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흑비 > 나비의 명상여행 - 박남식
나비의 명상여행
박남식 지음 / 솔과학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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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뭐 별거나 싶어져 버렸다.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이 낯선 그 여행지와 무엇이 다른고... 란 생각이 들어버렸다.

가장 순수하고 가장 허물없던 학창시절 내 삶을 알고 있는 이는 하나 없는 곳,

길을 걷다 우연히 옛 애인은 커녕 동창조차 만날 수 없는 곳,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화장을 하고 옷을 골라 입을 필요가 없는 곳,

집을 나서면 내 20여년 기억에선 볼 수 없었던 파랗고 하얀 구름과 멋들어진 산이 눈 앞에 펼쳐지는 곳,

모르는 길도 아직 많고 길을 걷다보면 어디선가 짠내음 물씬 풍겨 오는 곳,

조금만 부산을 떨면 바닷가에 앉아 하세월 할 수 있는 곳,

하늘보며 온천을 할 수 있는 곳

 

어느 시인은 늙어지면 이 곳 속초에 와 살고 싶다했는데 나는 벌써 와 살고 있다.

아직 3년도 채 되지 않아 종종 바캉스 온 듯 기분낼 수도 있다.

여행을 떠나도 그곳에서 일주일만 지나면 다시 일상의 삶이듯 내 지금 이 삶은 일상인 듯 여행인 것이다. (여행지에서의 이방인 느낌 역시 지역주의 강한 우리나라에선 고향이 아닌 타지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방인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어느 블로거가 여행준비에 제일 처음은 환상을 갖는 것이라 하더라. 그러나 환상을 갖기엔 지금 이곳에 대한 환상도 체 가시지 않았나보다. 떠나고 싶다는 그 마음을 가만히 한쪽에 모셔둔다.

 

인도, 티벳.. 그곳에 대한 그리움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만 같다.

그리하여 덥석 들게 만든 책 '나비의 명상여행'

'나비' 박남식님의 인터넷 아이디란다. '나비'와 '흑나비' 나를 끈 이유 하나 더...

 

그러나...

아쉽다. 환상을 쌓거나 내 등을 떠밀기엔 조금 미약해 보이는 탓에 미안하고 안타깝다. 속삭이듯 서툴게 쓰인 글(동어반복)들은 흡사 나비님의 일기를 엿보는 듯도 하지만 금방이라도 보따리를 싸게 만들지는 못한다.

 

바람 산들 불고 따사로운 햇빛 아래 앉아 읽노라면 잠시 그곳을 다녀온 듯 하게 해 주기는 하겠다.

그러나 고개들어 하늘보면 티벳하늘만은 못하더라도 그만하지 않을까 싶은 속초하늘이 어쩌면 더욱 감명을 줄여버렸는 지 모른다. 회색 빌딩 가득에 끈적이는 후덥지근함 가득인 대구였다면 혹 또 모르겠지만...

 

기대가 커서였을런지도 모른다. 책표지에 '시간을 자유롭게 나를 위해 쓰라' 라는 말알이 해일처럼 내 가슴에 파고 든 탓에 그 뒤에 이어진 말알들의 영향력이 확 줄어들어버린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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