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본 지구
얀 아르튀스-베르트랑 지음, 조형준 외 옮김 / 새물결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새벽 운동을 한답시고 아버지를 따라 집 근처 천마산 꼭대기를 올라간 적이 있었다. 그 꼭데기에서 내가 살던 동네를 처음 바라보던 그때 나에겐 너무나 생소한 정경이 펼쳐졌다. '저게? 내가 살던 동네란 말인가!' 한참을 찾아도 내 집을 찾을 수 없었다. 아버진 금방 찾아서 손으로 가르쳐주셨지만, 난 그날 집을 찾지 못했다. 땅바닥에 붙어서 바라보는 세상과 저 하늘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장소가 그렇게도 달라 보였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생소했다. 어쩌면 쉽게 잊고 있었던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했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며 칠 전 얀 아르튀스-베르트랑의 책 세 권을 주문하였다. <<발견 하늘에서 본 지구 366>>, <<하늘에서 본 지구>>, <<하늘에서 본 한국>>이 그 3권이다. 이 중 두 권이 지금 내 손 안에 들어와 매일 약간씩 나의 따스한 손길로 그들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하늘에서 본 한국>>은 출판사 사정으로 인하여 11월달로 출판이 연기된 관계로 아직 2주 정도는 더 기다려야만 한다. 이 책들을 받던 날 두 권의 무게는 사과 한 박스의 무게였고, <<하늘에서 본 지구>> 크기는 대학 졸업 앨범과 동급 정도의 크기였다. <<발견 하늘에서 본 지구 366>>은 크기가 앞의 책의 1/2.5 정도 되고 사진이 총 366장이 실려 있어 하루에 한 장씩 본다면 꼬박 1년이 걸리게 만든 책이었다. 이들 책은 눈이 즐거운 책! 이성보단 감성을 자극하는 책! 어린 아이와도 대화가 가능한 책! 한 명이 보면 한 가지의 해석이, 두 명이 보면 2가지의 해석이... n명이 본다면 n가지의 해석이 나오게하는 책!

  아름다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이 이토록 아름다운 세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사진마다 뽐내는 정경이란 그 어떤 디자이너도 흉내낼 수 없는 나름대로의 개성과 고유한 색깔과 형상 그리고 그 속에 숨겨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널어놓고 있었다. 설경의 고봉과 파란 하늘을 수놓은 솜털 구름, 깊숙한 계곡 구비구비 흘러내려가는 작은 강들, 부드러운 물이랑마냥 펼쳐진 구릉지대를 따라 양탄자처럼 펼쳐진 풀밭 위를 한가로히 거닐고 있는 소 무리, 사파이어 같은 호수의 수면 위에 드리워진 산과 나무 그리고 사람들의 잔영들, 꼬불꼬불 고산지대를 휘돌아 나가는 도로에 점점이 달리는 자동차 모습들, 겨울철 흑야 현상으로 24시간이 밤인 핀란드 한 농촌의 어둑한 정오의 정경, 이쪽 지평선에서 저쪽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광활한 농경지 혹은 사막 혹은 습지 혹은 숲 혹은 늪지대들, 이러한 광활한 대지 위에 점점히 박혀 일하는 인간들의 모습들, 마치 꼬마 마녀 키키가 빗자루를 타고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한 아름다운 항구 도시 베네치아, 푸른 수면 위에 자그만 조각배를 띄우고 고기를 잡는 어부들의 모습, 하얀 구름들 사이로 바라본 파란 대양, 초록빛 에머랄드 바다 속에 드리워진 산호섬과 하얀 해안선들... 복잡한 세상으로부터 벗어나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눈부시도록 아름다우면서도 한가로운 장소들이 사진에 담겨진 체 책 속에 진열되어 있었다. 난 특히 <<발견 하늘에서 본 지구 366>>에서 <3월 5일>에서 소개한 어촌 굴홀멘 마을(스웨덴)에 영혼이 꽂히는 듯한 황홀경을 경험했다. 그래서 동화같이 앙증맞은 그 마을에 꼭! 갈 것임을 다짐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장소만을 사진에 담았다면 베르트랑의 책들은 관광 명소를 소개하는 잡지 정도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의 책에는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 문명의 침투에 쫓겨 오지로 몰려드는 원주민들, 서구 자본에 차츰 예속 되어 자신의 전통 생활을 잊어버리고 관광객이 던져주는 동전에 의존하는 아프리카 원주민들, 사막화에 생활 터전을 잃은 사람들, 지구 온난화로 바다 속으로 사라져가는 생활터를 넋놓고 바라보는 사람들, 굶주리는 북극곰, 서식지를 잃어 인간들의 생활 터전에서 이루어지는 야생 동물과의 어색한 공생, 비위생적인 생활공간, 자연 환경이 파괴된 공업지대 등등의 내용도 담겨져 있다. 하지만 이런 끔찍한 스토리를 품고 있는 사진 또한 위의 낭만적인 전원의 풍경을 담고 있는 사진처럼 공중에서 바라보면 아름다울 뿐이다. 베르트랑의 사진들이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라는 뻔한 매너리즘에 빠져 이 책을 본다면 우린 정말 커다란 메시지를 놓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또한 베르트랑 자신도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유미주의자로 남기를 거부하는 듯 하다.  

