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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란 코끼리 다루기
조광수 지음 / 호밀밭 / 2017년 8월
평점 :
단군이 이 땅에 나라를 세운 이후, 외교 문제로 시끄럽지 않았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지만, 어차피 시끄럽다는 이유로 넋을 놓고 있으면 안 되는 것 또한 외교이기도 하다. 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다른 나라와 관계를 맺고 온갖 사건들에 대해 대응하면서 최대한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운명은 매한가지다. 고조선이나 고구려, 발해 등 광활한 영토를 가졌던 역사는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강대국'의 입장이 되지는 못했던 우리나라는 늘 강대국이었던 중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 나라의 역사는 늘 이웃 나라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지만, 중국과 우리나라만큼 '강대국'과 '약소국'의 관계를 몇 천 년이고 유지해 온 관계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서양만 보더라도 이집트에서 그리스로, 그리스에서 로마로, 로마에서 프랑크로, 그 이후로도 신성로마제국, 프랑스, 영국, 스페인, 독일, 베네치아 등 다양한 나라들이 얽히고 얽히며 패권이 계속 이동해왔는데, 우리는 중국의 패권을 가져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니 말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이유 때문일까. 오늘날에도 중국과의 외교 문제는 늘 역동적이며 많은 것들이 복잡하게 뒤엉켜있다. 그리고 대체로 민감한 이슈들이 많고, 우리 처지에서는 부정적인 인식을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최근만 하더라도 '사드 배치'와 '북핵 문제', '경제 보복' 등의 문제로 시끄럽고, 특히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3박 4일 중국 방문기간 동안만 해도 정말 많은 논란이 나왔다. '한국인 기자 폭행'이 그 대표적인 사건으로서, 우리나라 내부에서도 누가 더 잘못했느냐에 대한 갑론을박이 복잡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에서 한 걸음만 뒤로 물러나 본다. 잔줄기만 본다고 정작 굵은 줄기를 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숲을 보지 못하고 오로지 나무만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중국을 보지 않고 사건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중국이란 코끼리 다루기」를 만나게 되었다.
「중국이란 코끼리 다루기」는 무려 40년 동안 중국에 관한 공부를 해오던 저자의 작업 결과물이다. 중국의 경제부터 시작해 정치, 사회와 문화까지 결코 넉넉하지 않은 지면 안에서 여러 주제를 광범위하게 다룬다. 책의 방향과 그 목적성을 보면 학술서에 가깝지만, 사전지식이 적은 사람이라도 무리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편안하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또한, 단순히 과거의 사실만을 열거하는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 중국과의 외교 문제가 어떠한 맥락에서 발생하였는지, 그리고 중국이 어째서 그런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으로까지 이어진다.
역사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것은 외교에서 무척 중요한 일이다. 단순히 해외여행을 가는 수준에서는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외국인을 보고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지만, 우리는 해외여행을 대하듯 외교를 대할 순 없는 노릇이다. 아니,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늘 중국의 침략에 시달리고 눈치를 보다, 조선 시대 후기에 이르러서는 결국 속국 아닌 속국으로 살아야 했지만, 그 원인을 오로지 중국에만 돌려선 안 된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범하는 건 결코 정당화될 순 없지만, 역사의 당연한 순리임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약소국은 강대국을 그저 원망하고 눈치만 볼 게 아니라 철저하게 연구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반만년의 역사 동안 중국의 침입에 시달렸다고 늘 불평을 하고 다니지만, 과연 그렇게나 말하고 다니는 만큼 이들을 연구하는 데 힘을 쏟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어쩌면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중국에 대해 알려고 하기보단 외교에서 발생하는 그 문제나 현상만을 비판하기 급급한 지금의 모습 역시, 반만년 동안 우리 선조들이 보인 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적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했던 나라치고 부흥하지 않은 나라는 없었다. 대표적으로 그저 노략질하는 해적의 수준에서 머물던 나라가 '제국'의 형태로 발전하였던 영국과 일본이 있다. 이들은 대륙의 커다란 나라에 비해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배우는데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는 굴욕적인 역사를 맞이해야 했지만, 적에 대해 탐구하지 않고 침략에 대비하지 않았던 우리의 탓도 있다. 적으로부터도 어떻게든 배우겠다는 태도를 가진 나라가, 그저 적이라는 이유로 비난만 하는 나라를 지배하는 건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 중국을 향해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 돌이켜 볼 필요성이 있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결국 커다란 코끼리의 틈에서 생존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다. 단순히 코끼리들의 싸움만으로 끝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이 어디 우리들의 뜻대로만 이루어지겠는가. 인도의 속담처럼 코끼리끼리 싸움을 하든 사랑을 나누든 풀밭은 망가질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코끼리를 이길 수 없다면, 그 힘을 키우는 동안 우리는 전략적으로 행동을 해야 한다. 좋든 싫든 우리는 앞으로도 코끼리를 마주해야 하고,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코끼리를 다룰 수 있을지 연구해야 한다. 우리 개인 한 명 한 명이 저자와 같이 중국에 대해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저자가 정리해놓은 결과물을 통해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완전히 알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알기 위한 노력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온갖 감정들을 잠시 접어두고, 겸손한 자세를 취해야만 한다. 그러지 못하면 결국 같은 역사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