 다시 읽는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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