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도시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7개의 중단편을 읽으며 한 가지 수면위로 떠오르듯 올라온 단어는 '소통불가'였다. 언어의 불일치 "천사들의 도시", "인터뷰" 작은 소파만이 무대가 되는 "그리고, 일주일" 서류상 죽은 사람이 되어버려 세상과 소통할 수 없게된 "지워진 그림자" 말없이 떠나지도 못하는 두 사람과 죽은 두 아이 "등 뒤에" 시력을 잃어버리고 다른 사람의 말에 고개를 살짝 갸웃하는 여자와 세상이 버린 한 억울한 남자 "기념사진" 아버지에게 맞던 여자와 어려서 언어보다 침묵부터 배운 남자, 그리고 벙어리 여자의 "여자에게 길을 묻다" 모두가 소통 불가능한 그 꽉 막힌 내면으로 시작되어 내면으로 끝난다. 처음에 범접할 수 없는 벽을 느끼다가도 한 순간 빨려들어가 단숨에 읽혔다.

  오늘 내가 소개하고 싶은 작품에 이례적이게도 표제작은 없다. 많은 고민을 해서 결정한 작품은 "등 뒤에" "지워진 그림자" "기념사진" 이다.


핏물은 적요하도록 붉었다.
뒤를 돌아보지 말자.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지금 내 등 뒤에선 우리가 모두 가야 하는 곳, 갈 수밖에 없는 그곳으로 이제 막 떠밀려 버린 한 영혼이 나를, 생에 대해 불가해한 집착을 보이는 한 사람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을지도 모르므로. <천사들의 도시>~등 뒤에~114p

  "등 뒤에"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천운영작가의 <그녀의 눈물 사용법>의 "그녀의 눈물 사용법"이었다. "그녀의 눈물 사용법"에서 그녀의 곁에 동생이 살듯 "등 뒤에"에는 추락사한 동생들이 산다. 두 작품은 겹칠듯 빗겨나갔다. "그녀의 눈물 사용법"이 소통이라면 "등 뒤에"는 소통불가였다.

  '그녀'는 군에서 사람을 죽인 S와 살고 있다. 한편 왕따 M은 자신을 도와준 '그녀'에게 노골적인 관심을 표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이 너의 인생이라고, 그 어디에도 함부로 편입 될 수 없는 삶이. 잔인할 만큼 고독한 인생이 바로 너의 것이라고 <천사들의 도시>~등 뒤에~139p 생각한다. 그렇게 M의 소통은 실패한다. S의 아이를 임신한 '그녀'는 물려받은 입덧으로 고생한다. 동생들은 그것을 보며 비웃는다. 결국 아이를 유산하게 되고 S에게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이 모든 것에 대해 말하는 게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한다.<천사들의 도시>~등 뒤에~144p S와 그녀도 소통불가다. 그렇게 소통되지 않고 그녀는 눈위에 누워 잠깐만이라며 쉰다.

남자의 손 안에 남은 건 새벽바람뿐, 남자의 몸을 기억하는 감촉은 어디에도 없었다. <천사들의 도시>~지워진 그림자~118p
  "지워진 그림자"는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은 밑줄을 긋게된 단편이었다. 그만큼 생각할 것이 많았고 무엇보다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었다. 인큐베이터 안의 미숙아 처럼 연약하고 98p  냄비 안에는 그새 짙어진 어둠과, 그 어둠이 채 지우지 못한 빈자리 같기만 한 하현달이 냄비 크기만큼 축소되어 들어가 있었다100p 같은 묘사들은 쉽게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그'는 목마름 때문에 허위 계좌로 돈을 빌려 써댄다. 결국 그 사실이 들통났고 그는 도망을 친다. 차를 버리고 위장 유서를 써놓고 나오고 며칠 후 신원불명의 시체가 나와 그는 죽은 사람이 되었다. 그는 옥상을 오가며 살아간다.  어느 날은 아내를 찾아가기도 했지만 아내는 기겁해서 쓰러진다. 그는 사람이 죽으면 그저 소문이 될 뿐이라고. 그래서 죽은 자가 감히 소문을 뚫고 나오면 그는 곧 살아 있는 사람을 몸서리치게 만드는 소름끼치도록 괴기스러운 유령이 되는 거라고.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지금까지의 속도로만 육체를 마모해 간다면 언젠가는 남자 역시 한 줌의 먼지로만 남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천사들의 도시>~지워진 그림자~113p 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지내던 남자는 어느샌가 자신의 그림자가 사라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육체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처지는 선인장과도 이어지는데 선인장은 결국 사람들의 구둣발에 짓밟혀 먼지가 되고 소문이 되<천사들의 도시>~지워진 그림자~116p었다. 원래 있던 곳에서 잊혀진 그와 선인장은 사라진다.

그건, 안정된 각도와 구도를 갖춘, 남자가 생에 처음으로 찍어 본 기념사진이었다. <천사들의 도시>~기념사진~172p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기념사진"은 두 개의 시점으로 구성된다. 연기를 하기 위해 좁아지는 시야를 감추고 연기하다가 클라이막스에서 쓰러진 여자와 평범한 수리공으로 일하다가 cctv에 찍혀 오판으로 잡혀간 남자. 모두 자신의 길에서 배신당한 사이였다. 여자는 좁아진 시야때문에 남동생에게 의지하고 살지만 남동생조차 벗어나고 싶어한다. 남자는 무죄선고를 받았지만 그의 길이 없어져 대학교때 취미로 하던 사진으로 불륜 사진을 찍으며 연명한다. 그는 여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느낀다. 여자는 시야를 잃고 자신만의 대본을 각색하며 산다. 그와 그녀는 마지막 흑백사진으로 소통되며 끝이난다.
  난 이 둘을 소통으로 본다. 소통할 수 없는 두 남녀의 만남. 난 그 만남을 소통으로 보고싶다. 너무나도 꽉 막힌 죽어가는 것들이라면 너무나 답답하지 않은가. 난 그들을 응원한다.

  이 세 작품 이외에도 "인터뷰" "여자에게 길을 묻다" "천사들의 도시" "그리고, 일주일"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빨려들어가는 듯한 내면 심리. 그리고 감각적 묘사. 다음 이 작가의 작품이 나온다면 꼭 찾아볼 거 같은 느낌이 든다.

말해 주고 싶었다.
독자와 친한 작가가 되고 싶었다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여백에서 뒤를 돌아볼 수 있게 해 주는 글을 쓰고 싶었다고도. 혹은 읽을 땐 즐겁고 읽은 후엔 단 하나의 단어로라도 남을 수 있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오랫동안. <천사들의 도시>~작가후기~2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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