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복음 - 속박에서 자유로 가는 여정
김형익 지음 / 두란노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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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익 목사님의 <율법과 복음>은 참 시원한 책이다.
사실 자기 의로는 하늘나라에 결코 갈 수 없음을
무수한 성경 말씀을 통해 들어 알고 있으면서도
어느새 내 열심이 마치  천국티켓인양 의기양양하게 살 때도 있었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육체도 자랑하지 않게 하려고 주님은 받을 자격 없는 우리에게 은혜로써 구원을 주셨는데
자기 의를 드러내는 바리새인이 되어 하나님 말씀보다 내가 세운 원칙을 중시하는 삶을 살때도 있었다.
아니 내가 세운 원칙의 노예가 되어 감사보단 그렇게 못할 때 불평하고 힘들어 하는 나를 자주 만나야 했다.

이만하면 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오만한 나...
이게 과거시점이면 좋겠는데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 무섭고 슬플때가 있다.

두아이를 양육하면서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상황들
예를들어 예배 시간엔 늦으면 안되니깐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두 아이도 준비시키고..
그러나 잠투정을 심하게 하고 짜증내고 울고 왜 가야 하는데?.물으며 저항하는 아이들과 부딪히며 좋게 말하며 설득하다가 강요하며 교회에 늦게되면 늦지 않아야 된다는 내 기준을 무너뜨린 아이들이 너무 부담스럽고 싫어서
아이들과의 관계가 더욱 힘들기만 했다.


그렇다고 예배시간에 지각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은 아니나
내가 마음을 쓰고 노력했음에도 안되는 상황들을 인정하고 겸허히 기도로 나아가면 되는데
지각의 원인인 아이들을 은연중에 원망하며 아이들의 마음을 보기보단 원칙(규칙)을 깼다는 마음에 불편하고 힘들었던 시기를 보냈고 아직도 그런 틀은 내 삶 곳곳에 있어 부딪힐 때가 있다.

이게 <율법과 복음> 이 책과 무슨 상관이지? 의아할 수 있지만
이런식으로 나도 모르게 하나님 믿는 사람은 이래야지라는 틀이 있어 진짜 봐야하는 사람보단 내 틀(율법)로 사람들을 정죄하고 비판하고 판단하며 내가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는 죄를 서슴없이 지을 때가 있다. (오직 하나님만 심판자이신데..)

내 기준으로는 결코 하늘나라 갈 수도 없는데..
모태신앙인으로 자란 나는 어느새 영적 교만함에 빠져 경건의 모양을 갖추진 않은 사람은 내 스스로 믿음이 적은 자라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형익 목사님의 <율법과 복음>을 읽으면 시원하게 그러지 말라고 알려주신다.
이미 하나님이 다 이루신 구원사역, 우리는 칭의를 통해 죄인에서 의로운 의인이 되었고 그 신분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열심히 하려는 동기가 주님의 귀한 십자가의 사랑에 대한 감격이어야지
내가 잘해야 하나님이 더 이뻐하고 복을 주시니깐...이런 생각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율법은 행동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동기까지 살펴보기 때문에 율법의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육체를 가진 사람은 단 한명도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니 율법주의로 가면 우리는 모두 멸망할 수 밖에 없어 소망이 없다.
그러니 오직 예수만을 바라봐야 하고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은 자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연약한 몸으로 인해 개가 토한 것을 먹는 것처럼 또 죄를 짓더라도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러니 이미 구원 받았으니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
아니 우리는 죄에 대한 민감함과 거부하는 마음을 갖고  통회하며 주님께 도움을 구하며 주님을 더욱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율법을 통해 나도 나를 어쩌지 못하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깨달을 때 주님의 구원사역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고 아름다운지 알게 되고 감격해 '오직예수' 마음으로 살아내려고 변화 되는 것이다.

구원은 매일 매일 이뤄가야 하는것이다.
율법이 아닌 복음의 법으로  우리의 하루를 주님께 올려드리며 더 많은 감사와 더 많은 기쁨을 주님께 올려드리며 살아가야겠다.
김형익 목사의 <율법과 복음>을 통해 율법 아래에서 나와 복음의 자유와 기쁨, 놀라운 사랑에 감사, 찬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2. 신자의 정체성 이해하기
                                                                     


54~58p '신자는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완전주의가 아니다(요일3:9)..죄에 대하여 죽으라는 명령이 아니다..."신자는 이미 죄에 대하여 죽은 사람이다"라는 선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싸움의 승패 여하에 구원이 달려 있지 않습니다. 신자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 안에서 완전하게 확보되었고, 어떤 것으로도 빼앗길 수 없는 보장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주님이 전쟁에서 결정적으로 이기셨기에 우리가 싸우는 전투들의 결과가 그 전쟁의 결정적 승리를 뒤집을 수 없는 것입니다...체험이 아니다....그런데 우리는 "내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보다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신앙은 의지의 순종이 아니라 믿음의 순종으로 자랍니다.


76p 문제의 핵심은 '죄의 몸'입니다....존 스토트는 죄의 몸에 대해 "죄의 지배를 받으며 죄에 의해 제한되고 통제받는 우리의 몸"이라고 정의했고, 마틴 로이드 존스는 "현재 몸을 입고 살아가는 우리 안에 거하는 죄"라고 설명했습니다. 죄의 몸은 옛 사람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78p 신자는 몸 안에서 사는 동안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는 율법의 명령을 필요로 합니다.(롬6:12)



ps: 더많은 책속 글귀는 제 네이버 블로그에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poterk/22126427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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