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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에서 춤추다 - 언어, 여자, 장소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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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슐러 르 귄은 세계 3대 판타지로 꼽히는 ‘어스시 연대기’를 비롯해 ‘어둠의 왼손’, ‘빼앗긴 자들’ 등의 수많은 소설과 시, 에세이, 서평을 남긴 이 시대 최고의 sf 판타지 거장이다. 1962년에 등단한 이래로 어슐러 르 귄은 인류학, 심리학, 도교 사상, 페미니즘, 무정부주의에 대한 자신의 신념과 사색을 담은 sf 판타지 세계를 건국해 내가며 문학계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세상 끝에서 춤추다’는 어슐러 르 귄의 사색이 담긴 세 번째 에세이다.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로 이어지는 세 번째 에세이(세상 끝에서 춤추다_에서는 중요한 것들의 사색에서 삶과 책에 대한 사색을 지나 마침내 언어와 여성, 장소에 대한 이야기로 도착한다. 오래된 세계와 사라지거나 밀려나버린 장소들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한 세계를 위한 춤 같은 글과 문장들이 너무나 아름답다.
🔖 세계를 하나 찾으려면, 잃어버린 세계가 있어야 하는지도 몰라요. 잃어야 하는지도 몰라요. 부활의 춤, 세계를 만드는 춤은 언제나 여기 세상 끝에서,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안개 낀 해안에서 추게 되어 있었으니까요. - 92쪽
우리는 어떤 세계를 잃어야 비로소 어떤 세계를 맞이할 수 있을지, 세상의 끝에서 춤추는 그녀의 글들은 무덤덤했던 마음에 울림을 전한다.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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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부터 1988년,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살아낸 작가의 사색이 시간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넘어왔다. 1980년대에 쓰인 글들로 이뤄진 이 글이 왜 2021년에 다시 읽혀야 할까를 생각해 본다면 매우 단순하다.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시대를 막론해 계속해서 읽혀야 하는 가치를 담은 책일수록 글은 시대를 넘고, 연령을 넘고, 장르를 넘어선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해석과 시각이 생겨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거리의 풀 만큼이나마 이바지할 수 있다면 이 글의 가치는 충분하다.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 글을 남기고 많은 말을 해야 하며,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과 글의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말과 글을 전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글과 목소리가 여전히 남아있는 한, 우리는 그녀의 끝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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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슐러 르 귄은 책에 대한 많은 서평과 서문, 작가에 대한 짧은 글들을 자주 썼다. 그렇기에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최고의 선생님이 되어준다. 서평을 쓰면서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에 서평을 쓰는 작가들의 에세이를 만나면 반가워진다. 책에 대한 책을 만나면 느끼는 반가움과 책에 대한 애정에 동질감을 느끼다가도 깊이가 다른 글을 만나면 나는 오늘도 또 ‘이렇게 한 수 배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