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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 이덕무 청언소품
정민 지음 / 열림원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늘 바쁘게 살아가다가 휴학을 하게 되었다. 푹 쉴 맘에 쉬다보니 흐트러지는 마음을 추스릴 수 없게 되었다. 그 때 <한서이불과 논어병풍>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오우아거사'(吾友我居士)라 책하고만 사랑을 나누다 보니 친구가 없어 내가 나를 벗삼는 사내라 이름지었구나.
'선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가장 잘 부합되는 모습을 살아간다. 가난하게 살아가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렇게 책읽기를 멈추지 않는 그를 보며 현대인들은 멍청하다, 한심하다고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큰 뜻을 품고 살아간다. '풀무질하던 혜강(진나라 때 죽림칠현의 한 사람)과 나막신 좋아하던 완부(진나라 때 현인)에게 한번 눈길을 돌려 호걸들이 마음 붙이던 것을 나무라고 꾸짖는다면 조금도 일에 밝지 못한 사람이다. 이 사람들의 가슴 속에 과연 대장간과 나막신이 있었겠는가?'
풀무질 하던 혜강과 나막신 손질하던 완부을 보고 소인들은 그들이 가슴에 큰 뜻을 품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이덕무도 그들을 모습에 자신을 빗대어 위안을 삼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들을 보며 자신의 큰 뜻을 다지고 있었을 것이다. 지영은 천자문을 8백 본을 썼고 홍정로는 <자치통감>을 세차례나 손으로 베꼈다. 양구산은 호담암을 만나 '내 이 팔뚝이 책상을 떠나지 않은 것이 서른 해가 된 뒤에야 도에 진보함이 있었노라'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고는 미치지 못한다는 말... 지금 현대인들은 어딘가에 미치고 싶어한다. 미쳐서 뭔가를 열심히 열광적으로 하고 싶어한다. 특히 젊은이들은 그 기를 발산할 곳을 찾는다. 그래서 월드컵에 열광하고 연예인에 미친다. 이 글을 읽다보면 내가 진정 뭔가에 미쳐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현대의 에세이에서 주지 못하는 가슴이 뚫리는 듯한 신선함을 옛 서적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