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 - 삶을 버티게 하는 가치들, 2019 12월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추천도서, 2020 원북원부산 선정도서
이국환 지음 / 산지니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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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독서에세이라고만 분류하기에는 아쉬움이 컸다. 독서를 통해서 얻은 깨달음이 이 책에서는 주를 이뤘지만, 작가의 삶의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작가의 관찰이 세심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 것 같다. 앞서 이 책을 독서에세이 장르로만 말하기에 아쉽다고 한 것은, 이 책이 인간의 마음에 대해 너무나 잘 통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두고두고 읽기 위해 좋았던 부분은 포스트잇으로 표시해두는데 다 읽고 보니 이미 너무나 많은 포스트잇들이 붙여져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마음에 대한 고민을 담았기 때문이었다. ‘외로움은 견디는 것이고 고독은 누리는 것’, ‘두려움은 자신의 입장에서, 연민은 타인의 입장에서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 ‘자존심이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라면,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등과 같이 깊은 통찰이 느껴지는 문장들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왜 제목을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라고 지었을까, 였다. 그래서 좋았던 많고 많은 글 중 나는 이 책의 제목이 왜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인지 설명해주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는가를 가장 인상 깊은 글로 꼽아보았다.

살아보면 인생은 결국 불안한 자유와 안정된 구속 중에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세상에 안정된 자유는 없다. 모든 자유는 불안하며 모든 안정은 곧 구속이다.” (p.130)

 

자신의 시간을 마음대로 조율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글 쓰는 직업은 상당 부분 프리랜서가 많다는 점에서 나는 안정된 구속보다는 불안한 자유가 있는 삶을 동경해왔었다. 하지만 4학년이 되고서 취업 준비생의 길로 들어서 보니 자유가 없는 불안만이 나에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고 불안이 잠식한 나의 뇌는 논리적인 생각이 불가능해졌다. 그로 인해 14년간 간직해왔던 내 꿈이 맞는 건지 자꾸 세상의 잣대에 나를 끼워 맞추려고 하며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남들의 시선이나 기준에 나를 끊임없이 비교·분석했다. 나의 꿈을 진정으로 응원해주는 주변 사람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안정된 구속을 향해서 속력은 빠를지 몰라도 방향은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어떤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을 찾아서 하고 있지만, 하루에도 마음이 몇 번씩 바뀌던 나라 평정심을 되찾기란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러던 와중 이 책의 위 구절을 만났다. 책을 읽기 전, 불안을 잠재우는 정도였다면 읽은 후엔 내가 가진 불안이 실은 누구나 겪는 과정이며 선택이라는 사실이 나를 위로했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것임을 깨달았으며, 내가 가진 불안은 괜찮지만, 불안이 가진 나는 괜찮지 않다는 사실을 나름대로 확립했다. 그동안에 불안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읽었던 몇 권의 뇌과학책보다 독서 에세이 한 권, 그것도 그 중 한 편의 글로 인해 내 마음이 나아질 거란 기대는 솔직히 못 했었는데 말이다. 과거로부터 비롯된 나의 불안이, 나의 현재를 바꿀 뻔한 경험을 떠올리며 이 책의 의미를 확실히 공감하게 됨은 물론이고, 오후를 사는 이에게 그저 오전은 과거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며 지나간 일에 지나치게 신경쓰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책에서 편집이라는 것의 비중과 그 중요성을 어렴풋이 알게 된 후로, 책을 읽을 때마다 나름의 편집 방향을 혼자 생각해 보게 되었다. 부족하지만 이 책에도 보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집들이 있었다. 우선, 이 책의 표지 컬러인 민트색은 심장 박동 수를 느리게 해서 진정해주는 효과가 있다. 저자의 차분한 문체에 차분함을 또 더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차라리 소설이었다면 전체적 분위기를 대변해주는 역할을 했겠지만 에세이라는 장르적 특성에서 봤을 때, 민트보다는 책의 내용이나 저자의 에토스와 어울리는 핑크 계열이나 리빙코랄이 표지색이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이 책의 부제 삶을 버티게 하는 가치들또한 따뜻한 컬러가 더 어울린다.

또한, 맨 앞에 여는 글이 있는데 그보다는 닫는 글이 존재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 책을 읽기 전보다 읽고 나서 아쉬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궁금해서 빨리 읽고 싶기 위함도 있지만, 한 장 한 장 넘기기 아쉬운 책을 다 읽고 난 독자에 대한 배려랄까. 그도 아니면 중간에 엽서의 형식으로 작가의 글이 따로 존재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떨쳐버릴 수 없었던 생각은 이 책이 꼭, 작가의 주변 사람에게 알려주고픈 삶의 지혜나 깨달음을 전해주는 느낌이 강했다. 논리적이면서도 온도가 높은 문체 때문이었을 것이다. 끝으로 카드 뉴스 형식으로 책 속의 문장을 소개한다면 마케팅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 책에는 너무나 탐나는 문장들이 많았기에 아쉬움에 독자로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끄적여보았다.

"살아보면 인생은 결국 불안한 자유와 안정된 구속 중에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세상에 안정된 자유는 없다. 모든 자유는 불안하며 모든 안정은 곧 구속이다."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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