  그러기에 베르트랑의 책을 볼 때는 예리한 판단력과 눈썰미가 겸비되지 않으면 자칫 유쾌한 색조의 향연으로 끝이 날 공산이 크다. 다행스럽게도 커다란 사진이 이어지는 앞 4페이지 정도에 걸쳐 약간의 설명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글들은 먼저 사진들을 충분히 감상하고 난 뒤 시간을 두고 아주 늦게 보도록 하자. 역시 사진첩은 사진첩이기에 책의 저자들이 원하는 것은 사진을 보고 느끼는 것이 먼저지, 그 책에 적혀 있는 글의 내용에 갇혀 독자들의 상상력이 한계에 부딪히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책을 읽듯 정자세로 읽을 필요도 없이 약간 삐딱하게 읽어도 되고 책을 거꾸러 뒤집어 놓고 읽어도 무난할 듯 하다. 그만큼 사진첩은 읽는 이로 하여금 무한한 자유를 보장한다. 그러기에 마음 편히 먹고 소파에 기대어 읽거나, 바닥에 배를 깔고 콧노래를 부르며 큰 책장을 넘기면서 위로부터 아래로, 좌에서 우로 번갈아 가면서 근성으로 봐도 좋을 듯 하다. 금상첨화로 따뜻한 차나 커피 가벼운 먹거리 등을 옆에 두고 본다면 더더욱 뿌듯할 듯 하다. 만약 옆에 귀여운 아이들이 있다면 그들의 무한한 상상력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각도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그럴듯한 해석을 같이 합작 해본다면 더더욱 좋을 듯 하다.

  화려함 속에 숨겨진 진실, 진실 속에 숨겨진 화려함을 찾는 방법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터득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의 이미지를 넘어 저편에 있는 '사물의 본질'을 감지할 수 있는 눈을 기르는 좋은 문제집으로도 활용될 수 있으리라. 깨끗하게 정리된 유럽이나 북미의 농경지에서 베르트랑은 선진의 농기술에 감탄하거나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연과 단절된 인간 사회의 삐뚫어진 단상을 꼬집고 있고, 난잡하게 흐트러져 있거나 불성실하게 거드름을 피우는 원주민들의 나태함 속에 자본주의의 노예적 근성과 함께 그 속에 숨은 아직 남아 있는 자연과 연계된 인간의 참모습 또한 동시에 끄집어 내려 하기에 그 사진에선 아련한 향수를 느낄 수 있다. 가속화되는 사막화에 파괴되어 가는 인간 사회와 악화되는 자연의 참상에 아파하는 작가의 안타까움 심정 또한 사진 속에 숨겨져 있다. 그러면서도 공중에서 단지 아름다운 사진 기사로서만 남아야 하는 '인간 베르트랑'의 안타까움과 현실로부터 소외된 행동주의자로서의 소망도 함께 그 사진들에는 담겨져 있다. 그러기에 베르트랑의 <<하늘에서 본 지구>>의 마지막 주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이 책들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생각보다 사진들이 선명하지 못하다(그렇다고 못날 정도로 투박하다는 것은 아니다). 원사진처럼 완벽히 맑고 선명한 사진을 원했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2주 후에 받게 될 <<하늘에서 본 한국>>은 제발 선명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역시 유쾌한 독서가 될 것임은 분명할 듯 하다. 베르트랑이 보여준 사진들은 역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그래도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지구를 지키자. 아직 우리는 그러기에 늦지 않았다. 충분히 우리가 살아갈 생활의 공간과 야생의 공간 둘 다 아름답게 보존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베르트랑의 사진들엔 작가의 애정이 담겨져 있다. 그러기에 그의 책은 아름답다 하겠다.

 

크네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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