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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킹 소사이어티 - 록음악으로 듣는, ‘나’를 위한 사회학이야기
장현정 지음 / 호밀밭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지난 2011년, 일본에서 인기가 많던 만화 한 편이 우리나라로 넘어왔다. 이사야마 하지메가 쓴 '진격의 거인'이라는 작품인데, 어느 날 갑자기 거인이 나타나 무자비하게 인간을 잡아먹는다. 인간은 이에 맞서 성을 쌓고 거인과 사투를 벌이는 내용인데,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이 세계관 속 인간들이 '거인학(巨人學)'을 연구한다는 것이다.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거인들과 맞서기 위해서, 인간들은 이들에 대해 철저히 공부하고, 탐구한다. 그 과정에서 거인의 약점도 알아내고, 거인을 무찌를 수 있는 무기도 개발하고, 말을 타고 달리면서 보다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는 전술도 만들어낸다.
인간이 모여서 사회를 만들었지만, 어느새 사회가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것에 대해 함부로 '잘못되었다'라고 말하긴 어렵다. 어쨌든 다른 동물들에 비교해 신체적으로 그다지 유리한 조건이 없었던 인간이 자신보다 훨씬 크거나 강한 동물들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은 집단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집단은 사회의 원초적인 형태이다. 집단을 이루면서 인간이라는 종족 자체는 지구상에서 가장 커다란 힘을 가질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사회적 존재라는 틀에 갇혀야만 했다.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은 싸움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사회'라는 커다란 거인과 작은 개인들의 그 치열한 분투가 말이다.
'록킹소사이어티'는 역사적인 록 음악들과 함께 현대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진단하고 있는 책이다. 그 문제들은 무척 광범위하다. 종교, 과학, 합리성, 민족, 독재, 자본주의, 언론, 문화, 군중, 에로티시즘, 예술 등, 아무리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결코 낯설지는 않은 주제들이자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도 항상 접하고 또 한 번쯤은 고민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겉보기에는 이렇게 흩어져 있는 소재들을 관통하는 게 존재한다. 사회에 맞서는 개인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기 위해 사회에 대해 치열하게 연구하고 분석한다. 이게 바로 '사회학'이었다.
사회가 아주 커다란 거인이라면 종교나 과학, 민족, 자본주의, 언론, 에로티시즘 등은 사회보다는 작지만 그럼에도 인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큰 거인들이다. 이 큼지막한 덩어리들. 모두 인간이 힘든 현실에 맞서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편의를 위해, 행복해지기 위해 만들었음에도 우리들은 이로 인해 얼마나 갈라지고, 싸우고, 억압당하고, 또 무수히 죽어 나갔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들은 여전히 이러한 덩어리들을, 이러한 거인들을 그저 찬양하거나 아니면 어쩔 수 없다며 무기력함만을 보인다.
'진격의 거인' 속 주인공들이 거인에 맞서기 위해 '입체기동장치'라는 특별한 장비를 개발한 것처럼, 우리들 역시 이 거인들에 맞서기 위한 강력한 무기들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도 이러한 무기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늘 사회에 맞서 치열하게 노력해왔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성인이든 사상가든 철학자든 작가든 지식인이든, 이들은 지극히나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사회와 싸웠고, 그렇게 사회를 바꿔나갔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천재' 혹은 '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에도, 2000년 전에도, 1000년 전에도, 500년 전에도, 100년 전에도, 인간은 늘 거인과 맞서 싸웠다. 그러면서 그 노하우들을 계속해서 전수해줬는데 이게 바로 '천재' 혹은 '위인'들이 남긴 기록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하는 것들은 이러한 기록들을 치열하게 배우면서 이들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뉴턴의 말대로 그렇게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야 한다. 거인 대 거인이라면, 그래도 제법 해볼만한 싸움이 아니겠는가.
거인에 맞서기 위해서 '거인학'이 필요한 것처럼, 사회에 맞서기 위해선 '사회학'이 필요하다. 우리가 싸우고자 하는 대상이 있다면 그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치열한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탐구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강해서 싸우는 게 아니라 이 싸움을 통해서 강해져야 한다. 사회의 욕망이 아닌 '나'의 욕망을 욕망할 수 있도록, 사회적인 틀에 얽매이기보단 자유를 사랑하는 한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억압을 당하기보단 투쟁을 하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우리'보다는 '나'를 더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 자신만의 무늬를 그리고 정말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도 결국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철학과 인문학에 관심이 많아 책도 많이 읽고 강연도 자주 듣고 글쓰기도 하면서 공부를 해나가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에 직접 대면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낯설기도 했고 어려운 부분도 있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이제까지 늘 고민하고 생각했던 것과 그리 다른 내용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막막하고 어렵다는 느낌보다는, 다시금 새로운 학문을 접하게 된다는 그 설렘이 더 강했다. 나 역시 '사회학'을 공부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사회'라는 이 커다란 거인과 당당히 맞서 싸우고 싶어졌다.
지금의 이러한 자극이, 앞으로의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 궁금하다. 다만 진격의 거인 속 주인공이 그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보다 수십 배는 큰 거인과 당당히 맞서는 것처럼, 사회학을 통해 사회와 맞서 싸우는 나의 모습도 훗날 조금은 멋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지금 이 순간이 그 험난하면서도 설레는 긴 여정의 시작이었으면.