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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ㅣ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제목이 왠지 정겹다. 그러나 내용은 제목처럼 마냥 다정(?)하지는 않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로 본격적으로 페미니즘에 관한 담론이 우리나라에서 거세게 논의되고 있다. 어쩄든 그동안 사회의 주체로서의 지위를 많이 가지지 못했던 여성의 위치라는 점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담론 자체가 주는 생각의 환기라는 점에서는 분명 긍정적인 역할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국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갖가지 오해와 갈등, 의사소통의 부족 등의 문제점들도 많은 것 같다. 역사 이래로 성(性)대립은 늘 존재해왔기 때문에 으레 남녀 간의 갈등과 의사소통의 문제점들은 새삼 새로운 일은 아니라고 치더라도 페미니즘이 마치 인구의 다른 성(남자)을 배제하고 그들이 누려왔던 권력과 혜택을 빼앗고(?) 궁극적으로는 그들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지배하는 것으로 오해되는 것은 같은 일은 여자로서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페미니즘의 정의가 정확히 무엇이냐.. 하는 어려운 정의내리기 문제는 이 책을 읽어보고 조금 힌트를 얻었다.
여성 작가 7인이 쓴 짧은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이 책은 여성 작가들이 각자의 글을 통해 우리 여성들에게 하고싶은 말들을 응축시켜 표현하고 있다.
제목 '현남 오빠에게'는 이 책의 가장 첫 번째에 나오는 조남주 작가의 소설 제목인데, '현남 오빠에게'에서 주인공은 어떻게 남자친구인 '현남 오빠'에게 심리적으로 세뇌당해 그의 존재에 종속적으로 살아왔는지를 뒤늦게나마 깨닫고 그의 도움없이 온전히 한 인격체로서 자신을 찾아나가려는 의지를 담은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있다.
이 소설에서 남성으로 대표되는 '현남 오빠'는 과거의 남성과는 달리(?) 폭력으로 굴종시키려 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작은 일탈을 감행했을때는 오히려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기도 한다. 한 인간의 영혼을 종속시키는 방법이 이전에는 물리적인 폭력이었다면 이제는 은밀한 심리전으로 바뀐 셈이다. 그래서 더더욱 명확하게 구별하기 힘들고 그 세뇌를 철저하게 내면화해 그 사람에게서 빠져나오기가 힘든것이다.
흔히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심리적 폭력들의 예들은 주위에도 많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린 페미니즘이란, 자신의 정체성과 인격이 온전히 존중받고 평등하게 대우받으며 남또한 그렇게 인정해주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상대를 그렇게 바라볼 수 있어야 나도 그렇게 대우받으리라고 자연스럽게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우받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와 남 사이에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 외에도 나머지 6인의 소설들도 흥미롭다. 특히, 김이설 작가의 '경년'은 갱년기 여성의 심리를 다루고 있는데 갱년기에 다다른 중년 여성 자신과 남편에 대한 생각, 아들과 딸을 바라보는 묘한 이중적인 생각의 깨달음 등등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자라오고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기 시작할때 성장한 한국 여성들의 모순된 생각들 사이에서의 부조리와 혼란들에 대한 심리를 여과없이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은 단순한 페미니즘 책은 아니다. 7개의 단편 소설들을 통해서 그 속에 드러나있는 7명의 여성의 시선으로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세밀한 시선과 섬세한 심리적 묘사가 살아있는 '현남 오빠에게', 읽어보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