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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로메르 - 은밀한 개인주의자 ㅣ 현대 예술의 거장
앙투안 드 베크.노엘 에르프 지음, 임세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5월
평점 :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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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영화. 아름다운 색감과 감각, 우리의 일생과 사랑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사유하고 탐구했던 누벨바그의 거장, 에릭 로메르의 평전을 읽을 기회가 생겼다. 1000페이지가 넘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평전이다. 에릭 로메르의 누구보다 개인적이고 은밀했던 이중생활이, 마지막 예술에 대한 애정이 묵직한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나에겐 에릭 로메르는 홍상수와 궤를 같이하는 감독이었고 홍상수의 도덕성 논란 이후 거리를 두기 위해 오랜 시간 잊고 지내왔다. 자연과 가까운 날씨와 빛의 조화, 인물의 움직임이 호화적이고 파스텔 톤의 색감으로 필해 놓은 장면, 인물들에게 닥쳐오는 우연과 관찰, 그들의 목소리를 빌려서 하는 내밀한 이야기들. 내가 늘 사랑했던 ‘녹색 광선’, ‘사계절 이야기’ 그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에릭 로메르의 은밀한 이야기들을 1100페이지에 걸쳐 마무리할 때 즈음 모리스 셰레의 삶 속에 존재하는 에릭 로메르는 나에게도 오래 간직될 이름이 되었다.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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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로메르이자 모리스 셰레의 삶은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잡학에 능했으나 여러 실패와 낙방, 그의 의지를 꺾으려 드는 많은 장애물에도 굴하지 않았던 그는 모리스 셰레라는 진짜 이름을 숨기고 에릭 로메르로 살면서 자신의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을 구분 지었을지언정 그의 영화에 대한 사랑과 애정, 아마추어 정신은 이름과 삶의 영역을 초월해있었다. 영화를 사랑하기에 그 존재를 지키기 위한 비밀스러운 삶을 한 꺼풀 벗기고 나서야 그의 진정한 위대함이 드러났다. 에릭 로메르를 대표하는 여러 영화들은 이 위대한 감독의 삶과 인생을 온전하게 전달할 수 없다. 현대 예술의 한 획을 그으며 모두에게 여전히 기억되고 회자되는 그의 삶을 좀 더 다각도로 볼 수 있는 평전이기에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인상 깊게 본 시네필이라면 그의 삶과 영화를 모두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독서가 될 것이라 자신한다. 그의 마지막이자 영원한 예술이 영화기에 그가 남긴 작품을 향유하고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의 인생에 영화는 뒤늦게 왔다. 모리스 셰레에게 영화는 ‘처음’이 되기 전에 ‘마지막’ 예술이었다. -97쪽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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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개인주의자의 이중생활에서 오는 묘한 쾌감과 비밀스러웠던 에릭 로메르의 삶을 방대한 양의 인터뷰와 주변인의 회고, 자료를 가지고 삶을 천천히 엮어 나간 저자의 폭넓은 시대에 대한 이해와 에릭 로메르에 대한 애정이 너무나 무겁고 숭고하게 다가온다. 누군가의 90년 이야기를 책 한 권으로 만나며 은밀한 취향을 알게 되는 일은 생각보다 즐겁다. 이중생활을 하며 스스로를 영화는 물론 삶에서까지 모습을 감추었던 에릭 로메르와 정적이고 성실한 삶을 살았던 존경받던 아버지, 선생님, 편집자, 소설가, 시네아스트 모리스 세례의 삶이 중첩되며 시대를 빛내던 예술가의 삶은 더없이 숭고하게 빛난다.
🔖에릭 로메르는 여기서 자신에 대한 가장 비밀스러운 것들을 이야기한다. 즉, 그것은 이중생활에 대한 취향,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에 대한 거부, 그의 심오한 존재의 이미지를 남기기 위해 필요한 영화적 우회다. -9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