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져도 상처만 남진 않았다
김성원 지음 / 김영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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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학이나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는 작가의 글들을 많이 읽었었다. 공감도 많이 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서 좋은 점도 있었지만, 어쩐지 내 안에 있는 감성이 돌덩이처럼 딱딱한 형질로 느껴져 불편했다. 어딘가 모르게 세상과 소통하면서도 단절된 기분도 들었다. 이 책은 나의 굳은 마음을 유연하게 풀어주는, 중화의 역할을 한다.

전체적으로 어휘 선택부터 따스운 글들이라 대부분 좋았지만, 그래도 유별나게 좋았던 글 한 편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팩트 체크가 아니라 공감]이라는 글은 울림과 교훈을 줬다. 작가는 ‘친밀할수록 비판 정신을 괄호 안에 넣어두라고’ 한다. 또한, 이를 서로가 번갈아가면서 해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나는 친한 사람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인간관계 때문에 상처를 자주 받지만, 다른 인간관계로 치유받기도 한다. 내게도 사람으로 받은 상처를 사람으로 치유하는 묘연한 밤들이 있었다. 서로 수용하고 배려해 주면 좋지만, 뇌를 거치지 않는 발언이나 나를 눈곱만치도 배려하지 않는 상대방을 보면 갑갑함이 치민다. 그래서 (상대방이 느끼기엔) 갑작스럽게 연락을 끊는다든지, 멀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내 탓이라고 생각하고 넘기는 편인데, 그렇게 사건을 정리하다 보니 이젠 한계에 도달한 상태가 되었다. 이 글에서는 ‘공감의 중요성’에 대해 심리학적인 관점으로 강조하면서 산소 발생기 같은 사람을 만나라고 추천한다. ‘심리적 산소’라는 말이 있는데, 작가가 그 표현을 좋아하는 것처럼 나도 그 표현이 나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단어 중 하나 같은 필연적인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을 읽으며 에세이를 쓰는 사람은 따뜻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로운 창작 행위에 의무감을 부여하고 싶진 않아서 소설가는 이래야 한다, 시인은 이래야 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그 경험을 타인과 나눌 수 있으려면, 애초에 경험을 통해서 성장이 가능하려면 ‘따뜻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따뜻함이란, 타인을 이해하고 포용할 줄 알며 나의 고통과 고민뿐만 아니라 타인의 것들도 공감할 줄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자신이 겪지 않은 일에 대해 ‘함부로’ 말해선 안된다. 이 책의 작가는 좀 전의 것들을 다 충족한다.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다음은 좀 더 나을 거라고, 내일은 더 행복할 거라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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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 책표지부터 이야기하자면, 녹고 있는 아이스크림이 강이 되어 홍학이 떠 있다. 이때 홍학과 아이스크림은 같은 색이다. 이 그림은 ‘넘어져도 상처만 남지 않았다’는 제목과 일맥상통하다. 넘어져도 상처만 남지 않은 것처럼, 아이스크림이 녹아도 액체만 남은 것이 아니다. 또 책 뒤표지에 적힌 추천사도 책을 빛내는 데에 한몫했다. 추천사를 쓴 이들이 단순히 유명해서가 아니다. 둘은 다른 방식으로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추천사가 참 책을 읽고 싶게 만든다. 한 사람은 심리학과 치유의 관점에서, 또 한 사람은 시와 음악의 관점에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굿즈. 개인적인 취향으로 너무 마음에 들었다. 책갈피라는 것 자체로도 좋았지만 디자인이나 책 속에서 따온 문구도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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