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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수업 - 나를 넘어 나를 만나다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은 나에 대한 질문을 많이 던지게 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해야 행복 하는가? 불안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등 인간 본연의 문제에 고민하게 되었다.
사실 많은 사람이 돈이 많으면 행복해 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돈이 얼마나 있으면 행복해질까? 그리고 왜 물질적인 측면에서 행복을 가늠하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는 물질적 행복은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이유는 뭘까?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본연의 질문에 어느 정도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인간의 모습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의 오가는 시계추" 이 말은 인간의 욕망에 속성에 관해서 설명해주는 말인데, 욕망 즉 자신의 욕구가 충족이 안 되면 고통스럽고, 충족된다면 만족감을 느끼고 그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고 권태로 빠지게 되면서 또다시 새로운 욕망을 찾게 된다는 말이다.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처럼 반복적으로 결핍을 느끼고 다시 채우면 권태가 되고 인생의 끊임없이 고통과 만족에 반복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래서 결국 이러한 욕망을 자제해야만 이상적인 인간으로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니체는 쇼펜하우어식의 인간관 물질적인 쾌락주의 찌들어 있는 현대인의 인간관에 불과하고, 인간의 참된 모습이 반영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니체가 말하는 인간상은 짧게 그리고 험난하게 살더라도 자신의 힘, 다시 말해 자신의 생명력이 고양되었음을 느끼고, 싶어 하는 존재라고 본다.
p34 그대들의 바라는 안락이라는 것은 우리들의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종말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을 조소해야 할 것, 경멸해야 할 것으로 만드는 것이며, 인간은 그것에 의해서 자신의 몰락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니체는 오늘날의 현대인이 안락한 생존과 쾌락에만 연연해 하기 때문에, 병약한 인간의 되어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금만 힘들어도 불평을 쏟아내고, 아주 작고 불편한 자극에도 호들갑을 떤다고 말한다
이렇게 자극에 민감하면서 안락만을 탐하는 인간을 두고 니체는 '말세인'이라 표현하였다.
니체가 말하는 어떻게 해야 행복하냐는 질문은 사실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즉 인생에서 의미를 찾지 않을 때 의미 있는 삶이 된다고 말한다. 사실 나는 아직 이 말뜻을 100% 이해하지는 못했다.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지 않으냐는 의미를 초점에 두면서 살아왔던 내 삶에 부정하기도 해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니체는 인간정신 성숙도를 낙타->사자->아이 3단계로 구분하였다.
낙타는 인내와 순종의 초점을 두고 사회의 가치와 규범을 절대적인 진리로 알면서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정신을 말한다. 저자는 자기의 중학교 때 무조건 부모님 또는 선생님 말씀이 절대진리라고 생각하여 믿었고, 공부가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니체의 말에 빗대어 학생 때의 자신의 정신성숙도가 낙타였다고 한다.
사자는 기존의 가치를 파괴한다. 그렇지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 못한다.
저자는 중학교 때 낙타같은 삶을 살다가 고등학교 떄 사자로 변신했다고 한다.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답을 찾지 못하고, "어차피 모든 사람은 죽는데, 왜 아등바등 살아야지 하는 생각에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니체는 이런 정신을 니힐리즘(허무주의)라고 명명하며, 이러한 니힐리즘의 상태야말로 인간의 견딜 수 없는 가장 큰 고통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높은 이유 중 하나가 니힐리즘에 빠져서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고민해본다. 직장인들이 중에 내가 이렇게 까지 해서 돈 벌어서 살아야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구의 탓으로 돌려, 분노하고 저주하면서, 그런 마음이 지속되다가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나는 순간 우울증으로 빠지기 싶다. 화병이 우울증으로 가는 경향이 많은 이유가 결핍된 욕구의 좌절을 통해 허무주의로 빠지기 때문이지 않을까?
다음은 니체가 말하는 마지막 단계인 '아이'를 단계이다.
아이의 속성은 보통 순수하고 놀이에 잘 빠진다. 그래서 니체는 아이의 단계가 순진 무구, 새로운시작, 놀이, 거룩한 긍정으로 표현한다.
니체는 우리가 어떤 재미있는 놀이에 빠져있을 때 우리는 '왜 이 놀이를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지 않는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그냥 그 놀이가 재미있어서 노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순간에 '왜 이 놀이를 해야하지'라며 놀이의 의미를 묻게 될까? 그것은 바로 놀이의 재미가 사라졌는데 계속해서 그 놀이를 해야 할 때이다.
저자인 박찬국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인생은 이와 같다. 인생의 하나의 재미있는 놀이로 여겨지는 사람은 '이 놀이를 계속해야 하는지' 묻지 않는다. 그저 삶이라는 놀이에 빠져서 그것을 즐길 뿐이라고.
나는 여기서 니체가 말하는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말은, 삶에 의미부여를 초월하라고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라는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초인이라는 말도 거기에 기초로 하지 않았을까?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라는 사람은 파괴와 창조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슬픔이 반복되는 이 세계를 웃으면서 긍정하는 자이고, 웃음을 터뜨리면서 이러한 세계에서 환희에 춤 추는자라고 설명한다-p69-
행복에 대한 책들을 읽어보면 항상 들어있는 말들이 있다. 현실에 긍정하고, 웃고, 감사하는 것
나는 행복이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조차 감사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